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시리즈 33
16세기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흑사병으로 노동인구가 급속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중세 장원 경제는 무너지고 있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엄청난 양의 금을 제공하였으며 수많은 산업이 일어나고 국제간의 무역이 활발해졌다. 인쇄술의 발달로 새롭게 부를 형성한 상인계급(부르주아)은 인문주의 사상에 심취하였다.
칼빈 당시 제네바는 상업 도시였고 무역의 요충지였다. 제네바는 지중해로부터 유럽대륙으로 향하는 무역로를 지닌 경제 중심지 중 하나였다. 제네바는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주도권을 가진 도시였다. 제네바 상인들은 이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치적 독립을 원하였고, 정치적 독립을 지속하기 위하여 기득권층인 가톨릭 세력에서 자유롭기를 원하였다. 제네바 시민은 외세에 대항해서 주민자치 조직인 의회를 만들었다. 4명의 집정권을 뽑아서 제네바를 다스리게 하였고 재정을 담당하는 재무관도 두었다. 의회는 3원제로서 20인 소위원회, 50인 위원회, 200인 위원회로 구성하였다. 제네바 공화정치는 상업에 기반을 둔 시민계급이 이끌어갔다.
프리드리히 선제후 한 명의 지지와 보호 아래 있던 루터와 달리, 존 칼빈은 시민계급인 상인의 지지를 얻어 종교개혁을 진행하였다. 배경이 다른 만큼 루터와 칼빈이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랐다. 칼빈은 루터와 달리 신앙과 세상을 분리하지 않았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건전한 사회 질서를 만들고 그것을 보전하려고 힘써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물질(돈)까지도 하나님의 섭리를 완성하는 도구로 보았다. 돈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 수단이다. 모든 소유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에게 돈은 하나님의 은총이지만, 이를 모르고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자에게 돈은 하나님의 저주이다. 그러므로 물질(돈)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책임성을 가진다.
칼빈은 루터와 달리 상업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상업도 노동과 같이 사회의 필수 요소이며 거래는 조화로운 사회질서의 실현을 이룬다고 보았다. 상업은 각 사람이 필요한 것을 얻게 함으로써 인간의 고통을 줄이고 삶을 즐겁게 한다. 칼빈은 상업을 존중하였고 사유재산과 상인들의 이윤도 인정하였다. 칼빈은 투기와 매점 매석 같은 행위는 비판하였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정당한 이윤은 권장하였다.
이자 소득에 대하여도 칼빈은 긍정적이었다. 칼빈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으로 보고 이자 소득을 인정하였다. 물론 힘없는 사람에게 과도한 이자소득을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의 비잔틴 기독교 법제와 중세 초기 로마법은 연 12%의 이자를 인정하였다. 서기 1,000년부터는 이자율이 33.5%까지 올라갔다. 프랑스의 미남왕 필립이 1284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대인이나 롬바르디아인들은 최고 이자율 266%까지 받았다고 한다. 중세 평균 이자율은 12%에서 33.5% 사이를 받았지만 때로 50%까지 받는 경우도 있었다. 칼빈이 개혁을 이끌던 제네바의 법정이자율은 5%를 넘지 못하도록 하였다.
칼빈은 빈부의 격차를 인정하고 물질적 번영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하였지만, 그것은 가난한 자들과 못 가진 자들을 위해 나누기 위함이지 자신만을 위함이 아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공동체를 위해 공유하도록 가르쳤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사랑으로 연합된 몸과 같으므로 물질의 균등한 분배가 있어야 한다. 그는 부유한 자를 ‘가난한 자들의 공복’이라 했고, 가난한 자는 하나님께서 부유한 자의 신앙과 사랑을 시험하기 위하여 보낸 자로 설명했다. 칼빈은 가난한 자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하였다.
칼빈은 사회복지를 제도화하였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구빈원 제도를 정비하였다.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일자리가 없을 때는 새로운 사업을 벌여 일자리를 만들어주라고 의회에 요구하였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지 감시하도록 하였다. 불공정한 거래나 부당한 이익은 용납하지 않았다. 칼빈은 불우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와 의료, 복지와 교육에 대해서 교회 차원뿐만 아니라 시 당국 차원에서 할 수 있도록 제도화에 힘을 썼다.
칼빈의 경제사상에는 자본주의 요소와 사회주의 요소가 공존한다. 칼빈의 경제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칼빈의 이런 양면적 경제사상을 지공주의라 부른다. 지공주의는 토지 사용의 대가를 사회가 공유하고, 노동과 자본 사용의 대가는 개인이 사유하는 경제체제를 의미한다. 지공주의는 레위기 25장의 희년법에 기초한 사상이다. 칼빈은 가난한 자를 적극적으로 돕는 이웃 사랑을 사회 정책으로 체계화할 것을 제시하였다. 경제정의는 단순히 구제와 봉사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인 공평과 정의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칼빈은 제네바 시를 하나님이 다스리는 아름다운 도시, 살기 좋은 행복한 도시를 만들고자 하였다.
칼빈의 지공주의 사상은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에 의하여 발전하였다.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한 헨리 조지는 초등교육을 마치고 사환, 선원, 인쇄공, 출판사원 등 밑바닥 직업을 전전하였다. 그는 사회 경제의 불평등 구조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한 후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구약 성경의 희년법과 경제를 연구한 후 ‘단일 토지세’를 주장하는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그는 토지 소유권은 하나님에게 있지 사람에게 있지 않다고 하였다.(레25:23) 그런데 물질 숭배 사상(바알숭배)에 빠져든 세상은 토지를 자기 것인 양 대를 이어 소유권을 행사한다. 그들은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고 단지 토지를 임대하여 얻는 소득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그는 토지로부터 얻는 소득이 그 땅에서 땀 흘려 수고하여 얻는 소득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토지 공유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모든 세금은 토지세로 단일화하자고 주장하였다. 다른 조세는 모두 철폐하고 토지세만 100% 거두어도 사회복지와 경제 운용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사상은 혁명적이었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다만 구약의 경제사상, 칼빈의 경제사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파리 경제대 교수인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1971~)는 2014년 ‘21세기 자본’이란 책을 출간하였다. 그는 지난 300년 동안 20개국 이상의 경제학적, 역사적 자료를 수집 분석하였다. 그 결과 자본 소득이 노동소득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헨리 조지는 토지 소유 자의 불로 소득을 지적하며 토지세를 주장하였던 반면, 피케티는 자본세를 주장하였다. 21세기는 땅을 가진 자보다 자본을 가진 자가 왕 노릇 하는 시대다.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생산을 한다. 그 공장에서 거둔 이익 중 일부는 노동자에게 지급되고 나머지 수익은 자본주가 가져간다. 토마 피케티는 돈이 돈을 버는 속도(자본 수익률)가 사람이 노동해서 돈을 버는 속도(경제 성장률)보다 빠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진다고 결론 내렸다. 따라서 자본세를 최고 85%까지 올리자고 주장하였다. 자본세를 85%까지 올려도 회사를 운영하고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데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토마 피케티의 주장이 현실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그의 주장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헨리 조지나 토마 피케티는 노동 생산성을 가장 중요하게 보았으며 불로 소득에 대해서는 적정하게 세금을 거두어 공적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하였다.
김낙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약 12.5%를,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은 일본과 유럽보다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OECD 평균 (25.3)에 비해 낮은 수준(24.2%)이고 미국의 39.1%와 일본의 37%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기업환경을 좋게 만들겠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대기업에 각종 세금 감면과 아울러 금융지원 정책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매출액 상위 10대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도 커서 삼성전자만 해도 약 2조 원가량의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았다. 이는 현 정부가 강조하는 공무원 연금 1년 적자 규모와 맞먹는다. 현금이 차고 넘쳐나는 대기업에 주는 이런 세금 감면 혜택만 안 주어도 공무원 연금을 삭감할 핑곗거리는 사라진다. 2005년 OECD에서 발표한 조세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보면 미국의 경우 17.39%, 일본은 27.27%, 독일은 41.7%, 스웨덴은 46.51%이다. 한국은 8.882%로 OECD 평균 31.11%에 한참 못 미친다. 거대기업에는 각종 세금 혜택을 주면서 정작 소시민에게는 정확하게 100% 세금을 징수한다. 여기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다. 이제 대한민국은 저축해서 부자 되는 길, 노력해서 부자 되는 길은 완전히 차단되었다.
헨리 조지는 토지 공개념, 토마 피케티는 자본의 공개념을 이야기하였다. 기독교는 교회 안에서만 논의하는 사사로운 종교개념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공적인 영역에서 공개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기독교 경제 사상을 토론하여야 한다. 칼빈주의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고 하였다. 칼빈은 제네바 시를 하나님이 다스리는 도시가 되도록 힘썼다.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언약 백성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가난한 자와 착취당하는 자가 없이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개인주의 신앙에 안주하는 것은 위선적 바리새 신앙으로 전락하기 쉽다. 교회가 교회 되는 것, 기독교가 이 사회의 리더십을 다시 회복하는 길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려고 했던 종교개혁 정신을 되살리는 데 있다.
참고도서
1. 프레드 그래함, “건설적인 혁명가 칼빈” 김영배 옮김 (서울 : 생명의 말씀사, 1986)
2. 채수일,”경제위기와 기독교의 대응에 대한 역사적 탐구 - 마틴 루터를 중심으로” ⌜신학연구⌟ 12, 한신대학교 한신신학연구소, (2000)
3. 이억주, “장 깔뱅 시대의 제네바 컨시스토리 회의록(1542-1544)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8)
4. 이양호, “칼빈의 종교개혁의 사회사적 배경” ⌜기독교사상⌟ 29(10), 대한기독교서회, (1986)
5. 이양호, “칼빈의 경제사상” ⌜신학논단⌟ 20,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1992)
6. 김홍섭, “존 칼빈의 경제, 경영 사상과 현대적 적용에 대한 연구” ⌜한국항만경제학지⌟ 31(1), 한국항만경제학회, (2015)
7. W.F. 그래함, “제네바에 있어서의 칼빈의 경제활동” ⌜신학정론⌟ 2(1), 합동신학대학원, (1984)
8. 김유준, “칼빈의 경제사상에 관한 지공주의적 고찰” ⌜한국기독교신학논총⌟ 67(1), 한국기독교학회, (2010)
9. 김어진, “피케티가 우리에게 준 선물” ⌜경제와 사회⌟ 105, 비판사회학회, (2015)
1. 저항하는 그리스도인
2. 사회개혁과 종교개혁
3. 용감하게 죄를 지으라.
4. 루터의 양심 고백
6. 미완의 혁명
7. 혁명인가? 보수인가?
9. 저항의 역사
11. 루터는 신비주의자였다.
12. 루터의 스캔들
13. 루터의 결혼생활은 어떠했을까?
14. 종교개혁가와 화가의 우정
15. 루터, 칼빈, 코페르니쿠스
16. 잊혀진 종교개혁자, 칼슈타트
17. 타협하는 종교개혁가, 부겐하겐
18. 패전으로부터 구원, 츠빙글리
19. 민주주의자, 츠빙글리
20. 진정한 목회자, 츠빙글리
21. 사회변혁가, 츠빙글리
22. 루터와 츠빙글리의 만남
23. 츠빙글리의 후계자, 불링거
24. 소통의 달인, 불링거
25. 종교개혁의 중재자, 마틴 부쳐
26. 마틴 부쳐의 결혼
27. 종교개혁의 길
29. 공부하는 종교개혁자, 존 칼빈
30. 칼빈의 아내 구하기
31. 칼빈은 아내를 사랑하였을까?
32. 루터의 경제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