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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Jun 15. 2024

책속에서_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233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 나의 가난한 마음.

다시 읽는 책. 이 세 가지가 만나는 날에 서평을 쓰게 된다.

내게는 없지만 책에는 있는 목소리와 시선을 빌려 쓰는 글이다.

나로는 안 될 것 같을 때마다 책을 읽는다.

엄청 자주 읽는다는 얘기다. 그러고 나면 나는 미세하게 새로워진다.

긴 산책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처럼, 현미경에 처음 눈을 댔을 때처럼.

낯선 나라의 결혼식을 구경했을 때처럼, 어제의 철새와 오늘의 철새가

어떻게 다르게 울며 지나갔는지 알아차릴 때처럼.

커다란 창피를 당했을 때처럼,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나는 사랑을 배우고 책을 읽으며 매일 조금씩 다시 태어난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이슬아,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7]  



234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한 생에서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날 수 있잖아.

좌절이랑 고통이 우리에게 믿을 수 없이 새로운 정체성을 주니까.

그러므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어. 다시 태어 나려고,

더 잘 살아보려고, 너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느라 이렇게 맘이 아픈 것일지도 몰라.

오늘의 슬픔을 잊지 않은 채로 내일 다시 태어나달라고

요청하고 싶었어. 같이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자고,

빛이 되는 슬픔도 있는지 보자고.  

[이슬아,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20]       



235   

˝이제 잘래,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야.˝

엄마는 웃었어. 태어난 아이를 꼭 껴안고 잘 자라고 입 맞췄어.

태어난 아이는 푹 잠들었어. 『태어난 아이』는 이렇게 끝나.

『100만 번 산 고양이』의 마지막과는 달리, 태어난 아이는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겠지. 그리고 한참을 더 살아가겠지.

태어났으니 이제 너무나 상관있게 된 것들을 모조리 느끼면서,

가끔은 이렇게 또 말하겠지.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라고,

오늘은 나 역시 그 말을 내뱉은 하루였어. 태어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지 뭐야. 하지만 또 어느 날에는 태어나서 참 좋다고

말하는 날이 또 오게 될 것을 알아. 시인 쉼보르스카가 말했듯

두 번은 없을 테니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기까지 우리는 모든 일을

꼭 한 번씩만 겪어.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지.

두 번의 똑같은 밤도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어.

『100만 번 산 고양이』와 『태어난 아이』 사이에서 얻은 힘으로

나는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해, 사랑할 힘과 살아갈 힘은

사실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어.  

[이슬아,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28]   



236      

말만 기억하며 살아가기엔 빈약해서일까?

『박완서의 말』은 이렇게 시작해.

내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으면 소설을 결코 쓰지 않겠죠.

첫 장에 적힌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웃음이 나

소설가들의 고생이자 힘의 원천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 같아서

[이슬아,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31]          



237

유리가 들어 있으니 조심하세요.

아래엔 깨진 컵의 모양이 간단히 그려져 있었지.

우리는 같이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곳에 그 봉투를 두고 왔어.

네가 붙인 경고문이 잘 보이도록 놓았어.

나도 너처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지만 그런 건 해본 적이 없었어.

너를 보며 생각했어. 윤리란 나의 다음을 상상하는 능력일지도 모르겠다고.

[이슬아,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42]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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