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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Sep 30. 2022

완결 후기 : 에필로그의 에필로그

23주에 걸친 연재를 마치며.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소설 한 편을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뛰어난 소설 한 편을 써내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간단한 일이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못 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가 이 책에서 이 말을 한 이유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단 한 권이 아닌 두 권, 세 권의 책을 써낼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살면서 한 편 정도는 누구나 소설이란 걸 쓸 수 있고, 그게 꽤 좋을 수도 있지만 ‘진짜 게임’은 두 번째 부터라구요.


하루키는 아마도 수많은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소설가를 꿈꾼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작품까지 쭉 써낼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요.

그러나 반골 기질을 타고난 저는 당시 이 문장을 읽고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럼 살면서 누구나 한 편 정도는 갓작을 써낼 수 있다는 거 아닌가?'


한 편의 좋은 소설.


그렇습니다. 하루키의 말은 발화자의 의도와 정반대로 작용하여, 저의 마음에 무모한 불을 당겨버린 것입니다. 저는 어차피 앞으로의 삶에서 소설로 먹고 사는 직업 소설가가 될 생각 따윈 없었기 때문에, '두 번째 이후가 진짜다'라는 하루키의 엄숙한 충고를 기꺼이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단 한 편 정도는 누구나 살면서 써볼 수 있다'는 좋은 소설. 그것에 의미를 두게 되었습니다.


저의 최초이자 유일한 소설, <낭만적 퇴사와 그 후의 일상>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기왕 살면서 좋은 소설은 한 편 밖에 못 쓴다면, 제가 기왕 쓰는 소설을 정말로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편 한 편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연재했고, 일정에 맞춰 무사히 완결하고 퇴고까지 마쳤습니다.


이 모든 건 전부 그 동안 묵묵히 지켜봐 주신 독자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요새 웹소설도 쓰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절실하게 느끼는 게 하나 있는데요.

글만 쓴다고 누구나 다 작가가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누구든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어주고 계신 당신은 분명 저의 독자겠지요?

그렇다면, 저를 당신의 작가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특별히 '메타 휴먼'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보았는데요. 소설의 주인공인 '박가영'은 기본적으로 저자인 저를 모델로 하고 있으나, 가상의 인물인 만큼 모든 것이 100% 저와 같진 않았습니다. (비율적으로 따지기는 애매하지만 '박가영'이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재료 중 저의 모습은 한 40% 정도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요.)  


<낭만적 퇴사와 그 후의 일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이 소설을 구상할 당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의 하이퍼 리얼리즘 웹소설 스타일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연재처가 브런치였잖아요? 브런치는 에세이가 강세인 플랫폼이라 그런지 제가 써서 올리는 소설도 결과적으로는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애매한 하이퍼리얼리즘의 글로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가영이라는 사람을 실존하게 하면 어떨까? 인터넷 상의 페르소나로, 마치 이 세상 어딘가에는 실제로 이 사람이 이러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실제로 종종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내부적 장치로 사용했던 SNS계정을 실제로 개설해서 떡밥용으로 운영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사례처럼, 주 1회 연재되는 제 소설의 타임라인에 맞춰서 살아가는 주인공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가영의 이름으로 인스타그램 계정(@gayoung_in_real_life)을 개설했습니다. 일종의 메타 휴먼(가상 인간)인 셈이었죠. 이건 제 부캐가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이니까요.


저는 저자이자 실존하는 인물인 저(설인하)와, 주인공인 메타 휴먼 박가영이라는 존재가 일주일에 한 번씩 브런치라는 공간 안에서 만나는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낭만적 퇴사와 그 후의 일상>이라는 콘텐츠를 매개로 해서요.


두 존재가 접선하는 매개가 되는 이 브런치북은 현실 세계와 설인하에게는 가상의 소설이지만, 박가영에게는 퇴사 이후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에 일어난 일들을 정리한 에세이인 것이지요. (마치 광야에서 접선하는 아이돌 애스파와 애스파의 ae같은 느낌.....이라면 감이 오실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현생의 설인하와 가상 세계의 박가영이 합작한 것이며, 두 사람의 기대치를 온전히 담고 있습니다. 박가영도, 설인하도. 일단 1차적인 목표는 제 10회 브런치북 공모전을 통해 출간을 하는 거예요.


<낭만퇴사>의 마지막 에필로그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브런치북 공모전에 수상해서 상금을 갖다주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는 가영에게 아버지 병호가 묻습니다.


"상금이 얼만데?"

"5......아니, 100만원."


가영은 공모전 최대 상금을 말하려다가 급히 금액을 낮춰 말합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깜냥이 10명의 대상 수상자에 포함될 정도까지는 아닐 것 같아서 소심하게 상금을 낮춰 말한 것입니다. ‘10명은 몰라도, 그래도 50명 안에라면 어떻게든 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요.


그런 가영이의 마음이 바로 지금의 제 마음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이 글이 최종 50인 안에 들지 못하여 출간하지 못한다면....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게 공모전에서 떨어지게 되더라도,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박가영스럽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어쨌든 제게 있어서 이 글은 꼭 써야만 했던 글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하고, 또 뿌듯합니다. 이 소설이 제게 어떤 외적인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소설을 썼던 저의 진심과 노력, 고스란히 담긴 시간들은 앞으로의 제 인생에서도 녹슬지 않는 중심이 되어줄 거예요.


가수 노엘 갤러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건 직업을 위한 활동이 되면 안돼. 네가 즐거워서 하는 게 돼야지. 그리고 5년 쯤 지난 후 네가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해도 씨X 어때? 그냥 구석탱이 스탠드에 세워놓기만 해도 보기에 멋지잖아?”


설령 이 소설이 제겐 구석탱이 스탠드에 세워놓을 단 한 장의 앨범에 그친다 해도, 제 눈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앨범보다 멋지게 보일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이 글을 끌어안고 행복해하는 제 모습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게 무슨 소설이야? 이 정도 글은 나도 쓰겠다.’


그렇다면, 한 번 써보세요!


전 글쓰기가 좀더 만만해졌으면 좋겠어요. ‘쟤도 했는데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느낌으로요.


이 세상에 차마 흉내낼 수조차 없는 멋진 글들은 이미 많잖아요. 유려한 문장과 화려한 표현, 감탄을 불러 일으키는 발상으로 감히 쓴다는 행위에 엄두조차 못내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글들은 멋지긴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를 작가로 만들 용기를 내게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글이 여러분에게 위와 같은 생각을 갖게 했다면 정말 기쁩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의 경우에도 ‘이 정도면 나도 쓸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할 만한 글을 읽었을 때 처음으로 키보드에 손을 올려 글을 쓸 용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내고 싶다는 꿈도 꾸게 되었구요.


저는 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저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다시 한번 창작자가 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쓰는 것이 조금 더 가벼워지고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도 책이야?

이런 것도 책이 되네.


저는 기꺼이 그 '이런 것'이 되고 싶어요.


 다시 처음의 하루키 이야기로 돌아가지만, 누구나 인생에서 한 편 정도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하잖아요. 자신의 이야기가 괜찮게 느껴진다면 누구든 소설로 써 봐야 한다고 봅니다. 문학적으로 높게 평가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괜찮아요. 제가 무슨 노벨 문학상을 탈 것도 아니고요.


제가 만들어 낸 이 한 권의 브런치북이, 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니시에이터가 된다면. 그래서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는 날이 온다면 정말로 기쁠 것 같습니다.







<낭만적 퇴사와 그 후의 일상>이 브런치북으로 엮어진 오늘.

2022년 9월 30일은 저의 퇴사 기념일입니다. 저는 딱 1년 전의 오늘 퇴사했거든요.


<낭만퇴사>의 에필로그 시점도 완결인 3월 말 이후 6개월이 지났을 즈음이니, 9월 30일 정도겠지요.

기왕 쓰는 거 이렇게 ‘1년’이라는 시기를 최대한 맞아떨어지게 연출해 보고 싶었습니다.  


<낭만적 퇴사와 그 후의 일상>을 쓰는 것은 제게는 거대한 원을 그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시작점을 지나 굴곡점을 돌아 끝점까지다 이어서 그려놓고 보니 마냥 동그란 원은 아니었네요. 중간에 이리저리 삐쳐나가고 실패와 굴곡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도 도달하여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소설을 읽어주신 독자님들 덕분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브런치에는 7년 정도 글을 써 왔고, 이미 에세이는 두 권이나 출간을 했지만, 그런 저에게도 소설을 쓴다는 것은 또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즐겁고 기꺼이 임하며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자유롭게 써볼 수 있었어요.


 일주일에 단 3-4시간에 불과했지만 이 소설을 쓰는 시간이 돌아오는 것은 제게는 어려우면서도 즐거운 시간이었답니다. 운동을 끝내고 자전거에 노트북과 키보드를 실은 뒤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키보드를 두들기던 그 날들을 저는 앞으로도 행복하게 기억할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뭐든지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제 인생에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안 좋은 일이 더 많을 수도 있죠. 박가영이 말한 대로, ‘인생은 안 되는 게 디폴트’니까요.


 이 소설을 쓰면서 제가 배운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제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저는 그것을 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써낼 수 있는 한 그것이 무엇이든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매사에 비관적이고 투덜대던 저를, 매번 뭘 하기도 전에 신포도부터 삼키던 저를 이 소설이 구원했습니다.


글이 있으면 길이 있다.

글이 없으면 길도 없다.


저는 이것을 끊임없이 되뇌이며 오늘도 부지런히 쓰고, 또 쓸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올립니다.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23주 간 연재된 저의 작지만 멋진 소설을 읽어주셔서요.


2022년 봄과 여름과 가을의 박가영의 이야기는 여기서 막을 내리지만, 메타휴먼 박가영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계속 남아 있을 예정이니 팔로우 해주시면 가끔 가영이의 소식도 전하도록 할게요.


여러분에게도 부디 이 2022년이 멋진 한 해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작가 설인하 드림.









이외 소소한 이야기.



1. 이 소설의 모태가 된 것은 책키라웃이라는 매체에 게재했던 <어느 가영이의 고백>이라는 칼럼입니다. 이 칼럼을 쓰면서 처음으로 이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거든요.



이 세상에는 아직 수많은 가영이들이 남아있다. 그 모든 가영이들이 전부 자신의 행복을 찾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딘가에는 나처럼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헤매며 인생의 불투명도를 높이는 그런 가영이 동지(?)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모쪼록, 그 모든 가영이들에게 행복한 에필로그가 있기를 바라본다. 좋든 싫든, 우리 모두 언젠가는 가영이가 될 것이고,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말로 그들의 결말을 퉁쳐버리기에는 너무 밋밋하니까.


- 칼럼 <어느 가영이의 고백> 중에서



이 글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고, 저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소설 형식으로 글을 쓰는 것을 본격적으로 시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2. <낭만적 퇴사와 그 후의 일상> 이스터 에그 리스트


그동안 제 브런치를 꾸준히 읽어 주셨던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낭만적 퇴사와 그 후의 일상> 속에는 제가 그동안 썼던 많은 글의 흔적들이 녹아서 섞여 있습니다.


 아래 글들은 일종의 참고 문헌(?)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낭만퇴사>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이 글들을 통해 제가 7년 전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 제 삶에 있었던 일들을 어떤 식으로 해체하고 재현하여 새로운 맥락에서 등장시켰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 일곱 빛깔 무지개가 아니어도 괜찮아

- 행복은 NOT TODAY

- 힘들어? 계속 힘들거야.

- 히피펌 해서 다행이야.

- 내가 얼마나 높이 날 수 있는지 당신은 모른다

- 팀장은 당신이나 되고 싶겠죠 

-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 본 이유

- 어른의 잔소리를 그럭저럭 참아내는 법 

- 우울할 땐 주식투자

- 나만 생각하면 안되나요?

- 제 부모가 홀수입니다만

-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 

- 오늘의 인생 

- 기자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 It’s time for a Leap of Faith.

- 일단은 도망부터 치고 보겠습니다.

- [10줄 문학] さようなら(사요나라)

- [10줄 문학] 소개팅, 개의 날

- [10줄 문학] 아빠가 말하는 대로

- 경력은 이만하면 됐습니다.

-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

- [10줄 문학]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 [10줄 문학] 매달리는 것은 막막하지만 도움이 된다.

- [10줄 문학] 두 백수

- 1인분의 삶



3. 표지에 대하여.



표지는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림도 직접 그렸고요. (저는 현재 정말로 웹툰 학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가영이 이야기로 인스타툰을 그릴수도 있을 것 같네요.


각 회차별 이미지로는 연재기간 내내 한 주 한 주 완성되어 가는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Gif 이미지도 만들어 두었는데 브런치에서는 제대로 구현이 안되는 것 같아서…. 이건 나중에 인스타그램에 한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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