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255
글쓰기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공업으로,
부단한 연마가 필요하다. 자기 안에 솟구치는
그것에 대해 알아채는 감각, 자기 욕망과 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감성적 역량, 세상을
읽어나가는 지식과 시선 등을 갖춰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삶의 장인이 될 수도 있고 아니 될 수도 있지만
더 망가지지 않고 살아갈 수는 있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43]
256
글쓰기는 ‘나’와 ‘삶’의 한계를 흔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삶’은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의
지루한 반복이다. 기쁨과 슬픔을 자아냈던 대소사의
나열은 삶의 극히 일부분이다. ‘나’의 범위 역시 피와
살이 도는 육체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신의 총체이기도 하며
관계의 총합이기도 하다. 나는 나 아닌 것들로 구성된다.
내가 쓰는 언어를 보자. 그간 읽었던 책, 접했던 언론,
살았던 가족, 만났던 애인, 놀았던 친구의 말의 총합이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53]
257
내가 쓴 글이 곧 나다. 부족해(보여)도 지금
자기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실패하면서 조금씩 나아진다는
점에서 나는 글쓰기가 좋다. 쓰면서 실망하고
그래도 다시 쓰는 그 부단한 과정은 사는 것과
꼭 닮았다. 김수영의 시 「애정지둔」에 나오는 대로
“생활 무한”이고 글쓰기도 무한이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58]
258
고통의 글쓰기는 투쟁의 글쓰기다. 타인의 시선이
만들어놓은 자아라는 환영과의 투쟁이고, 쓸 수 있는
가능성과 쓸 수 없는 가능성 사이의 투쟁이고,
매 순간 혼란과 초과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말들을
취사선택하는 투쟁이다. 이 치열한 싸움을 치르고 나면,
비록 구차스러운 자기주장 혹은 생에 대한 소심한
복수가 될지언정, 의미 있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64]
259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거의 다’ 좋은 책을
읽었다. 읽기와 쓰기는 다른 행위지만 내용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읽기가 밑거름이 되어
쓰기가 잎을 틔운다. 책을 읽어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어지고 사람을 이해하는 눈을 키운다.
세상은 어떤 것이구나 통찰을 얻는다. 모국어의
선용과 조탁, 표현력을 배운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82]
2024. 6. 29.
책속에서_아무튼, 메모(2) (brunch.co.kr)
책속에서_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2) (brunch.co.kr)
책속에서_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brunch.co.kr)
책속에서_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3) (brunch.co.kr)
책속에서_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2) (brunch.co.kr)
책속에서_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brunch.co.kr)
책속에서_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brunch.co.kr)
책속에서_부지런한 사랑(2) (brunch.co.kr)
책속에서_끝내주는 인생(2) (brunch.co.kr)
책속에서_앞으로 올 사랑(3) (brunch.co.kr)
책속에서_앞으로 올 사랑(2) (brunch.co.kr)
책속에서_또 못 버린 물건들 (brunch.co.kr)
책속에서_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brunch.co.kr)
책속에서_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brunch.co.kr)
책속에서_뜻밖의 좋은 일(2) (brunch.co.kr)
책속에서_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brunch.co.kr)
책속에서_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2) (brunch.co.kr)
책속에서_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brunch.co.kr)
책속에서_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brunch.co.kr)
23화 책속에서_슬픔의 노래 (brunch.co.kr)
22화 책속에서_불교를 철학하다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