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홍대리, 나 강차장인데, 잠시 통화 가능해?”
“네, 강차장님이 웬일이세요? 우리 볼일은 이제 다 끝난 거 아닌가요? 인수인계 문건도 정리해드렸고 소스코드 주석까지도 완벽하게 달아드렸는데 또 우리가 통화할 일이 남아있나요? 그리고 제가 제일 싫은 게 뭔지 아세요? 이렇게 불쑥불쑥 전화질 하는 거예요. 지금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고요. 언제까지 이런 원시적인 수단에 집착할 심산입니까?”
“아, 미안 갑작스럽게 전화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건 잘 아는데…”
“아시면 전화를 안 하면 되죠? 이미 일 저질러 놓고 뒷수습하는 모양새 취하지 마시고요. 저 전화 끊겠습니다.”
“잠시만, 3분이면 돼, 아니 1분이면 돼.”
“하… 뭡니까? 그럼 용건만 간단하게 말씀해 주세요. 저 바쁩니다.” 실제로 바쁜 일은 하나도 없지만, 일단 바쁜 척을 하며 내가 말했다.
“별일은 아닌데, 아… 별일이 될 수도 있겠다. 뭔 일이냐 하면 홍대리가 개발하던 시스템 있잖아. 백엔드 모듈, 그거… 센서에서 데이터 받는 그 모듈 있잖아. 그게 지금 작동이 제대로 안 되어서 누가 점검을 해줘야 하는데, 후임자를 아직 뽑지 못했고 구인 광고는 올렸지만… 홍대리도 잘 알다시피 개발자 구하는 거 하늘의 별따기잖아. 안이사가 몇 주 전에 지시한 사항이 있는데, 그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고 안이사는 계속 독촉 중이고… 이거 이러다가 출시 일정 지키기는커녕 중간에 모두 강제로 퇴사당하게 생겼어. 우리 지금 단체로 한강 다리로 가서 자살당하게 생겼다고. 이거 작동 안 되면 다 죽어. 홍대리 퇴사해서 이미 이 회사 직원 신분이 아니라는 건 잘 아는데, 옛정을 생각해서 잠시 도와주면 안 될까? 간단한 일인 것 같아서 말이야.”
“간단한 일이라뇨. 강차장님 개발자예요? 간단함과 복잡함에 대해서는 개발자가 판단할 문제지 기획자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죠. 어디서 그런 못돼먹은 것부터 배운 거예요? 게다가 안이사의 지시사항이건 출시 사항이건 그건 그쪽 회사의 문제지, 제 문제가 아니에요. 전 바톤을 강차장님과 그쪽 회사 손에 정확히 쥐어줬다고요. 그러니 손발이 잘 맞는 그쪽분들끼리 잘 화합하셔서 문제를 해결하세요. 아니 문서를 드렸으면 공부를 좀 하셔야지. 공부는 해보지도 않고 저한테 연락부터 한 거죠? 옛날 버릇 도졌네. 툭,하면 나한테 전화해서 마치 히어로한테 늘 문제를 들이밀 듯이… 바뀐 거 하나도 없군요. 강차장님, 아니 강형, 강씨인가? 나하고 나이도 한 살 차이밖에 안나는 걸로 아는데…” 빈정거리면서 내가 말했다.
“홍대리, 감정적으로 치닫지 말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하자고.”
“아니. 사람을 감정적으로 몰아간 게 누군데요? 김대리가 사건을 터뜨리고 있을 때, 하나같이 작당한 것처럼 입 다물고 마치 나치에 협력한 아이히만처럼 녀석에게 동조한 게 누군데요? 설마, 김대리가 일 벌이고 나서 결과를 나한테 살짝 알려준 걸로, 제가 강차장님과 한 편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죠? 제가 바보라서 일방적으로 당하긴 했지만, 사건의 결과를 받아 들고 나서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눈치챌 정도는 된다고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계속 입 다물고 계시지 왜 그랬어요? 이제 와서 우리가 무슨 친구라도 될 듯이, 아쉬우면 전화해대고 제가 그러면 ‘그래요 알았어요. 당장 도와드릴게요.’ 이럴 줄 알았어요? 일 없습니다. 알아서 하세요.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이렇게 말해놓고 바로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강차장은 시스템을 잠시라도 들여다봐 달라고 사례는 후하게 지불하겠다고 말했으므로 나는 통화를 종료하는 문제에 대해서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고심 끝에,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말했고 그 조건에 대해서 온라인으로 계약이 성립되면, 그쪽 회사에서 원하는 일에 대해 잠시나마 시간을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그 조건이라는 것은, 시간당 30만 원, 그 금액이 아니라면 관심 영영 끊을 거라고, 그랬더니 강차장은 30은 힘들고 20에 해주지 않겠냐고 그 정도가 자기 선에서 감당할 수 있는 볼륨의 금액이라고 애써 강조했다. 과제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제한되어 있다고… 절충하여 금액은 시간당 25만 원으로 협의를 봤다.
계약의 윤곽은 다소 추상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양쪽이 만족하는 선으로 절충된 듯했다. 일의 진행은 리모트로 진행하기로 했다. 특정 시간이 되면 그쪽에서 줌을 열어주기로 했고 나는 그쪽 시스템에 접속해서 요구사항을 처리하면 된다. 간단했다. 접속해서 처리하고 일이 끝나면 접속을 끊으면 된다. 대신 그들은 내가 진행하는 일을 꼼꼼하게 모니터링할 것이다. 투입되는 시간만큼의 비용이 집행될 것이므로 내가 실제로 일에 얼마나 집중할 것인지, 혹시 키보드에서 아무런 작용이 없다면 그들은 그 시간은 비용에서 제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시간당 25만 원을 받는다는 전제에는 실제로 내가 얼마나 많은 줄을 코딩할 것인지, 혹은 디버깅을 처리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요구 사항 분석을 위해서 화면을 얼마나 검토할 것인지, 그런 세세한 스크린의 동작에 따라 비용이 책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스크린의 픽셀이 변동되지 않는다면 비용은 가산되지 않는다. 생각은 필요 없다. 집요한 코딩이든 지독한 디버깅이든 화면 디자인이든 어떻게 해서라도 화면을 움직여야 한다. 생각하느라 시간을 소비한다면 그 시간은 비용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내일부터 나는 오전 10시에 줌으로 그들의 시스템에 원격으로 접속해서 요구사항 문서를 클릭해서 아래쪽으로 천천히 스크롤해가면 된다. 될 수 있으면 화면이 정지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분석이 끝나면 바로 코딩에 착수하면 된다.
그렇다고 시간을 억지로 소비하기 위해 독수리 타법을 쓸 수는 없다. 나는 최대한 내 스타일대로 코딩에 전념한다. 집중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본능이 튀어나올지도 모르지만, 나는 최대한 코딩에 성실하게 굴면 된다. 말하자면 코딩에는 진심인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갈 테고 1시가 되면 나는 기계적으로 코딩을 마치면 된다. 하지만 내가 업무에 투입한 실질 시간은 두어 시간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오전에 두 시간을 일하고 50만 원을 벌 작정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준 시간은 일주일, 최장 2주일이었으니 이런 추세로 일을 한다면 대략, 7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셈이었다. 14일 일하고 700만 원이라, 나쁘지 않다. 꽤 쏠쏠한 금액이다. 이 정도라면 한 달 살아내기엔 충분하다. 어쩌면 석 달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각오를 품고 내일을 대비한다. 내일은 연희와 서점에서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데이트는 나의 상상이고 단순한 만남이 될지도… 구체적인 시간은 잡지 않았다. 1시까지 일을 끝마치고 서점에서 만나면 된다. 아, 시간을 절약하려면 광화문 근처 스타벅스에서 일을 보는 것도 좋겠다. 스타벅스 3층의 조용한 자리 하나를 차지해서 거기서 3시간만 집중하는 거다. 1시가 되면 짐을 꾸리고 서점으로 향한다. 그리고 연희와 만나 데이트를 한다. 그것이 내일의 내 계획이다.
제1화 : 평범한 개발자에게 주어진 기묘한 특명 제2화 : 난 프런트 앤드 개발자라고!
제3화 : 사라진 김대리와 주인이 없는 버그 제4화 : 신촌에 사는 미식가와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