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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Apr 09. 2024

생각의 진화와 그 부작용까지 생각하기

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페벗 김영식 님의 <생각의 진화>란 글이 마음에 울림을 주었고, 말을 걸어 쓰는 글입니다.


물리적 세계와 마음의 세계

포기말[1] 단위로 살펴보겠습니다.

인류는 진화를 통화여 생각이라는 혁신적인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그 부작용도 함께 당하고 있는 중이다.

생각이 도구란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아마 그런 분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지난 주말 최봉영 선생님이 공유해 주신 <물리적 세계와 마음의 시계>란 도식을 통해 생각이 어떻게 도구가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림에서 가운데 연두색 영역은 감각sensory 기관에 의존하는 지식 체계를 표현합니다. 동물과 공유하는 지각의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은 지각을 상징인 언어로 표상하는 과정

<지각을 상징인 언어로 표상하는 과정이 바로 생각>에서 이미 정리한 내용을 불러옵니다. 앞선 그림에서 붉은색 화상표는 진화로 얻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파란색으로 표기된 영역들은 모두 생각의 영역입니다. 이걸 다르게 도식화한 그림이 있습니다.

지각과 달리 생각은 구상과 추상을 모두 실현할 수 있습니다. 인류에게 굉장한 힘을 주었다는 점에서 분명 도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도구로 보는 사고를 추상이라고 하죠.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하기 위해 추상의 사전 풀이를 봅니다.

『심리』 여러 가지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되는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하여 파악하는 작용.

뺄 추(抽)와 형상 상(象) 자를 씨말로 하는 낱말입니다. 완벽한 설명은 아니지만, 생각이 혁신적인 도구란 점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디딤돌 정도는 놓은 듯합니다. 다시 포기말로 돌아갑니다.

인류는 진화를 통화여 생각이라는 혁신적인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그 부작용도 함께 당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어떤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을까요? 이에 대해 바로 묻따풀 하기 전에 우선 모든 분들이 '불안'이 주는 부작용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예측 오류

다음 포기말을 먼저 보겠습니다.

생각이라는 신비하고 큰 그릇에 몸과 관계를 태우지 못하고 오직 '나'라는 착각만 담고서는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오직 '나'라는 착각은 생각 속에서 사는 것처럼 생각하는 일입니다. 생각이 진화한 것은 도구적인 이점을 주지만, 물리적 세상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흥미롭게 읽고 있는  <제정신이라는 착각> 내용에 따르면, 우리는 생명 유지를 위해 인지 오류를 갖도록 진화했습니다.

<월말 김어준>에서 박문호 박사님이 언급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숲에서 막대기를 뱀으로 착각해서 도망을 가는 오류를 범하는 일이 인지 오류가 없더라도 반응(도망)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감각 정보를 정확하게 입수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것보다 생명에 유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두뇌는 예측을 하는데, 그 예측은 인지 오류를 만들기도 하지만 선입견과 인지 편향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몸과 관계에 의식을 닿게 할 수 있다면

다음 포기말로 이어갑니다.

이 착각에서 한 발 물러나면 몸과 관계에 저절로 의식이 닿게 되는데 이런 과정으로 생각의 부작용은 조율될 수 있다.

김영식 님은 연기(緣起)를 비롯한 불교 지식을 쉽게 풀어주십니다. 하지만, 불교에는 문외한인 저에게는 최봉영 선생님이 자주 언급하시는 '쪽인 나' 사고법으로 이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주에서 우리는 단독으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한 일인데, 종종 동떨어진 관심사만 분리해서 존재하는 양 생각합니다. 조급하고 불안할수록 더 그렇게 하죠. 특히 한발 물러나서 '몸과 관계'에 대해서 살필 수만 있다면 상황이 훨씬 나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쪽인 나' 사고법을 몰라도 그럴 수만 있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 발 물러나면'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각자가 실천으로 닿아야 할 지점이지만, 최근에 읽은 김성완 님의 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관적인 관점이란 생각의 1인칭 시점 같은 거다. 당연히 생각의 사각지대가 많다. 그리고 그런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도 모르기 쉽다. 1인칭 시점에서 자신의 뒤통수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살펴본 생각의 부작용과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생각의 부작용이 아니라 생각의 사각지대라는 한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각지대를 무시하고, 내 생각에 집착하면 부작용이 생겨납니다. 바로 앞서 말한 선입견과 인지편향에 갇히는 것이죠.


1인칭을 벗어나 2인칭이나 3인칭으로 사고하기

다시 김성완 님의 글로 미루어 보면 상대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면 부작용에서 벗어날 하나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의 2인칭 시점은 상대방의 관점에서 나를 볼 수 있는 것으로 비유해도 될 듯하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뇌과학으로 배우는 대화라는 작용>에서 강조한 대로 상대의 말이라는 상징 자체만이 아니라 감정과 상징의 바탕이 되는 문맥을 읽을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다수의 저자들은 공감은 훈련이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상대와 우리가 놓인 맥락을 인지할 수 있다면, 아마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찰의 대상으로서의 나와 관찰자로서의 내가 분리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나의 육체로부터 관찰자인 내가 분리되는 유체이탈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나의 존재와 나의 상태를 알아채는 자의식과도 다르다.

가장 먼저 인용한 도식에서 meta라는 낱말이 등장하는 지식의 유형입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연재

1. 질문이 우선하고, 실행이 질문을 만든다

2. 스피노자 대신에 김성근 감독님

3. 야구라는 것으로 인생을 전하기

4. 야신이 말해 주는 자신만의 길

5. 새로운 운칠기삼(運七技三) 활용법

6. 인간에겐 한계가 없다는 걸 모르고 산다

7. 말이 말을 걸어 나의 차림을 돕는다

8. 우울증이란 진단명은 나의 개별성을 뭉갠다

9. 야신이 거북이에게 배운 자신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법

10. 속말하지 않고 드러내 기록하고 다듬는 일의 힘

11.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12. 일상에서 만난 낱말 바탕 풀이의 즐거움

13. 바탕이 되는 기본, 바탕을 닦는 기초 그 위에 첨단

14. 다양한 뜻의 그릇 역할을 하는 한국말의 유연성

15. AI 시대에는 수능보다 덕후

16. 일단 공개적으로 시작하면 만나게 되는 것들

17. 괴짜(Geek, Nerd), 해커 그리고 덕후

18. 인공지능을 Linguistic Self 동료로 활용하기

19. Realization(실체화)와 나의 지난 24년

20.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을 상상하다

21. Person의 정의에는 민주주의가 축적되어 있네요

22. 역사적으로 보는 Person과 한국말 인식 모형의 만남

23. 인격: 사람됨의 근원이 되는 속성에 대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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