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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May 08. 2023

아빠와 처음 해보는 것들

미야툰-50




22년 여름 알밤양, 밤톨군, 일돌남편과 제주 한 달 살이를 했다. 보름은 서귀포 남원읍에, 남은 보름은 협재 옹포리에 숙소를 잡았다. 남원읍에서 옹포리로 숙소를 옮기고 울산에 사는 아빠를 초대해 3박 4일 함께 하기로 했다. 아빠가 오는 당일 오전에 부지런히 제주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집안 사정은 구구절절하니 뒤로 하고 친정아빠를 4년 만에 만나는 날이었다.  전화를 하니 이미 도착해 공항 정문 앞으로 나오셨단다. 저 멀리서 아빠가 느릿느릿 걸어오시는 게 보였다. 아빠는 현대자동차 근로자로 퇴직하시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15년 근무하다 퇴직 후 지금은 텃밭 가꾸며 소일하시며 지내신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는 나이가 팍 들어 보였다. 걸음걸이도 느려지고 발밑을 끌듯이 천천히 걸었다. 그동안은 염색을 해서 몰랐는데 백발의 아빠를 보니 진짜 할아버지가 되었구나 싶어 눈물이 날 것 같았다그런데 아빠가 제주에 어울리는 티셔츠와 평소 쓰지 않는 모자를 쓰고 계신 게 아닌가. 제주에 오려고 장만하셨단다. 전화할 때 무심한 듯했지만 사부작사부작 준비하며 이 날을 기다리셨던 같아 또 코끝이 찡해졌다.


아빠와 처음 해보는 여행

어릴 때 몇 번 빼고 아빠와 여행을 함께 하는 게 처음이었다. 일흔여덟의 아빠. 이번이 아니면 함께 여행할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 며칠 편안한 여행은 접고 효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숙소에 오기 전 한담해안 카페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 하고 아빠랑 둘이서 해안 산책로를 걸었다. 아빠 손을 잡으니 아빠도 내 손을 꼭 잡았다. 회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 가족, 제주 와서 처음으로 횟집에 갔다. 아빠가 맛있게 드신다. 회상이 제주도 콘셉트이라 재밌다고 함께 웃었다. 평소 말씀도 표현도 별로 없는 분인데 술이 들어가니 그나마 말씀을 하신다. 숙소에 와서 TV를 처음 틀었다. 손주들이 노래방을 연결해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아빠랑 노래라니, 살면서 이것도 처음이다. 흥이 나 노래하는 아빠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아빠 여기 보세요?" 

"무슨 사진을 자꾸 찍냐..."

어디를 가도 사진은 내 담당이지만 아빠와 함께 있는 동안 더욱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아빠의 뒷모습도, 독사진도 열심히 사진에 담는다. 아빠는 뭘 자꾸 찍냐고 하면서도 허허 웃으며 점잖은 포즈를 취하신다. 아빠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내려고 하니 카톡이 깔려있지 않다. 문자도 보낼 줄 모르신다. 3일 동안 미션은 핸드폰을 스마트하게 쓸 수 있게 하기다. 근데 와이파이는 어떻게 설명하지? 글자 조합도 잘 모르시니 대략 난감하다. 먼저 메일부터 만들고 구글 가입하고 카톡을 깔았다. 자식들과 사진만 주고받고 안부만 나눌 수 있어도 좋을 텐데. 


도로를 달리다 길가에 한 줄로 길게 세워 말리고 있는 기다란 줄기들이 보였다.

나: 저게 뭘까? 시래기 말리나?

남편: 시래기가 저렇게 길고 크겠냐?

우리 부부의 대화를 듣던 아빠

아빠: 저건 깨야. 참깨! 대를 묶어서 말린 다음에 씨를 털어야지.

나,남편: 아하!!


숙소 근처를 산책할 때나 나들이 중에 아빠는 종종 푸성귀 이름을 말해주신다.

아빠:(참깨밭 앞에서) 저게 깻잎 아이가. 아빠 밭 깨는 사람 키가 안 보일 정도로 자랐어. 

멀어서 이파리 모양도 잘 보이지도 않는데 저건 팥이네. 붉은팥 하신다. 책에서 봤으면 금방 까먹는데 이렇게 들은 건 신기하게도 기억이 잘 난다.


부모님은 막내인 내가 돌 되기 전 먹고살기 위해 도시로 나오기 전까지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도 짓고 누에도 쳤다고 했다. 엄마를 통해 누에 먹이러 산으로 뽕 따러 간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뽕잎이 어떻게 생겼는지 찾아본 적이 없다. 산양큰엉곶에 갔을 때 아빠가 이게 뽕잎이라고 알려줬다. 얼른 뽕잎을 찍었다. 뽕잎이 이렇게 생겼구나. 뽕잎을 따 등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자루에 꽉꽉 채워 힘들게 내려왔을 부모의 그 시절을 그려본다.


아빠는 새벽 6시면 집에서 나와 1시간을 걸어가 텃밭을 가꾸신다.  종종 안부전화를 드리면 밭에 있을 때가 많다. 매일 꾸준히 걸으시니 그 연세에도 정정하신 것 같다. 커다랗게 들려오는 옛 노래. 손수 키우고 거두며 땀 흘리는 혼자만의 공간. 잠시 땀을 식히며 막걸리 한 잔 드신다는 곳,  아빠에게 몸을 움직이고 쉴 수 있는 밭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아빠 가시는 날, 공항에 도착해 배웅하고 돌아오는데 아빠가 비행기를 못 탔다고 당황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공항에는 이르게  도착했는데 아빠의 걸음걸이를 생각 못하고 늦게 안으로 들여보낸 내 탓이었다. 아빠도 놀라시고 우리 가족도 놀라 다시 돌아가 아빠를 모셔왔다. 제주공항이 많이 붐비고 복잡했는데 좀 더 세심하게 챙겼어야 했다는 후회가 되었다. 오후부터 제주에는 비 예보에 다음날 호우경보까지 떠서 신경이 바짝 쓰였다. 아빠도 자꾸 밖을 내다보며 걱정을 하셨다.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다 짧은 소강상태를 반복했다. 비행기 운항이 정상인지 수시로 확인하며 어제보다 일찍 출발했다. 발권하고 일찍 안으로 들여보내서 무사히 비행기를 타셨다. 울산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으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느리지만 잘 걸으시고 뭐든지 맛있게 잘 드시고 제주 여행을 즐기시는 모습이 고맙고 보기 좋았다.

아빠를 챙기느라 4일 동안 편안하게 쉬진 못했지만 제주에 오라고 한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남편도 확실히  제주 여행으로 아빠와 좀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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