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그런 허무한 생각에 빠져 있다 보면 하루가 무심하게 지나갔다. 재미없는 소설의 첫 장을 넘기듯 하루는 아무런 특징도 없이 넘어갈 뿐이었다. 소설과 달리 내 삶엔 재미있는 인물도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색무취, 특징도 없는 일상만 똑같이 반복될 뿐이었다.
어느 날은 시험 삼아 도서관에 찾아가 봤고, 어느 날은 작은 서점을 방문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대형 서점에서 길을 잃어볼 작정으로 이 매대와 저 매대 사이, 책장과 책장 사이를 누비고 다니기도 했으나 찾을 것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황과 조우할 뿐이었다.
연희를 만나지 않은 지, 거의 일주일이 지나갔다. 어쩌면 10일, 아니 한 달이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예고편도 없이 본편 상영을 강행한다. 하루는 단지 시작되었을 뿐, 중간도 끝도 찾기 힘들었다. 날이 갈수록 나는 진한 무력감에 도취되어가는 듯했다. 그렇다고 연희에게 먼저 연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연락하고 싶었지만, 먼저 종적을 감춰버린 연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혹은 연락했다가 거부당할까 봐, 말하자면 나는 쓸데없는 자존심에 집착하기만 했다. 참는 것은 결국 병이 된다. 병은 사람을 파괴시킨다. 파괴된 내 집처럼 내 정신도 비슷하게 피폐한 모양으로 변해갈 것이다.
어쩌면 연희는 애초에 나에게 관심이랄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새싹이 아예 싹을 틔우지 않았을 것이다. 나만 쓸데없이 먼저 앞서간 것이다. 이번 경우에도 나만 상처받고 또 나 혼자만 남게 되는 건 아닐까.
혼자 남을 때마다 나는 오래된 디비디 타이틀 더미를 뒤지는 것 같은 상상을 하며 넷플릭스에서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를 튼다. 그러니까 캐스트 어웨이의 척 놀랜드적인 고립감을 맛보는 것이다. 혼자서,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갇혀서 영원히 탈출하지 못하는 상상, 그런 기분 나쁜 상상에 빠지다 보면, 현실의 내가 그나마 구원을 받은 거라고 애써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에 무인도에서 혼자 일어난다. 일어나면 존재하지도 않을 거울을 상상하며 내 얼굴을 관찰한다. 늘어난 수염과 머리카락을 오랫동안 만지작 거리다, 그 문제적 낭떠러지 꼭대기로 천천히 올라간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단단히 묶어놓은 밧줄을 끌어내어 목에 칭칭 감는다. 그리고 낭떠러지로 아래로 몸을 던져버린다. 그리고 다음 날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끝나지 않을 영원한 저주.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은 척 놀랜드보다 더 나쁘다. 나는 무인도보다 더 심각한 고립의 정 가운데 놓여 있다. 게다가 언제든 탈출이 가능하지만 나는 애써 주어진 기회를 거부한다. 나 스스로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스스로에게 저주를 내리는 편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거부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기에, 나는 나 스스로 손에서 힘을 풀어버리는 것이다.
진한 무력감에 빠져서 살아가더라도 아주 가끔은 기운을 차리기도 한다. 임종을 앞둔 암환자가 마지막 순간에 힘을 쥐어짜 내듯 그렇게 나도 알 수 없는 기운에 사로잡혀 활동적인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나는 연희도, 통 연락을 하지 않던 부모님도 아닌 강차장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카톡과 같은 메신저가 아닌 전화로.
강차장은 두 번 신호가 울리자마자 바로 전화를 받았다. “웬일이야 홍대리, 아… 지난번 알바 때문에 전화했구나. 아참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조만간 프로젝트가 재개될지도 모르거든. 잠깐만! 전화가 와서 내가 5분 후에 다시 연락 줄게. 5분만 기다려줄래?”
제1화 : 평범한 개발자에게 주어진 기묘한 특명 제2화 : 난 프런트 앤드 개발자라고!
제3화 : 사라진 김대리와 주인이 없는 버그 제4화 : 신촌에 사는 미식가와의 만남
제5화 : 김대리와 나교수의 은밀한 시간 제6화 : 믹스 커피의 순수성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