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 한 인간의 비극적 결말

연작소설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내가 바빠서 깜박했지 뭐야.” 강차장은 5분이 아니라 몇 시간이 지나서야 새된 목소리로 연락을 해왔다.


“아, 강차장님 그렇군요. 조만간 프로젝트가 재가동된다니 아주 반가운 소식이네요."

"맞아, 아까 내가 그런 말을 했었지? 맞아 프로젝트는 조만간 재개될 것 같아."


"제가 활약할 기회가 생기겠네요. 저는 일감이 완전히 사라진 줄 알고 걱정했지 뭡니까.” 나는 허무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았다. 그래, 걱정이 된 건 사실이었다. 일감이 사라지면 수입도 덩달아 사라진다는 이야기, 아무리 자존심이 중요하고 배신을 안긴 회사라 할지라도 먹고는 살아야 한다. 이렇게라도 비굴하게나마 목숨을 보전해야 뭔지도 모를 훗날을 도모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요즘 회사가 말이 아니야. 검찰에서 압색(압수수색)이 들어와서 난리도 아냐. 검은 정장을 입은 부대들이 들어와서 싹 쓸어가 버렸다니까. 아주 태풍 같은 놈들이었다니까. 폭풍이 몰려와서 모든 걸 휩쓸어가는 것처럼, 서버든 피씨든 심지어는 서랍에 든 유에스비까지 싹 챙겨갔다니까. 난 개인 외장하드까지 뺏겨버렸어. 거기 얼마 전 제주 가족 여행 사진이 들어있었는데 말이야. 아주 망했어. 이거 돌려받지 못하겠지?”


“압색요? 누가 자금 횡령이라도 했대요? 무슨 일입니까?” 너무 궁금해서 내가 물었다.

“아, 홍대리 모르고 있었구나. 뉴스 안 봤어. SNS에도 블라인드에도 이야기가 돌았을 텐데, 몰랐구나.”


“저는 SNS도 안 하고 뉴스 기사도 안 본 지 오래됐습니다. 정권 바뀌고 나서는 더 뉴스 안 봐요.

“아. 그랬으니 몰랐을 수밖에…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김대리 있잖아. 원수지간이 된 김대리 잘 알지? 잘 알겠지 모를 리가 있나. 지금은 김이사님이지만… 어쨌든 김이사가 수백억 원짜리 과제를 딴 건 잘 알고 있잖아. 홍대리가 그쪽에 연루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경쟁자로서 속해있긴 했으니까. 어쩌면 홍대리에게도 검찰에서 연락이 갈지도 몰라, 참고인 자격으로 진술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생각은 하고 있어.”


“김이사가 무슨 청탁에라도 연루된 겁니까?”

“연루된 게 아니라 주도했지. 얼마 전 국정감사 때, 대대적으로 정부과제 연구비에 대해서 감사가 진행됐었나 봐. 국가 주도 사업 중에서도 볼륨이 제법 큰 사업들이 모범으로 선정된 거지. 근데 김대리와 김대리와 함께 컨소시엄으로 들어왔던 Y대학교와 국책 연구기관에 비리가 좀 있었지. 녀석들이 켕기는 게 하나도 없었겠어? 자기들끼리 일감을 몰아주고 특정 업체는 바지사장 격으로 들어왔다는 거야. 말하자면 사업권은 명망 높은 곳에서 따내고 실제 일은 하청업체들이 용역 형태로 수행한 거지. 돈은 앉아 있는 놈이 챙기고 의자 밑에 있는 녀석은 일벌레처럼 일만 하는 셈이지. 보통 업계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로 몰래몰래 이루어져. 공공연하게 진행되던 일인데 본보기로 딱 걸린 거야. 게다가 사업 선정과 관련되어서 평가위원을 김대리가 매수했나 봐. 원래는 공정하게 평가가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김대리가 평가 시스템을 해킹해서 사전에 평가위원 명단을 입수한 거지. 지가 가진 능력을 그렇게 활용하다니... 그래서 그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하곤 뒷돈을 주고 매수한 거지. 11명 중에서 60% 정도만 내 사람으로 만들어도 엄청 유리한 거잖아. 그것 덕분에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아주 높은 점수를 받은 거야. 89점을 받았다나? 기록적인 점수였대. 프레젠테이션에서 받은 역대 점수 중에서 가장 높았다네. 말하자면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거야. 결과는 당연히 김대리의 승리였지. 완벽한 승리.”


“컨소시엄에 참여한 회사는 수십 개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거의 유령회사였대, 말하자면 페이퍼 컴퍼니였던 거지. 연루된 회사엔 대부분 바지사장들이 포진되어 있었고, 연구비는 존재하지도 않은 연구원들에게 입금된 거야. 말하자면 유령들에게 골고루 자금이 배분된 거지. 그 통장 관리는 김대리가 비밀스럽게 한 거고.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 갔을지는 잘 알 수 있겠지? 아마도 김대리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챙겼을 거야. 서민은 상상할 수도 없는 돈? 말하자면 은행이 아닌 자기 주머니로 입금이 된 거야. 뭐 그 돈으로 건물을 샀다나. 빌딩을 올렸다나, 차도 바꾸고…”


“그 돈 중에서 일부분은 교수에게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들에게 또 협조해준 회사의 대표들에게 골고루 배분됐을 거야. 나라가 건국된 후, 논공행상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거기서 실수로 배제된 사람들이 있었나 봐. 공평한 배분이란 솔직히 너무 이상적인 거잖아. 배제된 자들은 언제나 앙심을 품는 거고. 영원한 비밀도 없고 영원한 동지도 없는 게 이 바닥이야. 영원한 원수도 없지만… 아무튼 비밀은 순식간에 업계로 퍼져나가더니, 몇몇 정치인의 레이더 망에까지 걸리게 됐나 봐. 그러다 결국 특검의 빌미까지 초래하게 된 거지. 김대리는 지금 그 비리의 수장으로 밝혀지고 있어. 바다 밑에 숨겨진 빙하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거지. 완벽한 승리라고 자찬하던 김대리의 파티는 불과 3개월을 못 넘기게 됐어. 짧은 기간에 내편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원수를 양산하기도 했으니까. 결국 무시했던 작은 가시 같은 거 하나가 김대리의 심장까지 파고들게 된 거야. 그 영향이 회사에까지 미치게 됐어. 안이사는 그 비리에 깊이 관여되지는 않았지만, 상관이니 조사를 피할 수 없게 됐고, 대표도 마찬가지 입장이 된 거지. 그래서 회사가 정신없게 된 거야. 주주들도 아주 난리가 났고… 홍대리가 몰랐다고 하니 솔직히 놀랐지만… 난 홍대리가 대충이라도 알고 있는 줄 알았거든. 인터넷에서 꽤 떠들썩하게 취급됐으니까. 동네 꼬마도 다 알 정도로.”


“알겠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나중에 또 통화하시죠.”

“그래 프로젝트 재개되면 연락해줄게. 조금만 기다려봐.”

“알겠습니다.”


날자마자, 아니 날갯짓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추락이다. 알바트로스의 거룩한 시도 취급도 받지 못한다. 그냥 시작하자마자 인생이 막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번 눈을 뜨면 해가 떠오르고 감았다가 다시 눈꺼풀을 끌어올렸더니 아뿔싸 해 질 녘이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김대리의 인생은 그런 눈 깜빡 거림과 같은 찰나의 것이었을까. 결국 그런 결과는 예정된 것이었을까. 내가 이기는 싸움을 하려고 시도했다면 나도 김대리와 비슷한 파국을 맞았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김대리가 아니더라고 해도 상황이 인간을 때로 괴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 소파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지금은 자국만 남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앉아서 생각에 빠져야 했다. 모든 생각일랑 깔때기에 부어 넣고 무심하게 걸러내고 싶었다. 김대리는 그렇게 비밀리에 펼친 일들이 천년만년 아무도 모르게 무탈하게 흘러갈 것이라 예견했던 걸까. 아니면 찰나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일을 벌인 걸까. 어느 쪽도 현명하지 못하다. 차라리 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닥에 누워 있는 게 이로울지도 모른다. 나는 바닥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작고 큰 사각형의 무늬가 물결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연희로부터는 여전히 연락이 없다. 나 역시 그녀에게 연락을 시도하지 않는다. 우린 보이지 않는 끈을 아슬아슬하게 부여잡고 있다. 어느 한쪽이 손을 놓아버리면 반대편은 튕겨나가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끈에서 튕겨나간 것일까. 연희는 이미 끈을 가위로 툭 잘라내 버린 건 아닐까. 나는 누군가에게 배제된 걸까.




제1화 : 평범한 개발자에게 주어진 기묘한 특명 제2화 : 난 프런트 앤드 개발자라고!

제3화 : 사라진 김대리와 주인이 없는 버그 제4화 : 신촌에 사는 미식가와의 만남

제5화 : 김대리와 나교수의 은밀한 시간 제6화 : 믹스 커피의 순수성에 대해서

제7화 : 길박사의 족집게 강의 제8화 : 배신

제9화 : 김대리의 제안 제10화 : 개선 작업

제11화 : 꿈의 암시 작용 제12화 : 미행 1

제13화 : 미행 2 제14화 : 미행 3

제15화 : 미행 4 제16화 : 방황 1

제17화 : 방황 2 제18화 : 떠남 1

제19화 : 떠남 2 제20화 : 만남 1

재21화 : 만남 2 제22화 : 만남 3

제23화 : 전환 1 제24화 : 전환 2

제25화 : 숙박 1 제26화 : 숙박 2

제27화 : 숙박 3 제28화 : 방벽

제29화 : 바깥쪽 제30화 : 산책

제31화 : 복귀 제32화 : 정리

제33화 : 만남 제34화 : 스승과의 만남

제35화 : 조연과 주연 제36화 : 하수와 고수

제37화 : 잘못된 것들은 제자리로 제38화 : 원격 업무

제39화 : 취약점의 해결 제40화 : 모든 것은 다시 원점으로

제41화 : 척 놀랜드적인 고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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