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몇 번 애완동물을 키웠다. 처음 며칠 예뻐하다 관심이 시들해졌다. 개는 집 밖 비좁은 담벼락 귀퉁이에 매일 목줄이 묶여 있었고 자주 낑낑거렸다. 문을 열고 밖에 나가면 사잇길에서 철컹철컹 목줄을 당기며며 왈왈 짖는 소리가 들렸다. '날 좀 봐줘' '나도 데려가' '나도 산책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같았지만 무심하게 할 일만 하고 녀석에게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고 다시 집에 들어갔다. 어느 날 아빠가 내일 개를 저 멀리 데리고 간다고 했다. 데리고 가는 게 무슨 의미인지, 녀석이 어떻게 되는지 알았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그동안 알뜰히 보살펴주지 못했고 앞으로도 잘 돌봐줄 자신이 없었다.
누가 데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양이도 잠시 키웠다. 어느 날 냥이가 장롱 옆으로 온 줄 모르고 문을 닫았다. 물컹한 느낌과 동시에 찌르듯이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너무 놀라 같이 비명을 지르며 문을 여니 냥이가 몸을 뒤틀며 움찔거렸다. 녀석은 그날을 못 넘기고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내 잘못으로 냥이가 죽었다. 충격이었다. 우리 집에 온 몇 마리의 애완동물은 끝까지 행복하게 지내지 못했다.
결혼하고 신혼 때 남편과 배경맨 P옹이 시장에 갔다가 박스에 넣어서 파는 갓 낳은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어릴 때 기억 때문에 나는 동물을 특히 고양이는 키우고 싶지 않았다. 당시 배경맨 P옹이 화실에서 숙식을 했는데 고양이를 화실에서 키우겠다고 했다. 그런데 녀석은 좀 이상했다. 자꾸만 방정맞게 후다다닥 빠르게 뛰어다녔다. 화실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고 똥을 아무 데나 싸놨다. 밥을 먹으려고 하면 발톱을 세워 무릎 위로 기어 오려고 해서 밥을 먹기 힘들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느긋하게 어슬렁거리는데 저 녀석은 왜 그럴까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새끼 때 여러 사람 손을 타며 정서적으로 불안해진 거였다. 사랑으로 살폈어야 했는데 성격 이상한 고양이라고만 생각했다. 1년 후 화실 운영이 힘들어 사무실을 접고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집에서는 고양이를 키울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차마 하면 안 되는 짓을 했다. 냥이를 밤에 퇴근하고 오면서 골목에 방생을 했다. 집에 돌아와 마음에 걸려 녀석을 보냈던 곳에 남편이 다시 가서 근처를 찾아보았지만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고 했다.
애완동물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던 죄책감이 마음에 남았다. 생명을 기른다는 것은 이쁠 때만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끝까지 함께하고 책임지는 거라는 것을 무겁게 깨달았다. 그러다 아이들 강아지시즌이 되니 조금 흔들렸다. 며칠 쿠키를 데리고 있으니 진짜 예뻤다. 하지만 예쁘다고 덥석 데려오기에는 잘못한 게 너무 많았다. 애완동물을 키우기 전에 대상에 대해 공부하고 충분히 준비를 하고 맞이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배웠다.
가족상생의 길.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쿠키와 몇 달에 한 번 만남은 아쉬운 대로 아이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었다. 일돌 남편 덕분에 울 아이들 강아지 시즌이 잘 지나가고 있다.
쿠키를 볼 때마다 나에게 왔다 사랑받지 못하고 보내버린 그 아이들이 생각난다. 좋은 주인이 되어주지 못해서 진심으로 미안하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