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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Nov 09. 2023

넌 내게 신뢰감을 줬어

Emotions 39. 치욕 pudor


치욕(pudor)은
우리가 타인에게 비난받는다고 생각되는
어떤 행동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에티카> 스피노자



<치욕> 잔인한 복수의 서막

치욕은 타인이 자신의 어떤 행동을 비난한다고 생각할 때 우리의 내면에 발생하는 감정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타인이 비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이 비난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느냐의 여부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p414


 영화 & 영상

달콤한 인생


 도서

<모멸감> 김찬호

<마음사전> 김소연



 음악 & 뮤직비디오

Either Way_IVE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_버벌진트 (feat. Koonta)

Everybody Business_Kehlani (켈라니)





치욕은 '수치와 모욕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pudor는 '정직, 정숙, 신중함'의 의미와 '부끄러움, 수치' 등의 의미를 갖는다. 결이 다른 두 언어가 같은 단어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정직이나 정숙함의 정도를 하나의 기준으로 본다면,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는 정도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자신 혹은 타인에게 엄격한 기준을 갖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감정에 취약하지 않을까.



지적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지가 폭로되었을 때 치욕을 느끼는 것처럼, 거친 야수성을 자랑하는 건달은 자신의 허약성이 폭로될 때 치욕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강신주의 감정수업> p415



스스로 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평가를 받는 순간 치욕을 느낄 것이다. 남이 나를 내가 원하는 대로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치욕을 부르는 건 아닐까. 김소연 시인의 '이해'와 '오해'에 관한 정의처럼 말이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하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마음 사전> 김소연




그러나, 꼭 치욕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치욕을 당하는 일 자체가 없어야 하겠지만, 사실 대놓고 모욕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럴 땐 증거를 수집해 법적 대응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뭐라 대응할 수 없지만, 은근한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 이럴 때가 인간 관계에서 가장 애매한 치욕이 아닐까 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것은 습득된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 이하로 보는 것은 습득되었을 확률이 높다.

<모멸감> 김찬호



IVE의 'Either Way'는 '가끔은 이해조차 안 되는 시선들 억울하기도 하지만 오해가 만든 수많은 나와 얘기해. 우리 모두 다 나야'라고 전한다. '누가 맞고 틀린 게 아닌 걸, 모두 다르게 살아가듯'. 



결국 자신의 기준과 잣대를 타인에게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타인의 기준을 꾸역꾸역 자신에게 맞추지 않아야 한다.



Either Way_IVE


누가 내 말투가 재수없대

잘난 척만 한대

또 누구는 내가 너무 착하대

바보같을 정도래


가끔은 이해조차 안 되는 시선들

억울하기도 하지만

오해가 만든 수많은 나와 얘기해

우리 모두 다 ‘나’야


Either way, I’m good

전부 좋다구


누가 맞고 틀린 게 아닌 걸

모두 다르게 사랑하듯

Either way, I’m good

Either way


내게는 언니같은 친구인데

어리광이 심하대

털털한 줄 알았던 저 아이는

마음이 넘 약한 걸


쟤 I 라서 그래 넌 E 라서 그래

됐고 그냥 V 나 하자


Either way, you’re good

전부 좋다구

누가 맞고 틀린 게 아닌 걸

모두 다르게 사랑하듯

Either way, you’re good

Either way


I, I, I 또다른 나

나, 나, 나


누가 맞고 틀린 게 아닌 걸

모두 다르게 살아가 듯

전부 좋다구

사랑과 미움


모두 다 가지면 되는 거야

하나만 고를 필요 없는 거야

Either way, we’re good

웃어주자구 우후후

이렇게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영화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대사다. 마치 유행어처럼 퍼져 나갔다. 그리고 나무위키에 이 대사가 검색되다니. 이쯤 되면 '목욕값을 줬어', '목욕가운을 줬어', '넌 나에게 4딸라를 줬어' 등의 패러디가 모욕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찾아 보니 패러디 광고까지 있다.





같은 제목의 노래도 있다. 버벌진트의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다.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지만, 모욕감이란 걸 주면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대신 열 받게 되는 모양이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_버벌진트 (feat.Koonta)

역린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고전 [한비자]에 등장하는 개념인데, '거꾸로 된 비늘'이라는 뜻이다. 용의 머리 뒤편에는 다른 비늘 방향과 반대로 되어 있는 비늘이 모인 부분이 있다고 한다. 용을 탄 사람이 잘못해서 그 부분을 만지게 되면 용은 화를 내며 고개를 돌려 자기 등에 타고 있는 사람을 물어 죽인다. 한비자가 용의 거꾸로 된 비늘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마다 '역린'이 있으니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것이다. (...) 좋은 인간관계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만나고 있는 사람의 역린을 먼저 파악할 일이다. 역린만 건드리지 않는다고 보호해 준다면, 우리는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웬만한 섬세함이 아니고서는 사람마다 다른 역린, 그리고 상황마다 옮겨다니는 역린을 파악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p418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역린같은 취약점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건드린다거나 고치려 들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때론 관계가 불편해지더라도 상대방을 위해서 진심어린 충고도 필요하다.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모욕감을 느낄 수도, 진심으로 고마워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결국 관계란 상호 작용이고, 그 밑바탕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신뢰가 쌓인 관계에서는 그 어떤 말과 행동도 모욕적이지 않다. 오히려 하나 하나가 다 배려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니까, 모욕적인 상황을 피한다거나 모욕할까봐 조심할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신뢰를 쌓아 나가면 된다. 두터운 신뢰가 우선이다. 



개인도, 사회도 '넌 내게 신뢰감을 줬어'라고 말할 수 있는.



Everybody Business_Kehlani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 카테고리
(감정의 포스팅 순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땅의 속삭임
1. 비루함(낙담)  2.자긍심  3. 경탄  4. 경쟁심  5. 야심 6. 사랑 
 7. 대담함  8. 탐욕  9. 반감  10. 박애 11. 연민  12. 회한

� 물의 노래 
 13. 당황 14. 경멸 15. 잔혹함 16. 욕망  17. 동경  18. 멸시 
19. 절망  20. 음주욕 21. 과대평가  22. 호의  23. 환희  24. 영광

� 불꽃처럼
25. 감사 26. 겸손 27. 분노 28. 질투 29. 적의 30. 조롱
31. 욕정  32. 탐식 33. 두려움 34. 동정  35. 공손 36. 미움 

� 바람의 흔적
37. 후회  38. 끌림  39. 치욕  40. 겁 41. 확신  42. 희망 
 43. 오만  44. 소심함 45. 쾌감 46. 슬픔 47. 수치심 48. 복수심

48가지 감정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바탕으로 한 <강신주의 감정수업>의 목차를 따랐으며,
감정에 관한 포스팅은 도서 내용과 별개로 헤아리다가 선정한 음악과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 이전 포스팅


48가지 감정 위로 음악은 흐르고

48 Emotions <Prologue>


� 땅의 속삭임

Emotions 01.비루함, 낙담(adjectio) 자존감을 회복할 때

Emotions 02. 자긍심 acquiescentia in se ipso '당당히 할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

Emotions 03. 경탄 admiratio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Emotions 04. 경쟁심 aemulatio '권투 말고 건투를 빌며' 

Emotions 05. 야심 ambitio 야생의 생명력으로 야심차게

Emotions 06. 사랑 amor  마주 잡은 은유의 기쁨

Emotions 07. 대담함 audacia 무모한 질문에 대한 무한한 대답 

Emotions 08. 탐욕 avaritia 갈망할수록 갈증나는

Emotions 09. 반감 aversio 'Make it better'

Emotions 10. 박애 benevolentia 'We are so beautiful'

Emotions 11. 연민 commiseratio 사랑이라 믿었던 연민

Emotions 12. 회한 conscientioe 오지 않은 슬픈 나날의 두려움


� 물의 노래

Emotions 13. 당황 consternatio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Emotions 14. 경멸 contemptus 꽃 향기만 남기고

Emotions 15. 잔혹함 crudelitas 진심으로 빌게

Emotions 16. 욕망 cupiditas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Emotions 17. 동경 desiderium 희망의 세기를 향해

Emotions 18. 멸시 despectus 본질 속 카프카적 진주처럼

Emotions 19. 절망 desperatio You Raise Me Up

Emotions 20. 음주욕 ebrietas 디오니소스와 예술 한 잔

Emotions 21. 과대평가 existimtio 이미 내 안에 모든 것이

Emotions 22. 호의 favor 호의는 권리인가 호감인가

Emotions 23. 환희 graudium 가슴이 소리치는 환호

Emotions 24. 영광 gloria 명예의 전당과 영광의 멍에


� 불꽃처럼

Emotions 25. 감사 gratia 흔해도, 흘러 넘쳐도 좋은

Emotions 26. 겸손 humilitas 존엄성을 짓는 중용의 겸손

Emotions 27. 분노 indigmatio GOAT 말고 G.O.A.T

Emotipns 28. 질투 invidia 사랑 심은 곳에 질투난다

Emotions 29. 적의 ira 정의 아닌 적의 없는 용서

Emotions 30. 조롱 irrisio 정정당당하게 롱런

Emotions 31. 욕정 libido 사랑과 감사의 배당금으로

Emotions 32. 탐식 luxuria 마음의 입맛을 돋우다

Emotions 33. 두려움 metus 쉼표와 음표가 공명하는 설렘

Emotions 34. 동정 misericordia 티파니에서 동병상련

Emotions 35. 공손 humanitas 타인은 공손이다 feat.구용구사

Emotions 36. 미움 odium 해리가 미움을 만났을 때


�️ 바람의 흔적

Emotions 37. 후회 foenitentia 신이라면 어땠을까

Emotions 38. 끌림 propensio 끌림, 그 끌어당김에 대하여




✅ 지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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