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 #26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여행지 파타고니아..!!
서기 2022년 5월 20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우리는 이미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로 들어가는 관문 뿌에르또 잉헤니에로 이바녜스(Puerto Ingeniero Ibáñez)를 출항하여 라고 헤네랄 까르레라(Lago Buenos Aires/General Carrera) 호수 위를 항해하고 있다. 협수로를 지나 바다를 쏙 빼닮은 호수 위 바람의 땅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한편 그동안 파타고니아 여행을 통한 단상을 하나둘씩 챙겨보고 있다. 호수면 위로 그 장면들이 하나둘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하 링크된 관련 포스트(매거진)에서 파타고니아의 속살을 만나 보시기 바란다.
혹시.. 죽기 전에 딱 한 번만이라도 가고 싶은 버킷리스트는 챙기고 계시나요..?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기회만 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을 듯.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먼 곳으로 비용과 시간을 들이며 발품을 파는지 쉽게 이해가 안 갈 때가 적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 집을 나서는 순간 '개고생을 면치 못한다'라고 할 만큼 여행은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고급 호텔에 머물면서 최고급 요리를 즐기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주변에서 간간이 눈에 띄는 풍경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여행자로 부르기엔 어딘가 어색하지 않나. 그래서 사람들은 한 두 가지 카테고리로 그들을 묶어놓고 여행자 혹은 관광객 등으로 부른다.
살아가는 동안 두고두고 잊지 못할 행복한 기억들은 몇이나 될까..?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자운영(紫雲英)은 이맘때면 들판 가득 피곤했다. 콩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 자운영은 주로 마른논에 집단 서식한 탓에 녀석들이 꽃잎을 내놓기 시작하면 온 벌판이 눈이 시리도록 화려한 융단으로 변한다. 볕이 좋은 날 나는 모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논둑길을 따라 융단 가운데를 걸었다. 어머니는 말투가 어눌했고 걸음을 잘 걷지 못하는 반신불수의 몸이어서 어머니를 등에 업고 논둑길을 천천히 걸었던 것.
어머니를 잠시 논둑길 옆에 모셔두고 바람을 쐬게 한 다음 표정을 살펴보니 행복해 보였으며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단 한 차례라도 어머니를 등에 업어본 기억이 없었다. 나를 낳아주시고 귀히 여기며 정성껏 길러주신 어머니를 한 번 업어보는 게 그렇게 힘들었단 말인가.
"아저씨.. 아저씬 어느 별에서 오셨어요?"
"얘는.. 그걸 몰라서 묻니..?"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지으세효?"
"왜? 내가 어째서..!?"
녀석은 품에서 거울을 꺼내 보여주며 나의 얼굴 앞에 들이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녀석은 무엇을 봤길래 내게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졌을까. 나는 녀석을 빤히 들여다보며 조금 전의 느낌을 되새겨 봤다. 내 몸은 마치 진공상태에 놓인 것처럼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까마득한 우주 저 먼 곳 어느 별에 불시착한 것 같은 착각이랄까.
부활을 믿습니까.. 아니면 믿고 싶습니까?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에 둥지를 튼 후, 르네상스를 일군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정리해 보니 단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지는 것. 그중 하나는 우리가 학습을 통해 잘 아는 예술가들이며 또 하나는 이들 예술가를 후원한 가문이다.
예건데 메디치와 미켈란젤로, 메디치와 브루넬레스키, 메디치와 산드로 보티첼리, 메디치와 누구누구 등 르네상스를 일군 예술가들이 열심히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메디치가의 후원 덕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 같은 일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흔치 않은 일이자 처음 있었던 위대한 인류의 재발견이었다. 실체가 모호한 신의 중심이었던 신본주의 사상에서 인류문화사의 주역인 인본주의가 부활의 날개를 단 것.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선택
우리는 보다 중요한 선택을 언제쯤 하게 되는 것일까..? 오늘 아침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요즘 주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이탈리아어 인텐시보 과정(corso intensivo italiano)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심화과정을 통해 언어를 다듬는 것. 이 과정은 오전 9시 20분부터 시작해 오후 1시면 마무리된다. 하지만 내게 매우 벅찬 일이다. 젊은 학생들과 달리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라면 '괜히 시작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것. 물론 재밌기도 하다.
문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휘를 늘리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단어를 많이 숙지해야 할 텐데 (글쎄.. 글쎄 말이다. 한 귀로 들어오는 듯싶다가 두 귀로 다 빠져나가는 걸 어쩌나..ㅜ) 언어란 모름지기 쉬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그게 제 마음 같지 않다. 그래서 남몰래(?) 발버둥 치다시피 하는 것. 따라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인텐시보 과정에 매달리는 게 생활이 됐다.
누가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했던가.. 세월 참 빠르다. 여기서 말하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은 인생의 부귀영화가 덧없이 사라짐을 일컫는 사자성어가 아니다. 삶이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누군가의 기획에 의한 연출된 것이라 할까. 브런치에 글을 끼적거리기 시작하면서 이전에 쉽게 느끼지 못하던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정리를 요구한다. 내가 주연으로 출연한 인생은 기획자가 조물주라거나 연출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예건데 100년을 사노라면 자기가 고민해서 작성한 시나리오에 최소한 100편의 콘티가 구체화되고, 100편의 콘티는 다시 햇수와 계절 및 하루 24시간으로 나뉠 것이다. 이때 기획. 연출은 당신의 몫이다. 즉 내가 기획자이며 연출자이고 주연으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써(만들어) 나가는 것. 희한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당신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 늘 간섭을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시나리오는 내가 쓰고 연출은 하늘이 한다고 말하곤 한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는지 나도 몰라.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시선이 움직였을 뿐이야.
토끼풀이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곳은 지구 반대편 중부 파타고니아가 시작되는 작은 도시 칠레의 차이텐( Chaitén)이라는 곳이다. 한 때 이곳은 대략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차이텐 화산이 폭발한 직후부터 사람들의 이주가 시작됐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인구는 천명 미만으로 대부분의 시민들이 도시를 버리고 떠난 후였다.
따라서 도시는 황량한 모습으로 이방인을 대했다. 도시 곳곳은 마치 몹쓸 전염병이 휩쓸고 간 것처럼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회색빛으로 변한 도시 한 모퉁이에는 무수한 풀꽃들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녀석들의 함성이 들렸다. 어떤 녀석들은 폴짝폴짝 뛰며 또 어떤 녀석들은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아줌마, 아저씨.. 너무 잘 오셨어요..!!"
외계의 생물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지난 주였다. 학생들의 작문 시간에 재미있는 주제가 주어졌다. 향후 50년 지구의 미래 및 우주에 존재할 수도 있는 생물 등에 대해 마음 가는 대로 쓰라는 것. 이 주제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그룹을 지어서 토론한 후 결과물을 옮기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와 한 조가 된 여학생 두 명과 짝을 지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우리는 지구별에 대한 관심을 벗어나 먼 우주로 향하고 있었다. 먼저 종이 한 장을 꺼내 외계의 생물('외계인'이라 한다)이 사는 어느 행성을 그렸다. 모티브는 어린 왕자가 사는 행성이었다. 그러나 코딱지만 한 작은 별에 등장하는 생물의 모습은 착하고 똑똑하며 잘 생긴 어린 왕자와 판이한 생김새였다. 생각도 달랐다.
그래서 하나하나 그림을 완성해 나갈 때마다 우리는 서로 키득거리며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흉측하게 생긴 모습 때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생김새는 이러했다. 녀석이 사는 별의 이름은 안드로메다가 아니라 메가 스텔라였다. 메가 스텔라는 두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혹시 재산목록을 작성해 보신 적 있나요..? 최근 피렌체에 둥지를 튼 후 가끔씩 눈팅하는 한국의 소식 속에는 한 재벌 총수의 죽음이 눈에 띄었다. 그가 유명을 달리한 직후 어떤 사람은 그를 가리켜 '하늘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썼다. 그는 정말 하늘을 사랑했을까.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일가의 재산이 수천억 원에 이르고 2세들은 재산 때문에 진흙탕 싸움을 한단다. 또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탈세하는 등의 수법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전한다. 죽기 전까지 그의 가족들이 세상에 물의를 일으켜 가며.. 그러니까 그가 진심으로 사랑한 건 하늘이 아니라 돈이었을까.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한 인간의 죽음보다 그가 가진 돈 때문에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수 억 원도 아니고 수 백억 원도 아닌 수천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졌다면 세상에 더 부러울 게 없을 것. 돈만 있으면 만사가 형통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서두를 재미없는 가십(gossip)으로 장식한 건 다름 아니다. 세상에는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부지기 수인 것. 그중 한 두 가지 예를 들면서 부제로 써 둔 나우엘 우아 피 호수에 박제된 한 유람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한 쌍이지 아마도..! 북부 파타고니아가 시작되는 칠레의 로스 라고스(Los Lagos) 주, 뿌에르또 몬뜨(Puerto_Montt)에서 이동한 직후 만나게 된 오르노삐렌(Hornopiren)의 봄은 매우 특별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변화무쌍한 날씨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날이 밝은가 싶으면 오르노삐렌 삼각주는 뽀얀 안개에 갇혀, 누군가 베일을 둘러둔 듯한 비현실적 풍경을 연출했다.
그때마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 앞에서 할 말을 잊는 것. 뷰파인더는 너무 행복했던 나머지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것까지도 잘 모를 정도였다. 행운이었다. 이날 아침 꿈속에서 본 듯한 또 다른 한 장면과 마주치게 된 것. 누군가 베일을 조금씩 아주 천천히 조금씩 걷어낸 자리에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말 두 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요즘도 수첩에 여행 메모를 하시나요..? 참 바보 같은 자문자답이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행자들은 여행기록을 수첩에 적었다. 나의 수첩은 여행일 수와 비례해 꽤 두툼했다. 아울러 배낭 속에는 현지 가이드북(론니플래닛)과 지도는 물론 취사도구와 양념까지 챙겨 다녔다. 거기에 침낭과 여벌의 옷과 카메라 장비 등이 포함돼 마치 쌀가마니를 지고 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랄까. 이게 대략 아날로그 배낭여행자의 모습이다.
얼마나 어수룩한 모습인가. 따라서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요즘 같으면 두툼한 수첩이나 가이드북 등을 대신해 줄 휴대폰이나 태블릿 하나면 족하다. 현재 위치는 물론 각종 정보와 기록들을 여행지에서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여행자는 불평 한 번 없었다. 그리고 어떤 기록들은 굳이 수첩에 기록하지 않아도 가슴에 담아두는 것. 또 여행 사진 한 장만 펼치면 당시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다시금 생각해 봐도 황당한 장면..! 까마득히 오래전, 내게 발생한 일이다. 초등학교(국민학교) 입학도 하기 전, 어린 꼬마 녀석의 시선에 환상적인 한 풍경이 포착됐다. 어느 날, 뒤뜰로 이어진 현관문 바깥 앞동산 위에 알록달록 색깔이 뚜렷한 무지개가 걸려있는 게 아닌가. 그땐 그게 자연의 한 현상이라는 걸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무지개에 가까이 가 보기 위해 고무신을 신는 둥 마는 둥 잽싸게 앞동산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무지개는 어디론가 사라진 것. 황당했다. 그때 저 먼 곳에 조금 전에 봤던 무지개가 다시 걸려있었다. 무지개에 대한 환상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을까..?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인천 국제공항 활주로를 날아오른 직후 머나먼 여정에 돌입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라틴 아메리카의 파타고니아(Patagonia)이며 그곳은 사람들이 지구별 최고 청정지역이라 부르는 곳이었다. 우리는 한 때 그곳에 살짝 발만 들여다 놓았을 뿐인데 발끝에 묻은 파타고니아의 향취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사라지기는커녕 풍미를 더한 발효식품처럼 더욱더 진한 그리움을 풍기곤 했다. 그곳은 마치 외계의 어느 행성을 닮았을까. 어쩌다 마주친 식물들은 생물도감에서 조차 쉽게 찾을 수 없었고, 산과 벌판과 강과 작은 도랑과 숲과 식물 한 포기, 또는 바람 한 점까지, 우리가 늘 보고 자랐던 곳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파타고니아를 다녀온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건만, 처음 만났던 그 느낌 그대로 생생하다 못해 그곳에 여전히 머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들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나중에 넌지시 깨닫게 되면서 무릎을 탁 치게 됐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하루가 다르게 우리 앞에 등장하면서 쉽게 잊혀갔던 것들. 또 불과 수 십 년 전만 해도 몇몇 선택된 자들만 누리던 호사가 일반화되면서 인류의 위대함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랄까. 만물 중에 인류가 위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 두 가지를 끼적거리고자 브런치 앞에 앉았다. 그것은 인류가 만들어낸 기막힌 발명품 두 가지였다.
사진 한 장이 덩그러니 놓인 이곳은 남미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북부 파타고니아 지역에 위치한 라고 쟌끼우에(lago llanquihue) 호수 곁의 이맘때 풍경이다. 길 옆 작은 언덕에 누가 일부러 가꾸어놓은 듯한 아름다운 풍경이 뷰파인더를 자극했다. 그냥 길 옆의 소소한 풍경일 뿐인데.. 주변에는 오소르노 화산(Vulcano Osorno)과 얼마 전 불을 뿜은 깔부꼬 화산(Vulcano Calbuco)이 호수를 품고 있는 천혜의 명소. 여행자들이 이곳을 방문하면 누군가 꼭 안아주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다. 아래 링크된 지역을 열어보시면 뿌에르또 바라스, 뿌에르또 옥타이 및 엔세나다 등 작은 마을이 호수 주변에 빙 둘러있는 곳. 아무 때나 아무 곳이나 그 누구라 할지라도 이곳에 발을 들여다 놓는 순간부터 직선의 세상 도시로부터 얻게 된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을 수 있다.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름다운 숨겨진 명소이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해 있으므로 가능하면 오랜 여행을 계획해야 본전(?) 생각이 안 날 것. 지도를 펴 놓고 여행지를 꼼꼼히 살피면 뿌에르또 몬뜨(Puerto Montt)에서부터 파타고니아 남부로 길게 이어지는 까르레떼라 오스뜨랄(Carretera Austral)을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이때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작은 도시나 마을에 들러 잠시 쉬었다 가면 묵은 체증이 단번에 싹 내려가실 것. 세월은 정말 빠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버킷리스트라는 곳에 적는데 이미 작성된 리스트에서 파타고니아 투어가 빠졌다면, 그중 하나를 반드시 빼야만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게 될 것 같다. 파타고니아는 그런 곳이다. 그런 곳이었다.
이름도 재밌는 따구아 따구아 호수 가는 길..!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오르노삐렌의 투어가 끝나가는 무렵 민박집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호수 이름은 라고 따구아 따구아(Lago Tagua Tagua)였다. 이 호수는 북부 파타고니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꽤 유명했는지, 본격적인 파타고니아 투어에 나서기 전에 꼭 한번 둘러보라며 일러주었다.
우리는 지도를 펴 놓고 호수 위치를 확인한 다음 곧장 리오 뿌엘로(Escuela Rural Rio Puelo)로 향했다. 호수와 가까운 마을이었다. 그리고 호수 이름이 왜 따구아 따구아로 불렸는지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이 호수의 이름이 어디서부터 유래됐는지 잘 몰랐다. 그 대신 오래전 원주민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니까 아메리카 대륙을 침탈한 스페인인들이 이 땅에 살던 원주민이었던 마푸체(Mapuche)인 등 인디오들이 대량 살육당하면서 본래의 이름만 남았던 것일까
누가 그 마음을 이해해줄까..? 사노라면 답답해서 미칠 지경에 이를 때가 참 많다. 괜히 답답할 때도 있다.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찾아내는 일이 있다. 하고 싶은 거 원 없이 해 보는 것. 하지만 현실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쉬운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겨본다. 술을 실컷 마셔본다. 아니면 어디론가 멀리 떠나던지. 이런 걸 현실도피 혹은 '잠수 탄다'라고 말한다. 잊어보려거나 잠시 숨어 지내는 것. 그게 또 소원이라면 우리가 꿈꾸는 소원은 무엇일까.. 술을 마시던 어디론가 멀리 떠나던 우리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하고 방랑자가 아닌 여행자라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잠수도 마찬가지지. 물고기가 아닌 다음에야 호흡을 오랫동안 멈출 수가 없지. 그렇다고 돈과 권력과 명예가 차고 넘치면 좀 더 나아질까. 똑같더라. 살아보니 빈부귀천이 다 똑같더라.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늦게나마 깨달은 게 참 다행이었다. 무엇이든지 차고 넘치거나 바닥을 보일 때 주변을 둘러보며 소통할 대상을 찾는 것. 오늘날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중증에 이르렀던지 지하철에서 본 현대인들은 사람들을 외면한 채 모두 다 한결같이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있었다. 현대인의 소통 방법이다.
"여보, 기억나? 그때 우리 거기서 뭘 했지..?"
젊었을 때는 잘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긴다. 생겼다. 누구의 말마따나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은 사람들은 살아갈 날을 계수하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것. 과거에 대한 추억들이 미련에 남고 또 그때가 자꾸 그리워지는 법이랄까. 어떤 광고를 보니 한 노인이 집을 나선 후 실종되는 일이 발생한다. 누가 노인을 납치한 것도 아니었다. 자발적인 실종이 일어난 것이다. 자발적인 실종..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어디론가 멀리 떠나 자취라도 감추어 보고 싶었을까. 아니었다. 광고가 던진 메시지는 '기억상실(記憶喪失)'이었다. 언제인가부터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 말은 가벼운 증세의 건망증(健忘症)과는 다른 중증 이상의 치매(癡呆)였다. 치매는 이랬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당신 곁을 떠나던 날..!
그땐 너무 어려서 몰랐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이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얼마나 소중했고 사랑했으면 주변에 누가 있거나 없거나 온 몸을 비틀어대며 마구 통곡을 하는 것. 누군가 곁에서 말려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오히려 울음을 달래던 사람마저 덩달아 통곡을 하던 곳. 그곳은 어느 화장장이었고 하관식을 하는 이별의 현장이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눈물바다라 불렀다. 눈물바다.. 눈물이 바다를 이룬 곳. 철이 들면서 알게 된 눈물바다의 진실은 대략 몇 가지. 눈물을 만든 이유는 별리였다. 별리란.. 유명을 달리한 어떤 사람 등으로부터 떠나 혼자 남게 되는 것. 혼자는 둘째치고 두 번 다시 당신을 만날 수 없게 된다는 건 슬픈 일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통곡의 현장에서는 실신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것.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으면..
바쁜 일상이 다 지나고 나면 나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기는 것일까..? 가끔씩 가슴이 답답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탁 트인 공간을 바라보면 속이 뻥 뚫린 듯한 느낌이 든다. 속이 시원해진다. 좁은 공간에서 느끼던 억눌림이 일시적으로 해방된 것.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유년기를 되돌아보니 그랬다. 어린아이가 무슨 일 때문에 속이 답답한 일이 생기겠는가..
오래전 초등학교 시절을 뒤돌아 보면 주말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것 같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백양산(白楊山,642m)을 오르는 것. 다시금 생각해 봐도 어린이에게 매우 무리한 것 같은 등반이었지만, 힘들여 오른 산꼭대기에 서면 세상이 다 내 품 안에 안긴 듯했다.
그곳에 서면 발아래로 저 멀리 서면(西面) 너머로 부산항이 불쑥 솟아올라 보이고, 뒤로는 낙동강 줄기가 굽이쳐 흐르는 곳. 김해평야가 길고 널따랗게 뻗어있었다. 그땐 그리스 희랍 신화에 심취(?)해 있었던 터라 나는 세상 어디든지 다 가 보고 싶었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부산항 너머로 하루라도 빨리 가 보고 싶어 집으로 돌아오면 형들의 백지도에 새겨진 내 위치를 보고 또 확인해 보는 것이다.
어느 날 잊고 살던 어여쁜 자아가 면경처럼 또렷이 드러났다면..?
희한한 일이었다. 그날 아침 우리는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에 위치한 오르노삐렌의 리오 네그로 강을 거닐고 있었다. 아침이슬이 촉촉이 내려앉은 강가의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걷노라면 마치 꿈속 같은 느낌이 드는 곳. 이 같은 풍경을 연출한 건 짙은 안개 때문이었다. 세상은 뽀얀 안갯속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가끔씩 이름 모를 새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곳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식물이 널따란 잎과 길쭉한 꽃술을 내놓고 있었다. 또 샛노란 꽃잎을 내놓은 작은 꽃잎 위 또는 강가의 풀잎 위에는 수정같이 맑은 이슬이 맺혀있었다. 이 같은 장면은 어디서 많이 본듯하기도 했고 전혀 못 본 외계의 풍경 같기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곳에 이름도 희한한 군네라 띤끄또리아(Gunnera tinctoria)란 식물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식물조차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우리를 보고 나처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생김새를 보니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의 모습을 쏙 빼닮아 오래전부터 같이 살아왔던 것 같은 착각이 든 것이랄까. 티 없이 맑은 자연 속에서 그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마냥 행복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하지 못한 일 등 뭔가 성취했을 때 혹은 더 잘나 보였을 때 행복감이 충만할 텐데, 까지껏 청정지역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해한다면 그게 정상일까. 비현실적일까.
일상으로부터 멀어져야 느낄 수 있는 것들..!
동틀 무렵, 우리는 중부 파타고니아의 작은 마을 코크라네(Cochrane)에 위치한 숙소를 떠나 뒷동산으로 향했다. 대략 3천 명도 채 안 사는 작은 마을 코크라네는 중부 파타고니아에서는 도시로 불렸다. 지도를 펴 놓고 근처를 둘러보면 전혀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위치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우리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부터 뿌에르또 몬뜨까지 빠르게 남하한 후 까르레떼라 오스뜨랄을 따라 계속해서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작은 도시 코크라네가 여행자에게 특별한 느낌을 선물해 준 것. 인간이 느낄 수 없는 진공상태를 경험한 것이다. 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소음이 전혀 없는 무공해 지역이랄까. 대도시에 사는 동안 익숙해진 소음이 사라지자 마치 진공상태를 느끼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정말 조용한 도시였다. 만약 이 작은 도시를 포근하게 감싸고도는 리오 코크라네(Rio Cochrane) 강이 없었다면, 이날 아침 우리는 모든 세상이 박제된 채 잠든 도시를 발견하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조차 멀어지는 법이지..!
우리가 이동한 궤적을 돌아보면 원시인들의 상상 속에서 꿈도 꾸지 못할 거리였다. 서울 강남에서 인천 국제공항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다시 대권 항로를 따라 단 한 번에 남반구의 시드니까지 도착할 수 있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다시 대권 항로를 따라 북상하며 칠레의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하는 일.. 원시인들이 꿈도 꾸지 못한 일이 혹은 부처님 조차 황당해할 공간 이동은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우리가 말하는 현대는 손바닥 안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것. 과학은 우리 스스로를 신격화했다고나 할까.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동안 기내에서 머릿속에 떠오른 건 인간이 만든 기막힌 발명품 비행기였다. 만약 오늘날 휴대폰만 있고 비행기가 없었다면 앙꼬 빠진 찐빵 격이겠지 아마도.. 우리가 먼 나라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여 그곳의 문물을 접할 수 있는 것도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갈 때도 비행기에 의존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 가면 끝. 기막힌 발명품이다.
여행은 그런 것..! 여행은 현재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모두 잊어버리는 행위이다. 그리고 지금껏 살아왔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자 또 다른 호기심에 빠져드는 것. 그와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칠레 치코에서부터 로스 안티구오스(Los Antiguos Provincia di Santa Cruz Argentina)까지 이동하는 동안 장차 다가올 새로운 세상이 어떨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뷰파인더는 새로운 세상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일행들의 입국심사가 끝나자 리오 삔뚜라스 암각화가 위치한 뻬리또 모레노가 매우 궁금해졌다. 꾸에바 데 라스 마노스로 가는 길 전편에 이렇게 썼다,
과거로 들어가는 시간의 문이 존재하는 것일까..?
얼마간 시간을 지내놓고 보니 자연의 현상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아내와 나는 페리토 모레노(Perito Moreno (Santa Cruz) 46°36′S 70°56′W)에 도착한 직후부터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을 겪었다. 숙소를 찾는 데부터 잠을 청하기까지 그리고 숙소를 나서서 리오 핀투라스 암각화(Cueva de las Manos)를 만날 때까지 과정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고나 할까. 칠레 치코에서 페리토 모레노에 도착하는 즉시 어디서 불어왔는지 세찬 바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아마도 이런 환경이라면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을 텐데 이 낯선 도시에 3천5백여 명이 살아가고 있었다. 간신히 구한 숙소는 너무 열악했다. 전편에 이렇게 썼다.
그곳은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숙소였는데 낯선 사람들과 합숙을 하며 하룻밤을 지냈다. 방안은 어둡고 알코올 냄새가 적당히 풍겼다. 아내는 1층 도미토리 침대에서 나는 2층에서 함께 잠을 청했는데 배낭과 카메라를 꼭 껴안고 잠을 청했다.
지구별이 아름다운 건 쎄로 피츠로이가 존재하기 때문이야..!
참 멀리 오래도록 남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시간을 지내놓고 보니 너무 까마득하다. 사진첩을 열어볼 때마다 우리에게 이런 날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남의 일 같은 것. 남미 여행의 기록들은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난 후 간간히 간만 봤을 뿐 외장하드 속에서 잠만 자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 깐띠나(cantina)에서 오래도록 곰삭히고 삭힌 포르맛쪼처럼 발효를 거듭하여, 어느 순간 당시의 기록들을 열어보면 창고 가득 쌓인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지듯 아름다운 기억들이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원시인들 때문에 모처럼 행복(幸福)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사전에는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일컬어 행복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같은 기쁨과 만족감은 어디서부터 비롯되고 언제쯤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이 같은 물음은 원시인들의 삶과 현대인의 삶을 단순 비교해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 현대인들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도 불행을 호소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미디어나 SNS 등을 통해 사건 사고와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행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사회적 명예나 재산 등에서 남들보다 월등한데도 불구하고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
아름다운 것들은 할큄을 많이 당해야 하는가 봐..!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 아침, 작지만 가파른 언덕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아름다운 풍경들이었다. 피츠로이 산군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들은 한결같이 대자연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사람들이 발을 땅에 딛지도 못할 정도여서, 자칫 바람에 날아갈 수도 있을 정도라면 쉽게 믿기지 않을 것. 우리나라에서 태풍이 불어올 때 이와 비슷한 현상이 발견되곤 했지만, 이곳에서 우기가 시작되면 바람은 일상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두고 '바람의 땅'이라고 불렀다. 바람 앞에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나 할까.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쳐도 살아남아야 했기에, 이들은 바람에 맞서 대항하지 않고 자세를 낮추고 또 낮추었다. 그것도 모자라면 자기의 껍질까지 내주면서까지 생명을 지켰다. 모진 바람 모진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이들 앞에 나타난 것은 뼛속까지 드러난 생채기들. 바람이 얼마나 세게 할퀴었으면 바람 잘 날 없던 시간 속에서 당신의 팔이 뼈만 남기고 모두 바람이 앗아갔다.
우리는 어디까지 온 것일까..?
피렌체에 둥지를 튼 이후부터 줄곧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게 있다. 사람들이 왜 르네상스의 고도를 찾는 것일까 싶은 것. 누군가 약속이라도 한 듯, 집을 나서는 즉시 또 두오모 앞에 도착하기 전부터 사람들이 붐빈다. 이 같은 일은 연중 하루도 빼놓지 않고 주야장천 거의 똑같은 풍경이다. 관광객들의 면모를 보면 세계인들이 모여드는 곳. 그들의 표정을 살피면 뭔가에 홀린 듯하다. 그래서 무엇이 이들을 피렌체로 발길을 돌리게 만든 것일까 싶은 생각을 외출에 나설 때마다 하게 되는 것.
물론 세계의 명소 곳곳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들끓겠지만, 인간의 삶을 가장 아름답고 윤택하게 만드는 인문학의 보고(寶庫)는 이 도시만 한 곳도 없을 것 같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우리 인류의 미래는 더 이상 없다는 말일까. 사람들이 미래로 나아가는 일 보다 과거로 회귀해야 당신의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면, 현대인은 언제쯤인가 수술대에 올라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어렵다면 까마득히 오래전, 공룡들이 살았던 쥐라기나 백악기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할까.
안데스의 기운이 철철 넘쳐나는 도시..!
파타고니아를 품은 도시 산티아고에 머물면서
안데스가 낳은 아름다운 도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동이 트면 세상은 온통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 산티아고는 지구별에 내로라하는 도시와 전혀 다른 풍모를 풍긴다. 아침이 되면 안데스 자락으로부터 드리워진 실크로 만든 커튼이 서서히 걷히며 도시의 속살을 드러내는 것. 산티아고의 아침은 더디게 더디게 밝아오는데 이유는 다름 아니다. 이 도시의 베일을 벗기는 일출이 안데스를 너머야 비로소 도시 전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이 같은 사정을 간파한 이후로 동이 트기 전부터 숙소를 나와 길을 나선다. 산티아고에서 한국인촌을 형성하고 있는 빠뜨로나또(Patronato)에서부터 지근거리에 위치한 산뚜아리오 델 세로 산 크리스토발 공원 (Parco Santuario del Cerro San Cristóbal)으로 향하는 것.
우리는 마침내 잉카의 심장 마추픽추 정상에 올라섰다..!
아내는 목놓아 펑펑 울었다. 얼마나 크고 서러운 울음이었던지 산타 테레사 로지(Santa Teresa Lodge)가 떠나갈 듯했다. 그곳은 일주일간의 잉카 트레일이 끝날 무렵에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이 하룻밤을 노지에서 묵는 곳이었다. 잔디밭에 텐트를 여러 개 쳐 놓고 하룻밤을 야영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풍경은 잉카 트레일(Camino del Inca-잉카의 길)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는데 산타 테레사 로지의 야영은 지금까지 해 왔던 야영과 조금 다른 의미가 있었다. 머나먼 여정을 끝마치고 하룻밤만 자고 나면 잉카의 심장이라 불러야 좋은 마추픽추에 입성할 수 있는 곳이었다.
로지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잉카문명을 일군 우루밤바 강을 건너게 되고, 강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하루 종일 걸으면 마추픽추의 배후 도시 아구아 깔리엔떼스에 도착하는 것. 그리고 그다음 날 잉카 트레일의 대장정을 끝내는 공중도시 마추픽추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잊을 수 없다면 돌아가야 하나.. 아니 돌아갈 수 있나..?!! 우리가 잠시 잠깐 딴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여지없이 '자기의 길'을 걸어간다. 야속하게도 지구별에 사는 생물들은 당신의 길에 예속되어 끌려다니는 것. 세상은 매우 바쁘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배경은 사진첩을 열었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대략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만 해도 오늘날과 같은 IT 환경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글쓴이가 너무도 사랑한 사진이 어느 날 스펙터클 한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되는 세상을 전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할 세상이었다. 그 당시 아내와 나는 남미 일주를 계획하고 준비하며 장도에 돌입할 태세를 갖추었다. 오늘날 생각해 보면 무모할 정도의 배낭여행이 우리 내외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가슴속에 품은 한 여인을 찾아 떠난 남자 사람.. 당신의 가슴속에 파고든 아스라한 풍경 속으로..!!
나의 브런치를 열면 쑥부쟁이 꽃이 자지러지게 핀 풍경을 보게 된다. 이곳은 남미 칠레의 뿌에르또 나딸레스의 어항이 위치한 곳. 아내와 나는 그곳에서 K 씨를 만나게 됐다. 학창 시절 권투로 단련된 몸(아마추어 복싱 선수)이지만, 말 수가 적은 조용한 남자였다. 관련 포스트에서 잠시 언급한 바 당시 그는 칠레의 수산물을 한국에 공급하는 중간 업자의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남미로 떠나 그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됐다. 그녀는 뿌에르또 에덴(Puerto Eden)이라는 남부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 살고 있었는데 K 씨가 사업상 그곳까지 진출하여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돈을 벌러 이역만리 그 먼 곳까지 갔는데 그곳에서 당신의 삶을 지배할 한 여성을 만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산으로 가는 사람들..!!
어느 날 글쟁이 지인 한 분이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다. 술잔을 앞에 두고 나눈 대화였으므로 격이 없이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아내는 전혀 불필요해 보이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산이 주제였다.
'넌 왜 산에 안 가..?!!"
우리는 언제쯤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 볼 수 있을까..?
참 자주 열어본 사진첩 속에 우리의 추억이 오롯이 묻어나 있다. 한두 번 열어본 것도 아닌데 열어볼 때마다 감흥이 새로운 것이다. 사진첩을 열면 당시의 감정 그대로 풍경 속으로 몰입된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에 하나 사진첩이 없었더라면 기억 속 저편에서 가물가물 거리고 말았을 추억들이다. 두 차례에 걸친 남미 여행 중에 같은 장소를 두 번 방문한 곳은 몇 곳 되지 않는다.
파타고니아로 이어지는 까르레떼르라 오스뜨랄(Carretera austral)이 시작되는 뿌에르또 몬뜨(Puerto Montt)가 그랬다. 또 뿌에르또 몬뜨에서 멀지 않은 곳 안데스 자락에 위치한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San Carlos de Bariloche) 및 피츠로이 산군이 위치한 엘 찰텐(El Chalten)과 산티아고 델 칠레(Santiago del Cile)가 그랬다. 그중 뿌에르또 몬뜨는 파타고니아(PATAGONIA)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사랑이 필요한 아웃사이더..!!
이틀 전, 최근 며칠 동안 애용하는 아침운동 코스에서 해변의 사구를 눈독 들이고 있었다. 그곳에는 바를레타 평원에서 날아온 열무 씨앗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곳 바를레타 재래시장에서 판매되는 열무는 1킬로그램에 우리 돈 1000원이면 구매할 수 있기도 했지만, 야생 열무는 밭에서 키우는 일반 열매와 확연히 구분된다.
녀석의 성격 때문이다. 피렌체서 살 때 아르노 강으로 산책 가서 우연히 만나 채집해 열무김치를 담을까 생각하다가 즉각 실패하고 말았다. 질기디 질긴 녀석의 성격이 곁을 주지 않는 것이다. 녀석은 야생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했다고나 할까.. 세상을 살아가자면 너무 온순하고 착하기만 해도 '남의 밥'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 반면에 성격기 개떡 같고 모진 녀석들도 눈에 띈다.
세상은 컴을 열고 스크롤바를 내리는 3초 보다 더 빨리 전설로 사라진다..!!
나의 메모리칩에서 잠자던 녀석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Uyuni deserto)에서 칠레의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san pedro de atacama)로 넘어왔을 때만 해도, 장차 우리 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여행 일정에 짜인 코스를 따라갈 뿐이었다. 우리는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에 도착하는 즉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향했다. 산티아고는 여행 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산티아고에 들러 버스를 갈아탈 요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곳에서 대략 1주일만 머물렀어도 될 뻔했지만, 우리가 계획한 여정에서 빠져있었던 것이다. 또 우리 계획 속에는 일정을 포함하여 지참한 카메라의 용량까지 계산해야 했다. 요즘 생각해 보면 너무 촌스러운 <미놀타 디지털카메라>였다.
영화나 소설 같은 삶을 꿈꾸시는가..?!!
처음 공개하는 우리들의 여행 기록이다. 서른몇 컷의 사진과 영상은 아내와 나의 삶의 일부분을 남긴 발자취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장소는 세계인들의 가슴에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는 명소 또레스 델 빠이네 국립공원(Parco Nazionale Torres del Paine)이다.
우리는 칠레의 남부 파타고니아에 위치한 이곳을 여행하기 위해 벼르고 또 별렀다. 대략 20년이 다 되어가는 남미 일주 여행을 통해 미비했던 문제점을 보완한 후 장도에 올랐던 것이다. 미비했던 문제점은 기록 수단이었다.
북반구와 너무 다른 남반구의 어느 봄날..
우리가 작심하고 떠난 남미 일주의 동선은 다시 생각해 봐도 까마득하다. 북반구에 위치한 한국에서 직항으로 남반구의 호주 시드니까지 이동한 게 첫 번째였다. 그다음 경로는 호주에서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로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대권 항로를 따라 칠레의 산티아고로 향했다. 호주부터 산티아고까지의 지역은 모두 남반구에 속하는 곳이다.
자료에 따르면 남반구는 북반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육지보다 바다가 더 많고 육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19.0%이고 전체 육지의 32.6%, 전체 인구의 10%가 남반구에 속한다. 남반구(南半球)는 적도 남쪽의 반구를 말하며, 지구의 남쪽 절반을 말한다. 북반구와는 계절이 반대이다. 남반구는 12월부터 2월까지가 여름이고, 6월부터 8월까지가 겨울이므로 크리스마스는 여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차이를 모르시는 분들은 없겠지만, 설명을 곁들인 건 <지구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_필자 주>의 위치가 속한 지역 파타고니아 때문이다. 그야말로 '차마 꿈에도 잊지 못할' 여행지는 산티아고에서부터 빠르게 남하한 후 봄이 무르익어가는 어느 봄날 만나게 된 것이다.
말라버린 나무에도 생명은 존재는 것일까..?
우리가 파타고니아에 머무는 동안 뿌에르또 나딸레스(Puerto Natales)에서부터 또레스 델 빠이네 국립공원(Il Parco Nazionale Torres del Paine)으로 이어지는 칠레의 9번 국도는 다섯 차례나 오갔다. 첫 번째 길은 또레스 델 빠이네 투어를 위해 떠났다. 그런데 준비 부족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서 왕복을 하게 된 것이다. 그다음 다시 준비를 한 다음 아내와 나는 토레스 델 빠이네 등반에 성공한 것이다. 따라서 두 번의 왕복이 되었다.
그리고 또레스 델 빠이네 투어가 끝난 후 우리는 여행 일정에 따라 다시 9번 국도를 이용한 것이다. 이번에는 피츠로이 산군이 위치한 엘 찰텐(El chalten)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오가는 일은 낯설지 않고 친근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뿌에르또 나딸레스에서부터 또레스 델 빠이네까지 이어지는 9번 국도는 여행자들이 매우 즐겨 찾는 길이다.
당신의 기록은 언제쯤 빛을 보게 될까..?!!
인류문화사가 시작된 이래 많은 기록 수단들이 존재했다. 수메르 문명의 점토판과 파피루스가 그랬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후 사람들은 이를 인류 최초의 문자 미디어라 부르기도 한다. 현대의 미디어와 비교하면 가소롭기 짝이 없지만 그땐 대단했나 보다. 또 13세기 무렵 우리나라 고려에서 세계 최초로 발명한 금속활자는 인쇄술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는 발명이었다.
그동안은 주로 베껴 쓰는 사본에 의존했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서사 과정의 실수를 극복하고 미디어에 일대 혁신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인쇄 수준의 발달은 지식과 문화 수준을 급격히 향상했다. 또 정보의 기록과 확산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학교에서 배운 거 복습하고 있는 중..)
절묘한 변신.. 그러나!!
그냥 지나칠 뻔했다.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나의 뷰파인더에 포착된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가 살고 있었던 장소는 지구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인 까뇽 델 꼴까(Il Canyon del Colca)였다. 영어식 표현에 익숙한 사람들은 콜카 케니언으로 부르는 곳.
해발고도 3,270미터(10,730 ft)에 위치한 이 협곡은 페루의 아레끼빠로부터 대략 16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아온 곳이다. 협곡의 깊이는 4000미터가 넘는다. 남미 여행을 계획한 분들이라면 꼭 가 보고 싶어 하는 명소가 그의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작가노트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북부 파타고니아의 오르노삐렌 삼각주에 아침이 밝아오면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기가 끝나갈 무렵 날이 밝으면 세상은 온통 안갯속에 파묻혀있다. 아직 잠이 덜 깬 대지. 이불처럼 덮고 있는 짙은 안개.. 누군가 실비단처럼 고운 베일을 걷어올리면 삼각주의 속살이 젖내를 솔솔 풍긴다. 아버지와 아들.. 부자는 이곳 삼각주에서 살아간다. 이들이 가진 재산이라면 늙은 말 한 필과 낡은 마차 한 대. 그리고 도끼 한 자루가 전부나 다름없다. 실비단 안개에 싸인 대지가 잠이 깨기도 전부터 부자는 삼각주 곳곳을 누빈다. 그들이 수집해 온 건 나무토막들. 삼각주 위에 지어진 허름한 판잣집으로 옮겨온 나무토막은 곧 땔감으로 변하며 오르노삐렌의 아침을 따뜻하게 데운다. 비단안개가 안데스 너머로 걷힐 무렵 부자의 아침은 바쁘다. 부지런히 채집한 땔감과 바꾼 몇 푼의 돈이 부자(父子)를 부자(富者)로 만드는 것. 억만금을 두고도 불행을 말하는 사람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의 삶이다. 삼각주에서 만난 부자는 늘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삶이 무력해진 당신의 존재감을 회복하고 싶을 때..!
누군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말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 갈수록 우리에게 부여된 삶은 '더욱더 짧게' 느껴졌다. 100년을 산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공붓벌레로 일벌레로 돈벌레로 명예 벌레로 삶을 마감한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조물주가 당신을 세상에 보낸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부터 당신의 존재감은 너무도 소중해 보일 것이다. 조물주는 당신이 세상에 사는 동안 특정한 일에 매달리는 벌레 같은 삶을 요구하지 않았다. 당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마음껏 즐기도록 오감을 부여한 것인데 우리는 그게 목숨을 부지하는 수단으로만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나를 낳아준 엄마의 품에서 고향으로부터 조국으로부터 더 멀리 더 먼 곳으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인생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삶이 무력해진 당신 더 멀리 더 먼 곳으로 떠나시라.
삶이 무력해진 당신 더 멀리 더 먼 곳으로 떠나시라..라고 나의 브런치 북 <더 멀리 더 먼 곳으로>에 소개글로 써 두었다. 긴 여행을 떠날 때와 다녀온 심정을 압축해 두었는데 이번 포스트를 작성할 때 다시 열어 끝까지 읽어보니 끄트머리에 3자가 지워졌다. 삶이 무력해진 당신 더 멀리 더 먼 곳으로 떠.. 였다. 우연찮게도 이런 표현이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론가 떠나든지 혹은 떠..!! 그래서 이번 포스트는 잠시 이탈리아를 떠나 지구 반대편의 파타고니아로 떠 보려고 한다.
포스트를 편집하는 동안 느낌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세월이 흘렀다"였다. 참 열심히 끼적거린 포스트.. 명작은 없을 망정 최선을 다한 기록이었다. 하니와 함께 바람의 땅 호수 위로 항해하면서 느낀 감정들은 다시 그녀의 시간을 과거로 돌리고 싶었던 것일까.. 요즘 자주 그녀는 파타고니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를 이제 겨우 맛보았을 뿐인데 그녀의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파타고니아.. 바람의 땅이 차분히 가라앉은 앙금을 뒤집어 놓곤 하는 것이다. 나 또한 바람의 땅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_Lago Buenos Aires/General Carrera CILE
il 19 Magg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