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리는 중력의 짜릿한 순간, 그 우주적 신비. 그 찬란함이 호감을 넘어 사랑이라 명명될 때, 호흡은 환희에 젖어들며 우리 영혼은 우주의 블랙홀로 빨려 든다.
불신
중.고등학교 때부터였을까. 세상이 말하는 그 중력을 믿지 않았다. 감정 낭비, 감정 사기, 감정 장난. 누군가 우주적 신비를 섣불리 건드린다면, 그 건달 같은 세상을 향해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 세상의 모순과 허무에 지친 우린, 인생 어느 대목에선가, 이 무자비한 철갑 옷을 둘둘 말고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차단
사랑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차단은 익숙하다. 감정의 자물쇠랄 수 있고, 관계에 대한 철퇴랄 수 있다.교언영색과 이중언어의 공해가 가득한 세상. 그런 세상에 잘 순응하며 적당히 앞뒤 다른 말도 잘 익혀야 하는 버거움이 힘겹다. 그러나 이 기묘한 세상에 발을 딛고 살려는 자, 적당히 익혀야 할 그것.
삭제
삭제, 그것은 차단조차 밀고 들어오는 공해를 향한 우리의 두 번째 펀치다. 감정 노동에 몰입했다 헤어 나온 숱한 사람들, 그들의 욕지거리는 또 다른 혜성이 되어 세상을 뒤흔든다.
"쉬고 싶다. 이 지리멸렬한 감정 사기에 대해서."
감정사기. 그것은 세상에 부유하는 숱한 이중언어들의 비약이며 탄로이다. 괴물의 부화, 신비의 요절.그런 세상을 향해 작별을 또 절교를 선언할 용기. 담박한 삶과 관계를 위한 유보적 자기 죽음.
추억
언젠가 우주적 신비로 다가왔던 그 또는 그녀. 선홍색 열감으로 낯을 붉히고, 입술이 마르고, 정신에 아지랑이를 던져 주고 간 그들. 어느 해 교실의 커튼 뒤, 비밀한 눈빛.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달음질 소리, 어느 해 수련회의 기타 치는 소년의 진중한 긴장, 두근거리는 부딪힘과 쪽지.
길을 지나다 문득, 어딘가에서 쏟아지는 이질적인 단어들 속에서 불쑥, 무심히 만지작 거리던 설거지 접시에서 미끄러지듯. 어떤 날은, 소음이 가득해 귀마저 먹먹해지는 태양 작렬한 도심 한복판에서 섬광처럼 아련히.오늘도, 그 또는 그녀는 하루의 태양처럼 떠오르다 속질 없이 저문다. 어제가 되었기에 또 오늘이 된 그 모습 그대로, 추억은, 과거와 현재를 가름 짓는 분수령이 된다.그렇게 일별하는 무리를 선별하여, 운명은 생명의 심장박동을 점점이 가로지르듯 새겨지고 추억된다.
보고 싶다
볼 수 없어서 또 볼 수 있어서도, 우린 보고 싶어 갈증 한다. 짙은 그리움은 이내 현재적 그와 그녀에게 전이되어 서성인다. 그리고 되뇐다. 닿아진다.
썸(something)
썸이란 어느 잃어버린 해 또 잃어버린 별에 대한 우리의 회한이며, 현재적 항거이고, 미래적 열망이다. 동시에 감정 공해에 일갈하며 떠오른, 아련한 애착이며, 수줍은 설렘이요, 어릿광대 같은 어리석은 도전이다. 순수해야 닿을 수 있는 무도한 행성이다.
제가 겪는 삶의 부침은 전쟁세대인 저희 부모님이나 일제시대를 나신 조부모님 세대와는 비견할 수 없는 고난일 텐데요. 하지만 고난과 그에 따르는 고통은 주관적 절대 무게가 있는 것 같아요. 연예인이나 재벌들이 고통에 못 이겨 중독증상을 일으키는 것이나 모든 것을 갖춘 듯한 요즘 젊은 세대들의 고통도, 타자들이 다 헤아릴 수 없는 그들만의 고통의 주관적 무게 말이죠.
주관적 고통의 무게와 더불어, 고난을 붙들고 나만이 해소해야 하는 난제와 씨름하면서, 해석 누적량만큼 지혜와 힘도 쌓이는 것 같아요. 문제는, 고난을 매번 맞을 때마다 회피하려고만 하고 가해자를 색출하는데 혈안이 되면, 이른바 이 <해석 누적량>은 잘 쌓이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고난이 올 때마다 <갈등 내지는 감정 누적량>만 쌓인다고 해야 할까요.
고난이 인간의 삶에 선물처럼 떨어진 것은 해석 누적량과 더불어 내 삶이 성장하는 기쁨을 주기 위함일 텐데요. 저도 원리를 터득은 했지만 매번 정석처럼 고난을 대하진 못 하는 것 같아요. 가끔은 남몰래 탄식과 한숨도 쉬고 어느 날은 몰래 눈물도 훔치고 말이죠. 그러나 전자 곧 <해석 누적량>을 쌓는데 에너지를 모으고 지향하는 사람들은 고난 극복지수가 세월 지날수록 상당히 높아지는 것은 같아요. 이 글 이번 연재에 한번 공유할까 싶어요 ㅎㅎ
윤영 작가님의 명세서 격파 실력도 내내 글로서 공유해 주시고요, 저도 계속해서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
30년 정말요? 작가님 눈썰미라면 맞을 듯해요. 어쩐지 저도 집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비주얼의 냄비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집에서라도 열 번도 더 엿장수에게 넘겨졌을 냄비잖아요. 근데 왜 아직까지 이 부엌, 손이 닿는 지근거리에 버젓이 있는지, 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냄비를 지키자로 의견을 모았어요. 마치 전 주인이신 짝꿍의 어머니의 누구도 모를 사연과 의중을 존중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닿더라고요.
번아웃을 이겨내는데 신앙과 주변 분이 도움이 컸죠. 저는 살면서 주변에 좋은 분이 참 많았어요. 초등학교 때는 아버지 고난은 있었지만, 중학교 이후로 만난 분들 대부분이 참 선량하고 좋으셨어요. 가족, 오랜 절친들, 교회와 선교단체 선후배, 직장 동료와 거래처, 인재 등등. 제 인생 초년도의 고난을 상쇄하고 남을 수천 배의 인복을 받았어요.
지금 직장 동료들도 저보고 인복이 많다고 해요. 가령 직장일로 만난 고객사, 인재, 동료들이 "대가 없이" 자기 일처럼 저를 도와주는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재기해서 이 위치까지 성취물을 내는데 여러 은혜를 입었지요. 그래 제겐 빚진 마음이 많은 것 같아요. 하늘과 사람들로부터 너무 거저 받은 게 많다고요. 그래서 브런치에서 이렇게 지내봐요 ㅎㅎㅎ 누군가를 도와주는 게 저는 참 기쁘고 좋아요.
이 브런치 안에서도, 저처럼 인생의 터널을 지나는 분들이 계시다면, 잘 회복되고 재기하시길 두 손 모아 응원드려요 ^^
3. 우왕~ 소개도 시켜 주신다고요? 모두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후덜덜!
조선여인 (에세이스트) 은퇴 2년 차로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에피소드를 글로 표현하고자 함. 인간미 담긴 글을 좋아해서 매일 두리번거리지만 제 나이는 잘 모르는 조선여인임. 조선여인의 브런치스토리
안녕하세요? 밥 잘 사주는 누님 같은 클레어님! 오래간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한테는 오래전부터 숙제가 하나 있었어요. 아버지가 천상으로 떠나시면서 엄마의 입에서 넋두리가 술술 나오기 시작했답니다. 들어보니 죄다 한 편의 시더라고요. 아흔 살 시인 엄마를 위해서 브런치 시집 한 권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지요. 그 작업하느라 제 글에 소홀했는데 앞으로는 제 글도 써야지요.
오늘도 역시 작가님한테 홀딱 반했습니다. 여전히 작가님들을 홍보해 주시느라 얼마나 눈이 빠지도록 찾고 얼마나 머리를 썼으며 손가락은 얼마나 마비가 될 지경이셨을까요.
지난번 퇴직 전 직장 사람들 만났을 때 입이 마르고 닳도록 청년 클레어님을 선전했었습니다. 마치 내 동생인 것처럼 마치 내 딸이 것처럼 열을 내면서 침까지 튀기면서 칭찬을 했습니다.
우와~~~ 작가님의 말씀에 몸 둘 바를 몰라요. (브런치 작가님들께서) 제 브런치 계정을 오프라인 지인들에게도 추천하고 소개해 주셨다는 말씀을 간혹 듣고는 놀라고 있어요. 제가 그런 칭찬을 들을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인데, 이런 과찬을 어찌 감당해야 하나 실은 다소 두렵기도 해요. 제가 '초심병'이 있어서요, 뭔가 칭찬을 많이 받고 일이 너무 잘 되고 하면, 이내 '초심을 지켜라'는 경고 사이렌이 내면에서 요란하게 울리거든요.
그래서 칭찬을 많이 받으면 브런치에 거리를 두어야 하나, 오히려 거꾸로 고민했던 터인데요. 이것도 너무 치우치는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덕담은 감사히 잘 받고 동시에 겸손하게 초심을 지키면서 좋은 글로서 잘 보은 드리는 게, 온당한 처신임을 다시금 다짐합니다.
작가님들 소개받고 제 브런치를 읽으실 독자분들을 위해서, 더욱 정진하도록 애쓰겠습니다 작가님의 말씀에 날마다 성장하는 클레어는 늘 감동하고 감사해요 ^^
저는 실은 연금술사를 읽다 말았어요. 다들 좋다는데, 저는 너무 유행하니깐 저항감에 읽으려다 말고는 때를 놓쳤는 던 것 같아요. 그래도 주요 대목들은 공감이 되더라고요. 초심자의 행운이 이 책에서 나온 것을 저도 금번에 알았어요.
그나저나..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으셨군요. 저희 집도 2번 반 사기를 당해서 갑자기 가세가 기운다는 게 뭔지 경험했거든요. 행운은 피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심운(제가 방금 만든 말. 기존에도 이 말이 있을까요?)은 주도적으로 쟁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싶어요. 운(運 )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천운이라잖아요.
제가 논하고 싶은 '심운(心運 )'이란, 내 마음과 태도 그리고 세상을 향한 해석에 따라 인생의 물꼬를 변화시키는 게 힘이 아닐까 싶어요. 불운은 자주 심운을 남겨두고 가더라고요. 그리고 작가님은 이미 그 길을 걷고 계신 듯합니다. 멋진 2024년을 기대하며 화이팅입니다!
작가님의 작가명이 제 딸아이의 이름과 같아서 이끌리듯 들어왔습니다. '고통의 총량이 같다'라는 말이 진실이더라도 각자 느끼는 고통의 감각은 또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고통의 '무게'를 신이 정한다면, 고통의 '감각'은 인간이 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어쩌면 제가 직진하고 싶었던 지점 중 하나는 바로 '각자가 감각하는 고통'일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고통의 총량 내지는 낱개적 무게와 씨름하다가 나가 떨어지곤 하는 것 같은데요. 고통 자체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고통을 감각하면서 범하고 있는 여러 에러와 고통 감각력(감각실력)을 퇴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으로 뻗어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원래 아무것도 모를 때가 용감한 것 같아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것 같아요. 사실 숯불구이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다음엔 야외 캠핑이라도 가서 시도해 보아야겠어요. 대신 요리해 주실 분만 계시다면 정말 모셔 오고 싶었어요. 생선 만지는데, 징그러워 꾹 참느라 혼났어요.
저 귀여워요? ㅎㅎㅎ 그(천재)도 종종 저 보고 왜케 귀엽냐고 해요. 그럼 저도 그대도 왜케 귀엽냐고, 서로 누가 더 귀여운지. 귀염 전쟁을 종종 치러냅니다. 물론 절대 권력자인 저에게 대부분 승이 돌아오는 듯해요. 하하하하
작가님 말씀에 만감이 교차해요. 저는 청소년기부터 혼전순결의 신념이 남달랐거든요. 20대가 돼서도 19세 관람불가 영화도 되도록 안 보며 그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구축하며 살려고 애썼는데요. 전 제가 20대에 당연히 결혼할 줄 알았답니다.
근데 30대, 40대까지 미혼일 줄은 그 시절엔 생각지 못했어요. 나중엔 순교정신으로 버텼다니깐요 ㅋㅋㅋ 이건 40대까지 이 삶을 살아본 사람만 알 거예요. 제 나이까지 혼전순결 지키는 건 상상초월의 절제와 꾸준한 경건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고래로 절제는 현자나 위인의 숭고한 덕목이었는데요. 요즘은 자유로 포장한 방종을 멋이라 여기고 작가를 포함한 유명인들도 그런 사람들이 꽤 있고요.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은 각자의 주관인 세상에서, 트렌드와 다수에 가려진 인간 본연의 위엄과 고결을 재발견했으면 했어요.
작가님 자녀분 생애에 오롯함을 함께 지고 갈 좋은 만남의 축복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
@잠깐! 보석 같은 작가님들 소개합니다@
브런치에 새로 오셨거나 좀 더 많은 작가님들과 소통을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본글 댓글에 직간접적으로 메모를 남겨주시면, 다음 연재글에 본 코너에서 소개해 드릴게요. 여러 번, 반복 소개도 가능합니다. 쑥스러워하지 마시고요. 힘을 합치면 우리 모두 브런치 생존자 아니 브런치 원로가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