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테크, 고통 끝에 성취
인간은 가족이든 타인이든, 나 외 타자들의 고통에 대해 이해를 말하지만 이내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그들의 성취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여유 역시 부족하다. 특히 타자의 성취를 서둘러 불로소득으로 폄하하고픈 얄궂은 심성, 반면 나의 성취에 대해서는 정상 참작까지 다 받아내려는 악착같은 악다구니, 그것은 오랜 이중잣대의 불협화음이다.
세상사, 모든 인간의 성취에는 크고 작은 고통이 따른다. 타자의 성취는 왠지 손쉽게 얻은 설익은 과실로 보고 마는 시선, 그 씁쓸하고 어리석은 속내는 가족 간에도 가끔 일어나는 실책이다. 자기 고통에 함몰되어 때론 자기 탐욕과 질시에 눈이 멀어 허투로 내뱉았던 말들, 그 기저의 냄새나는 음모는 자기 중심성의 결정체인가. 피를 나눈 가족도 다 들여다 보지도, 헤아리지도 못하는 고통, 그것을 일면식도 없는 타자들에게 바랄 것인가.
관악산 (2009년)
며칠 전 친오빠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오빠는, 브런치에 썼던 운남시리즈(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의 주인공이다. 오빠는 말의 무게를 알며 범사에 성실하고 선량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의 초년도 인생이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으로 점철되었다는 서사는 주지의 사실이다. 한 지붕 아래서 30년 함께 살았던 오빠이건만 그 고통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추측할 뿐 속속들이 알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작년 가을 오빠에게, 운남시리즈를 연재하는데, 오빠와 함께 하지 않은 직장생활과 결혼 이후 스토리에 대한 자료를 구하기 위해 읍소했다. 근데 서로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흐지부지 되다, 며칠 전 우연히 이 얘기가 다시 나왔다. 내 브런치 계정도 작년에 알려 주었던 터였다. 본인 동의 없이 쓴 내용이나 불편한 내용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사전 검열을 받고자 함이었다.
그날도 오빠는 근무 중이었기에 길게 통화는 못 했다. 오빠는,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결에 우리 가족들 아무도 몰랐을 내용들을 말해 주었다. 오빠가 고등학교 2학년때인가, 신앙이 없었던 때였나 보다. 그 시절 오빠는 인생에서 우울증이 가장 심할 때였다. 어느 날 우리가 살던 봉천동 집에서 바라보이는 관악산을 3일을 굶고 올랐갔다 한다. 관악산 꼭대기 벼랑 끝에서 죽으러 올라갔던 것이라고 말을 흐렸다. 흐릿한 산의 정상에 도착해 한참을 머물렀다 한다. 천만 다행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내려왔다 한다. 당시 오빠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공부를 거이 하지 못 했었는데, 그 시절 ADHD장애도 앓고 있었고 어른이 된 지금도 다 완치되진 않았다고 한다.
오빠가 ADHD를 앓았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케무를 겨를도 없이 우리 대화는 금세 다음 장면으로 흘러갔다. 우리 가족 아무도 몰랐던 어쩜 오빠도 나중에 알았을 병명 같았다.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오빠의 과묵함에, 참 징한 사람이란 생각이 스쳐갔다.
대입을 앞둔 고등학생이 공부가 안 되는 이유를, 직장 회의시간에 동료들 말소리가 종종 무음으로 머리를 통과하는 애로사항을, 그 비정상을 홀로 견뎌내야 했던 세월의 무게란 어떠했을까. 가족조차 그 비정상을 모를 지경이었으니 참으로 한숨이 밀려들었다.
오빠는 지나가듯 그 시절 고통을 살짝 입에 올렸다.
"ADHD를 학교고 직장에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정상으로 보이게 살려했을 때, 내 삶이 어떠했겠는지 상상이 돼? (학교나 직장에서) 살아남으려고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살았어. 너도 그랬겠지만.."
"아...."
심각하게 아픈데도, 아픈 티를 낼 수 없었던 가난한 가정의 장남. 사람들은 그런 오빠를 멀찍이서만 보고 '행운의 사나이'로만 말하곤 했다. 운 좋게 대학에 붙었고 -실은 4수 끝에 들어갔다- 운 좋게 공사 직장에 들어가 또 운 좋게 요직에, 좋은 아내를 만나, 매매하는 집마다 집값이 배로 올랐다고만 안다.
장가갈 때도 월세 보증금 3000만 원도 없어 올케언니가 부담했고 심지어 4500만 원 집안의 빚을 떠안고 신혼을 시작했다. 신혼초반 4500만 원의 큰 빚을 갚으며 살았던 것이다. 이 빚도, 작년 오빠가 말해 주기 전까지 우리 가족 중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가 창피하거나 속상할까 봐, 조용히 빚을 승계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성품을 닮았고 남다른 효자인 오빠다운 행보였다.
과묵하고 속 깊게 희생했던 흙수저 장남, 오직 하늘만이 이 한 사람의 고독과 울부짖음과 희생의 이유를 알지 않았을까. 그날 오전 말로 할 수 없는 탄식 깊은 눈물이 내 마음에 맺혔다.
관악산 (2009년)
나의 고통, 내 살갗에 닿아있는 주변의 고통을 글로 쏟아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쩜 고통 해석력은 인간의 아이큐처럼 본래 타고나는 것인가.
불운테크, 내가 생각해 본 용어다. 인간이 겪는 모든 불운(고통)은 필연 행운(은혜)을 함께 가지고 온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 불운을 하늘의 절대자도 감동시킬 만큼 선량하고 의롭고 희생적으로, 이른바 바른 태도와 마음으로 해석하고 감당하느냐, 그 여부에 따라 불운이 파국으로 갈지 또는 성숙과 결실로 갈지를 판가름 한다. 이것은 타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같은 원리 같다. 내 고통에만 매몰되지 않고, 가족을 포함한 타자들의 고통을 얼마나 완숙하게 해석하고 공감하고 감당해 내느냐에 따라, 타자의 고통도 내 삶에 여러 결실을 남겨준다. 이것이 내가 추정하는 '불운테크'로 인생역전하는 반전인생의 메커니즘이다.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불행뿐 아니라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게 되면서부터 불행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40대에 글을 쓰기 시작해, 한 번도 습작하지 않고 단번에 장편소설로 등단한 작가, 그것은 운이라기보다 인간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능력이 가져다준 포상이 아닐까.
작가의 기본 자질로 필력, 다독, 습작, 재능, 성실 다양한 요소를 손에 꼽는다. 그에 덧붙여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하는 덕목은, 타인의 불행과 그들의 성취적 삶 모두에 대해서 섬세한 관찰과 질문, 그 서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진실한 공감능력이 아닐까. 그것은 인간을 향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축복된 감수성이요, 그러한 선량한 공감에 가끔 하늘이 남다른 작가적 재능을 선물로 주시는 게 아닐까, 문득 생각한다. 내게 재능이 부족한 것이 허다한데, 무엇보다 고통 해석력(공감력)이 날마다 성장해 가길 바래 본다.
신여성을 꿈꾸던 어린 시절
경기도 개풍군(휴전선 이북 지역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에 편입하고 있음.)에 위치한 박적골에서 태어난 박완서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일곱 살 때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이주하여 신식 교육을 받게 된다. 서울 사대문 밖에 살던 그는 학군 위반을 하여 매동국민학교에 다녔고, 이후에는 서울의 명문인 숙명여고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여성이 교육받는 것이 흔치 않던 시대에 그가 신식 교육을 받았던 배경에는 그를 신여성으로 키우고 싶었던 어머니의 바람이 있었다. 한편, 박완서는 숙명여고 시절 소설가인 박노갑 담임 선생님 아래에서 세계 문학 전집을 읽으며 문학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고 한다. 이 당시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친구 중 한 명이 소설가 한말숙이다.
6·25 전쟁의 고통
박완서가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한 지 닷새 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대학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으며, 또한 전쟁으로 가족과 고향을 잃었다. 전쟁 중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은 오빠와, 인민군의 강압에 의해 그들의 숙식을 담당했던 숙부의 죽음은 그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고향인 박적골이 북한 영토가 되어 버려 다시 발을 디딜 수 없게 되었다. 이때의 전쟁과 분단의 체험을 이후에 소설로 기록하게 되는데, 그는 당시 지금의 순간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가 글로 남기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쟁·분단 소설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큰 축을 이루고 있으며, 전쟁과 분단 속에서 개인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박수근 화백과의 인연
박완서는 전쟁 중에 어머니와 올케, 조카들의 생계를 위해 미8군 초상화부에 취직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박수근 화백을 만나게 된다. 당시 그는 미군들에게 그림을 사라고 권유하는 일을 했고, 박수근을 비롯한 화가들은 그렇게 요청받은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 자신의 불행에 빠져 있던 그는 전직 간판장이였던 화가들을 무시하는 언행을 하곤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박수근이 진짜 화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자신의 불행뿐 아니라 남의 불행을 바라보게 되며 불행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의 인연이 그에게 영감을 주어 이후 등단작 〈나목〉이 탄생하게 된다. 박수근과 그의 그림이 이 작품의 모티프가 되었는데, 그 그림이 바로 잘 알려진 〈나무와 두 여인〉이다. 〈나목〉은 박수근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데 일조한 작품이기도 하다.
늦깎이 문학가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하며 1남 4녀를 둔 박완서는 문학과 멀어지다가 박수근 유작전을 보고 글을 쓸 결심을 하게 된다. 그의 나이 마흔이 되던 해였다. 등단작 〈나목〉은 장편 소설로 원고지 1,200매의 분량인데, 이 작품은 그의 첫 작품이라고 한다. 즉, 습작을 한 번도 해 보지 않고 쓴 장편 소설이 바로 당선되어 등단한 것이다. 그는 그 비결을 다독(多讀)이라 밝힌 바 있다. 등단을 늦게 한 편에 속하나 그는 문학 활동을 한 30여 년 동안 장편 소설 14편, 단편 소설로 10권 분량을 발표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ㅡ <교과서가 사랑한 작가 110> 중 ㅡ
※대문 사진 : 1955년 서울 집앞에서 큰딸을 안고 있는 새댁 박완서.
박완서[ 朴婉緖 ]
출생 - 사망 : 1931. 10. 20. ~ 2011. 1. 22.
출생지 : 국내 경기도 개풍
데뷔 : 1970. 장편소설 「나목」이 여성동아현상모집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박완서의 소설은 일상적인 삶에 대한 중년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도 현실적인 감각으로 다듬어지고 있으며, 한국전쟁으로부터 비롯된 심화된 내면의식에 의해 더욱 밀도 있게 형상화되고 있다.
경기도 개풍 태생. 서울대 국문과를 중퇴했다. 1970년 장편소설 「나목」이 『여성동아』현상모집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초기 작품에서부터 중산층의 생활양식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주력하고 있으며, 「도시의 흉년」(1977), 「휘청거리는 오후」(1977), 「목마른 계절」(1978) 등의 장편소설에서 중산층의 가정을 무대로 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매우 폭이 넓다 사회적 단위 집단으로서의 가족구성의 원리와 그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그녀는 가족 내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사회‧윤리적 판단 기준을 제시하기도 하고, 가족 구조의 변화를 역사적인 사회변동의 한 양상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상적인 현실의 삶을 실재성의 원칙에 의거하여 정확하게 그려냄으로써, 한국사회의 내면적 변화의 핵심이 무엇이며, 무엇이 삶에 있어 문제가 되고 있는가를 철저하게 파헤친다.
그녀의 소설은 일상적인 삶에 대한 중년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도 현실적인 감각으로 다듬어지고 있으며, 한국전쟁에 의해 초래된 비극적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심화된 내면의식에 의해 더욱 밀도 있게 이야기가 형상화되고 있다. 첫 장편소설인 「나목」(1970),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 등과 「지렁이 울음소리」(1973), 「부처님 근처」(1973), 「엄마의 말뚝」(1980) 등의 중‧단편소설에서 그녀는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전쟁의 참상과 그것으로부터 연유되고 있는 비극적 현실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비극으로부터 벗어나 오늘의 현실의 삶으로 돌아왔을 때, 거기에는 정치한 심리묘사와 능청스러운 익살, 지나가 버린 삶에 대한 애착과 핏줄에 대한 절절한 애정, 일상의 삶에 대한 안정된 감각이 살아 있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세모」(1970), 「어떤 나들이」(1971),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4), 「카메라와 워커」(1975), 「도둑 맞은 가난」(1975), 「조그만 체험기」(1976), 「꿈을 찍는 사진사」(1977), 「공항에서 만난 사람」(1978), 「우리들의 부자」(1979), 「그 가을 사흘 동안」(1980),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1984),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1989) 등의 중‧단편들이 있으며, 장편소설 「오만과 몽상」(1982), 「미망」(1990),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등이 있다.
「엄마의 말뚝」으로 1981년 제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미망」으로 1990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집으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6), 『나목』(1976), 『창 밖은 봄』(1977), 『휘청거리는 오후』(1977), 『혼자 부르는 합창』(1977), 『도시의 흉년』(1977), 『목마른 계절』(1978), 『배반의 여름』(1978), 『꿈을 찍는 사진사』(1979), 『욕망의 응달』(1979),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이민가는 맷돌』(1981), 『도둑맞은 가난』(1982), 『오만과 몽상』(1982), 『엄마의 말뚝』(1982), 『그 가을의 사흘 동안』(1983), 『인간의 꽃』(1983),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 『서 있는 여자』(1985), 『꽃을 찾아서』(1985), 『해산바가지』(1985), 『유실』(1988),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90),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한 말씀만 하소서』(1994),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1995),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울음소리』(1996), 『나의 아름다운 이웃』(1996), 『속삭임』(1997), 『가는비, 이슬비』(1997),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아저씨의 훈장』(1999), 『조그만 체험기』(1999), 『어떤 나들이』(1999), 『가는 비, 이슬비』(1999),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1999), 『아주 오래된 농담』(2000), 『그 남자네 집』(2004), 『환각의 나비』(2006), 『친절한 복희씨』(2007) 등이 있다.
학력사항
서울대학교 - 국어국문학(중퇴)
수상내역
1970년 작품명 '나목' - 장편소설 「나목」이 여성동아현상모집에 당선
1981년 작품명 '엄마의 말뚝' - 제5회 이상문학상
1990년 작품명 '미망' - 대한민국 문학상
작품목록
나목
목마른 계절
어떤 나들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세모
부처님 근처
지렁이 울음소리
주말농장
한발기
연인들
이별의 김포공항
어느 시시한 사내 이야기
닮은 방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재수굿
카메라와 워커
도둑맞은 가난
겨울 나들이
도시의 흉년
저렇게 많이
포말의 집
어떤 야만
배반의 여름
조그만 체험기
나목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흑과부
돌아온 땅
상
꿈을 찍는 사진사
여인들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도시의 흉년
창 밖은 봄
혼자 부르는 합창
휘청거리는 오후
악사의 아들
꿈과 같이
공항에서 만난 사람
집보기는 그렇게 끝났다
욕망의 응달
휘청거리는 오후
목마른 계절
배반의 여름
추적자
내가 놓친 화합
황혼
우리들의 부자
엄마의 말뚝 1
엄마의 말뚝
오만과 몽상
꿈을 찍는 사진사
욕망의 응달
옥상의 민들레꽃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엄마의 말뚝 2
육복
침묵과 실어
살아있는 날의 시작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천변풍경
로열 복스
이민가는 맷돌
유실
무중
도둑맞은 가난
오만과 몽상
그의 외롭고 쓸쓸한 날
무서운 아이들
소묘
그 가을의 사흘 동안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인간의 꽃
재이산
울음소리
저녁의 해후
어느 이야기꾼의 수염
움딸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초대
미망
해산바가지
사람의 일기
애보기가 쉽다고
저물녘의 황홀
구름이 흘러간 자리
꽃을 찾아서
서 있는 여자
비애의 장
슬기의 친구
꽃을 찾아서
저문 날의 삽화 3
유실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가(家)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우황청심환
오동의 숨은 소리여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꿈꾸는 인큐베이터
티타임의 모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한 말씀만 하소서
마른꽃
환각의 나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참을 수 없는 비밀
나의 아름다운 이웃
울음소리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 갈 때
너무도 쓸쓸한 당신
가는비, 이슬비
속삭임
공놀이하는 여자
J-1 비자
너무도 쓸쓸한 당신
그 여자네 집
아주 오래된 농담
가는 비, 이슬비
박완서 단편소설전집
아저씨의 훈장
어떤 나들이
조그만 체험기
해산바가지
아주 오래된 농담
흑과부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박완서 [朴婉緖]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한국 문학계의 거목' 故 박완서 작가 1주기 추모 기획 특집 (2012년 1월 20일)
글=김지혜 기자 / 일러스트=나소연 기자 / 편집=유연실 기자 /
‘박완서(1931~2011년)’와 ‘한국 문학계의 거목’은 동일어다. 40세 때 늦깎이 작가로 데뷔한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영원한 현역 작가'를 꿈꿨던 그는 삶 자체가 문학이었다. 그가 남긴 숱한 작품들은 한국 문학계의 기둥이 됐다. 오는 22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다. 이제 더 이상 만나볼 순 없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가 박완서. 1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문학을 되짚어봤다.
그분이 하늘나라로 떠난 다음 날, 눈이 내렸었어. 하얗고 포근한 눈은 영정 속 그의 미소와 똑 닮아 있었지.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던 그분의 유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단다. 누구 얘기냐고? 작가 박완서 선생의 이야기야. 난 오늘 너희에게 박완서 선생의 생애를 소개할 문학소녀 ‘별’이라고 해.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의 생애를 소개하게 돼 무척 영광이야.
박완서 선생은 1931년 지금은 북한 땅인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단다. 개풍은 개성 외곽에 있는 자그마한 시골 마을이야. 그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와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 실개천에서 물장구치고 찔레순과 산딸기 등을 따 먹으며 자연과 함께 자라났지. 어른이 된 선생은 “고향은 늘 내게 영원한 그리움이자 안식처였다”고 말했단다.
선생이 서울로 올라온 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여덟 살 때야. 교육열이 남다른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오빠와 함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됐지. 셋방살이를 하는 등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선생의 어머니는 누구보다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힘썼다고 해. 선생의 어머니는 평소 어린 그에게 콩쥐팥쥐·장화홍련 등 다양한 옛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단다. 선생은 “꿈 많고 정서적으로 풍요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건 모두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어머니 덕분”이라고 추억하곤 했지.
▲ 1955년 서울 집앞에서 큰딸을 안고 있는 새댁 박완서. / 조선일보 자료사진
이후 그는 숙명여고를 거쳐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어. 하지만 그해 6·25 전쟁이 터졌고, 선생은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 전쟁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단다. 총기 사고로 사랑하는 오빠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거든. 그는 '언젠가는 이것을 글로 쓰리라’는 생각으로 버텼어. 그리고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미군부대 초상화부에 취직했지. 그곳에서 선생은 운명처럼 박수근 화백(1914~1965년)을 만나게 됐단다.
▲ 지난 2003년 박경리(1926~2008년)작가〈왼쪽〉와 마주한 모습. / 조선일보 자료사진
훗날 가난한 예술가로 살았던 박 화백의 인생 이야기는 선생의 등단작 ‘나목’에 담기게 됐어. 선생은 마흔이 되던 해인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서 ‘나목’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단다. 이전까지 5남매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는 막내가 초등 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해. 아이들이 “엄마 뭐 해?”라고 물으면 “일기 쓴다”고 둘러대며 글을 쓰곤 했다나.
▲ 박완서의 장편소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원고와 은표주박 노리개. / 조선일보 자료사진
그때 이후 선생이 발표한 작품은 100여편 정도 돼. 전쟁의 비극, 중산층의 삶, 여성 문제 등을 주된 주제로 다뤘지. 주요 작품으론 ‘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남자네 집’ ‘친절한 복희씨’ 등을 꼽을 수 있어. 1979년 첫 동화집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을 낸 이후 어린이를 위한 동화도 많이 썼단다.〈맨 아래 참조〉 이상문학상(1981년)·동인문학상(1994년)·황순원문학상(2001년) 등 내로라하는 상도 모두 휩쓸었어.
▲ 박완서가 후배 최인호(67세) 작가에게 보낸편지. / 조선일보 자료사진
물론, 그 사이 시련은 또 한 번 선생을 찾아왔어. 1988년 갑작스레 남편은 폐암으로, 외아들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만 했거든. 크나큰 아픔을 안고 선생은 다시 펜을 잡았어. 소설을 쓰는 건 그에게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지. 지난 2010년 담낭암 진단을 받고도 그는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냈단다.
선생은 마지막까지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분이셨어.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유언 함께 현금 전 재산을 인문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해 남기고 떠나셨단다. 지금쯤 하늘나라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셨을 텐데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내 생각엔 ‘구름 펜’을 잡고 작품 구상에 한창이실 것 같은데…. 오늘 난 선생의 작품 한 편을 꺼내 읽어야겠어. 어때, 너희도 동참하지 않을래?
지인들이 말하는 박 선생님은…
오정희(65세) 작가
“선생님의 글 속엔 젊음과 만년이 두루 갖춰져 있어요. 오랜 세월 독자들을 끌어안은 비결이죠. 그분의 삶과 문학을 모두 닮고 싶어요.”
이해인(66세) 수녀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소재를 갖고도 반짝이는 재미를 더해주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셨어요. 작품세계는 '숲'과 같아 다양한 인간 세상의 면모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김연수(42세) 작가
“돌아가실 때까지 제게 '박완서는 박완서다'란 걸 느끼게 해주셨어요. 자로 잰듯 반듯하게 인생을 사셨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잘못됐다면 그걸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으셨죠.”
큰딸 호원숙(수필가·58세)씨
“어머니는 암에 걸리셨어도 담담하셨어요. 마지막까지 수시로 ‘사랑하는 내 딸들아,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셨죠. 어머니가 문학 속에 영원히 살아계실 거라고 믿어요.”
어린이를 위한 박완서 작가의 작품들
<나 어릴 적에>
작가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쓴 동화집. 그는 이 책을 통해 ‘아주 오래전, 남루하고 부족한 것이 많았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생각할수록 행복한 기억’이라고 말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 개풍지역 마을 박적골에서부터 1950년대 6·25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담겼다. 이 책은 원작을 바탕으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만화로 재구성됐다.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가슴 뭉클한 성장동화. 초등 5학년 김복동 군이 낯선 미국에서 아버지, 그리고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꼴찌들에게 보내는 갈채>
1977년 출간돼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산문집. 이해인 수녀는 “약자를 배려하는 겸손한 따뜻함이 느껴지는 박완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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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 큰딸의 에세이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엄마 박완서는 어떤 사람이었나?
내게도 그냥 엄마였다. 내 책에도 뜨개질을 하시거나 옷을 만들어 주시거나 한 얘기를 많이 썼는데, 사실 우리 어머니만의 특별한 얘기가 아니었다. 그 당시 엄마들은 다 집에서 뜨개질해서 집에서 애들 옷 입혔다. 그때는 뭐 ‘간단룩’이라고 해서 원피스 그런 것 직접 만드셨다. 어려웠던 시절에는 그렇게 입히고 먹이고 했다.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박완서 선생은 늦은 마흔 나이에 첫 소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등단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어머니가 작가로 나설 것을 예감했나?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가족들에게 얘기하셨다. 화가 박수근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저녁 준비하시면서 아버지도 계시고 가족끼리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고 얼마 있다가 쓰신 게 ‘나목’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박완서는 대작가다. 집에서는 어떻게 비쳤나?
나는 그때 고 2였다. 그나마 철이 난 편이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가 작품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심부름도 많이 했고. 당시 학교 갈 때 어머니 원고를 갖고 나왔다. 그때는 택배도 없을 때니까, 책가방에 넣어 뒀다가 방과 후에 신문사, 출판사 이런 데다 내가 직접 갖다 주곤 했다. 원고는 절대 열어보지 않았다. 출판돼 나오면 읽긴 했지만. 내가 미리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우체부가 남의 편지 뜯어 보는 것처럼.
출처 : [큰딸 호원숙 인터뷰] "내 어머니 박완서…지금도 여전한"
나목[ 裸木 ]
소설가 박완서의 장편소설.
저자 : 박완서
장르 : 장편소설
발표년도 : 《여성동아》(1970)
수상 :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
1970년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응모해 당선된 박완서의 첫 작품이다. 6·25전쟁과 분단 문제, 물질중심주의 풍조와 여성 억압에 대한 현실비판을 사회현상과 연관해서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은 6·25전쟁 중 미군 매점(PX)의 초상화 가게에서 일하는 주인공 이경이 가난하고 불우한 화가 옥희도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두 오빠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는 이경은, 옥희도의 눈에서 자신의 모습과 같은 황량한 모습을 느끼고 끌리기 시작한다. 이후 명동성당과 완구점 앞에서 계속 만나던 중 옥희도가 가게에 나오지 않자, 그의 집으로 찾아가 캔버스에 ‘고목’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두 오빠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던 어머니가 죽고 이경 역시 다른 청년과 결혼하여 전쟁의 기억도 사라질 만큼 세월이 흐른 뒤에 이경은 옥희도의 유작전에 들른다. 이 전시회에서 이경은 예전에 보았던 고목 그림이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음을 깨닫는다.
전쟁 때 두 오빠가 폭격으로 죽은 것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느끼며 살아가는 주인공과 죽은 두 아들의 환영에 사로잡혀 사는 어머니, 진정한 화가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미군 매점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살아가야 하는 옥희도의 모습 등은 모두가 전쟁이라는 황폐한 사회적 상황이 만들어 낸 초상들이다. 주인공이 황량한 정신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아픔을 극복해 가는 과정과, 진정한 화가의 길로 들어선 뒤 작품을 남긴 채 떠나는 옥희도의 모습 등을 치밀하고 논리적인 문체로 그려내어 평범한 일상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술가의 눈에는 황량하고 삭막한 나무마저도 꽃과 잎을 틔우지 못하는 마른 ‘고목’이 아니라 싹을 틔울 봄날을 기다리는 ‘나목’으로 보이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나목[裸木]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잠깐! 보석 같은 작가님들 소개합니다@
브런치에 새로 오셨거나 좀 더 많은 작가님들과 소통을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본글 댓글에 직간접적으로 메모를 남겨주시면, 다음 연재글에 본 코너에서 소개해 드릴게요. 여러 번, 반복 소개도 가능합니다. 쑥스러워하지 마시고요.
송주 (프리랜서) 두 아들 엄마이자 프리랜서 영어강사입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며 읽고 쓰며 즐거움을 찾고자 합니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글이 독자 들에게도 작은 즐거움 이었으면 합니다. 아침에 눈 뜨면 얘 있다 매거진 , 끼적여 봅니다 매거진 , [브런치북] 차라리 집구석에서 나오자
호랑 (시인) 시를 쓰며 에세이와 그림일기를 통해 나를 만나고 있습니다. . . 그림에세이 '지금이야, 무엇이든 괜찮아' , '누구나의 계절' 출간. 신간 <모든 다정한 저녁> 출간 호랑의 그림일기 매거진 , 호랑의 북 포레스트 매거진 , [브런치북] 들녘에 사는 이별
희야 (상담사) 잘 살아준 나에게 글쓰기로 선물을 주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삶도 쉬운 길은 없습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든 분들께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는 글이 되고 싶습니다. 너와 내가 있고 우리가 있는 곳 매거진 , 내 마음의 단상 매거진 , 대단한 글쓰기 2 매거진
조선여인 (에세이스트) 은퇴 2년 차로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에피소드를 글로 표현하고자 함. 인간미 담긴 글을 좋아해서 매일 두리번거리지만 제 나이는 잘 모르는 조선여인임. 조선여인의 브런치스토리
아래는 최근 6개 글에서 말씀 나눠주신 작가님들이세요.
metainsight (교사) 세 아이의 엄마, 책선생으로 살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 책 이야기를 나눕니다.
꿈그리다 (에세이스트) 자연속에서 계절을 담아내는 초록예찬가, 사계절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요. 아름다운 사계절의 소중한 순간을 글로 씁니다. 전지적 계절 관찰자시점 -자연관찰자 [브런치북] 꿈꾸는 봄과 여름
○교과서에 실린 작가 110명○
*아래는 '가나다순'이고 선호도가 높은 작가님들을 우선순위로 소개해 드릴께요
강은교
고정희
공선옥
곽재구
기형도
길재
김광규
김광섭
김기택
김만중
김소월
김소진
김수영
김승옥
김시습
김영랑
김용택
김유정
김종삼
김춘수
나태주
나희덕
류시화
문정희
문태준
박경리
박두진
박목월
2. 박완서
박인로
박재삼
박지원
박태원
백무산
백석
생텍쥐페리
서유미
서정주
성삼문
성석제
송순
신경림
신동엽
신석정
신영복
심훈
안도현
양귀자
염상섭
오정희
유치진
유치환
1. 윤동주
윤선도
윤오영
윤흥길
이강백
이규보
이근삼
이문구
이상
이상화
이성부
이순원
이양하
이용악
이육사
이청준
이태준
이호철
이황
이효석
임철우
장석남
장영희
전광용
정몽주
정약용
정지상
정지용
정철
정현종
정호승
조세희
조지훈
주요섭
차범석
채만식
충담사
천양희
최인훈
최일남
최치원
프란츠 카프카
피천득
하근찬
한강
한용운
함민복
허균
헤르만 헤세
현덕
현진건
홍석중
황동규
황석영
황순원
황인숙
황진이
황현
*사진, 그림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