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에 적극적으로 부딪친 소설가
브런치 마을에서 펼쳐지는 공포물에 비견되는 눈빛 추격전, 그 달콤 살벌한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제목 : 달콤 살벌한 댓글 전쟁
서기 2050년 브런치 마을이 생긴 지도 어느덧 40년이 되어간다. 세상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점령한 지 오래 되었고 사람들은 이제 온라인에서 의식주 대부분을 충족하고 있다. 밥도 알약 한 알로 해결되는 초간편 시대가 된 것이다. 그간 유튜브, 구글, 트위터 등 숱한 플랫폼과 SNS가 생겼다 이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오랜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은 브런치 마을. 이 마을을 버티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행복한 품앗이>라는 브런치 마을만의 오래된 민족 정서가 그 비결이다. 허나 이런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민족정서도 처음엔 문제가 많았었다.
자, 그럼 2025년 그 시절, 질풍노도의 브런치 마을로 타임머신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25년 1월 1일 새해. 나이 한 살을 먹은 브런치 마을. 근데 올해는 연초의 축제분위기는 오간데 없이 썰렁하기만 하다. 브런치 마을에 사이버 경찰이 출동하고 오프라인에선 십만 작가네 집에 119와 경찰, 앰뷸런스도 출동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십만 작가는 이름하여 브런치에서 최초로 10만 명의 구독자를 달성한 작가였다. 게다가 그의 글들은 브런치에 올리는 족족 평균 댓글이 1000개 이상이 되었으니 가히 전설적인 작가였다. 물론 그가 출간한 책들도 나오는 족족 100만 부가 팔리니, 브런치 마을에서는 동창의 성공마냥 모두의 긍지이기도 했다.
ㅡ 하략 ㅡ
출처: 13화 [연재 11] 브런치 전원일기, 행복한 품앗이 (brunch.co.kr)
파란만장했던 젊은 시절
황석영은 1943년 아버지가 사업을 하던 만주에서 태어났다.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은 필명이고, 본명은 ‘황수영’이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교지와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부산의 일간지에서 주최하는 신춘문예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투고하여 당선되며 일찍이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1960년 4·19 혁명이 발발했을 때 황석영은 고등학생이었는데, 하굣길에 군대의 무차별 사격으로 옆에 있던 친구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이 일이 삶의 방향을 결정 짓는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이후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남도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야간 학교를 가까스로 마친 뒤, 1964년 시위에 참여했다가 유치장에 갇혔다. 그리고 유치장에서 만난 건설 노동자와 함께 남도를 전전하며 노동판에서 일하다가, 1966년 입대하고 이듬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이처럼 어렸을 적부터 다사다난했던 삶의 궤적은 고단한 인생사를 짐작하게 한다.
문학을 통한 적극적인 현실 참여
황석영은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탑〉이 당선되어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같은 해 11월 전태일의 분신자살 사건은 황석영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그는 현장에서 직접 노동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소설가의 본분을 잊지 않고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소외된 계층들의 삶을 문학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객지〉, 〈삼포 가는 길〉 등 1970년대 초·중반에 집중적으로 발표된 초기 단편 소설에서, 그는 뿌리 뽑힌 인물들의 삶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냉정하게 드러내며 비판적 사실주의의 토대를 구축하였다. 그는 문학의 현실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문학이 인간의 삶을 개선해 나가는 데 무력하다는 의견은 몹시 비관적이며 반문학적인 견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후 그는 천민 계급의 삶을 통해 민중의 힘을 그려 낸 대하소설 《장길산》, 베트남전의 실상을 심층적으로 파고든 장편 소설 《무기의 그늘》 등 현실을 고발하는 소설들을 계속해서 펴내며 자신의 신념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갔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
1978년 광주에서 현장 운동을 계속하던 황석영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목격하고, 이후 광주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1982년 망월동 묘역에서 희생자들의 영혼결혼식이 열렸고, 황석영은 이를 기리기 위한 노래의 작사를 맡았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1985년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록물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출간하였고, 이 책은 당시 금서로 지정되었으나 ‘지하 베스트셀러’로 불리며 광주의 진실을 널리 알리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방북과 투옥 생활 이후
1989년, 황석영은 정부의 공식적인 허가 없이 일본을 거쳐 평양을 방문했다가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5년간 수감 생활을 한다. 훗날 그는 이 일에 대해, 북한이라는 장애물을 넘어 세계를 좀 더 크게 보고 싶었다고 회고하였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문학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였던 그의 삶의 자세는 끊임없는 문학적 성취를 낳는 밑거름이 되었다. 2000년 이후의 작품인 《오래 된 정원》, 《손님》, 《심청》 등의 장편 소설에는 불의에 대한 적개심을 넘어 화해와 공생을 바탕으로 한 미래를 꿈꾸는 작가의 의지가 드러나 있다.
ㅡ <교과서가 사랑한 작가 110> 중 ㅡ
경복고등학교 중퇴
숭실대학교 철학과(재적)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중퇴
前 새정치국민회의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1999년)
2004년 제8회 만해대상 문학상
2004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올해의 예술상
2008년 제3회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
1974년~1984년 소설 《장길산》, 황석영 한국일보 연재 및 출간[5]
1989년~1991년 만화 《장길산》 백성민
2004년 SBS 《장길산》
서민호 작가님 (프리랜서) 서민호의 브런치입니다. 87학번으로 신입생때부터 년간 평균 80여권의 책을 읽어왔습니다. 삼성에서 21년 근무후 40대중반 뜻하는 바 있어 조기명예퇴직후 프리랜서로 생활중입니다. 명품아파트와 벌목., [2024 독후기록 26] 난처한 미술이야기 1 , [2024 독후기록 39]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양미라 : 봉순 역 (아역 심은경)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