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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Jun 05. 2024

7. 김유정 '동백꽃'

고통을 이기는 해학의 힘을 가진 소설가

가난한 청년의 초상

( 부제: 청년 빈곤, 스튜던트 푸어)


하늘 높이 솟은 빌딩의 소실점은
분명 저 하늘 끝에 있고
천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볼 때 소실점은
지구 중심에 있을 테니깐요      



*초상(肖像) : 사진, 그림 따위에 나타낸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 또는 비춰지거나 생각되는 모습.


소실점(消失點) : 실제로는 평행하는 직선을 투시도상에서 멀리 연장했을 때 하나로 만나는 점.



[인용글, 사진 출처] 그림 기초 혼자서 연습하는 법 3강 투시도법 1편 소실점 완벽 이해 하기|작성자 디자인선수



국민학교 때였던가.

빽빽이 밀집되어 있는 집들 사이에서, 우리 집의 위상은 9평으로 이름 지어졌다.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 때는 가끔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거기에는 집 평수를 쓰는 항목이 있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의 집은 ‘평수’라는 개념이 있고, 그것으로 집 크기를 재기도 하고, 다른 집과 비교도 하고 심지어 인생의 서열과 인간의 존엄마저 가늠되곤 한다는 사실을. 그것은 나이가 들수록 하나의 계급언어가 될 수 있음도 말이다.

9평의 아늑했던 내 고향집. 나는 그 집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살았다. 적어도 집 평수를 적어냈던 국인학교 저학년 전까지는 나는 한 번도 그 집이 비좁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먼 훗날 알았다. 그 집에서 11명의 식구가 살았다는 내 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껌벅이며 놀라는 것을 보고, 내가 꽤 많이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9평이지만 이래 봬도 방 세 칸에 마루와 부엌이 있었다. 마루와 부엌이 같은 말이라는 것과 세수하는 공간인 세면실은 이내 현관이라는 사실이 꽤 아쉽긴 했다. 즉 다른 집의 현관이라 일컫는 공간에서 우리는 신발을 신고 벗었고 동시에 그곳에서 세수를 하고 여름이면 목욕도 했다. 집에 개별 수도가 없었기에 양동이로 공동수도에 가서 물을 받아 채워놓는 것은 어른들 하루 일과였다. 겨울에는 그 물 중 일부를 연탄 아궁이나 곤로-가스레인지 전 세대 부엌 가열도구-에 올려 데웠다. 그 데워진 온수는 세수나 목욕 시 찬물과 조금씩 섞어서 썼다.      

겨울 온수 얘기하니깐 끔찍한 참사가 떠오른다. 겨울 어느 날, 언니가 출근하려고 세숫대야에 이제 막 데운 뜨거운 물을 쏟아부었다. 이내 찬물을 섞어 쓰려는 찰나 늦잠을 잤던지 작은 쥐 한 마리가 그만 그 뜨거운 물에 뛰어든 것이다. 그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였다. 그러나 가난과 불편, 결핍이 일상인 우리는 그 참사 앞에서 단발성 비명과 투정만 내지를 뿐 사고현장은 급하게 수습되었다. 우리는 쥐 한 마리, 그 생명의 허망함을 공감해 주기에는 먹고 살기에 빠듯했다. 그 하루하루의 아침이 늘 전쟁 같았다.      

출처 : 청년 클레어의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






가난의 느낌

청년이 가난에 허덕이는 나라, '가난의 상속과 절망'은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다간 불시에 덮치곤 한다. 어느 해였던가, 고시원에서 1년 반을 지냈었다. 직사각형의 네모난 공간에서 달팽이처럼 느리고 더딘 청춘을 낭비하듯 때론 부여잡듯 보냈었다. 어느 날은 낭만적인 비전에 불타오르다가도, 이내 현실의 냉혹한 청구서 앞에서, 찬물로 세차게 얻어 맞으며 무너져 울어버리곤 했었다.

그 시절 가난은 안간힘을 써도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 같은 족쇄였다. 가난, 이미 한참 전에 마스터한 인생의 난제이건만, 내 몸 여기저기서 몸살과 열병이 피어오르는 날이면, 구더기처럼 저 변기통 밑에서 끔찍하게 기어 올라오곤 했다. 가난이 징그럽고 지긋지긋하다 느껴지다가도 이내 이 결핍이 익숙하고 차라리 체념적으로 편안했다.


기억의 망각과 소환

괴롭고 힘든 기억들은 망각의 언덕 어디메쯤 숨겨두고 아니 버려두고 잘도 살았건만, 어느 날 득달처럼 선명하게 찾아오는 가난과 불행의 기억들은, 마치 소실점을 찾아 장엄하게 침묵하던 화면이, 갑작스럽게 괴물처럼 클로징 되어 충돌하는 난감함을 주기도 했다.


달팽이처럼, 가난의 짐짝을 짊어지고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 그게 힘들게 뭔가, 무거울게 뭔가, 있는 자들도 다들 그 나름의 무거운 짐짝은 한두 개 이상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자조적 위로를 하곤 했었다. 가난이 무겁고 힘든 게 아니었다. 이 가난이 피어내는 한숨과 투정과 간헐적 언쟁, 느린 걸음, 공연히 벌어지는 듯한 타자와의 시간들, 마음앓이의 빈 공간들이 싫었던 것이다. 그냥 자유롭고 싶었다. 어디에 매이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삶을, 오직 그것만을 등에 지고 살아 보고 싶었다.


고시원의 소리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월 45만 원 하숙생활도 잠시, 몇십만 원 아끼겠다고 고시원으로 옮겼다. 어머니의 연체된 1000만 원 카드론 빚을 빨리 갚겠다고 말이다. 좁다란 고시원 복도, 낯선 타인들, 바스락 거리는 옆방의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가끔은 이 단단하게 옥죄는 공간에 나처럼 묶여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무슨 꿈이 있는 것일까.

 

출근하기 싫은 날들

일어나는 게 싫었다. 하루가 시작되는 게 싫었다. 외국계 기업이라 혹자는 부러워했지만 업무도 적성에 안 맞았고, 이 신입 연봉으로 삶의 청구서와 누적 적자 모두를 해소하기엔 버거웠다.


창문 없는 고시원이 좋은 건, 내가 불을 켜지 않는 이상,  공간은 내내 밤을 가장하여 나를 숨겨주기 때문이다. 삶이 힘들고 버거운 것이 지금만이랴 생각했다. 대학교 때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고자, 겨울엔 얼음장 같은 집 베란다에서, 겨울잠바를 입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미니 난로에 의지해 공부했다. 여름엔 폭염의 날씨에도 선풍기 하나 의지해 땀 흘리며 그리 지냈다. 집 거실에 나가면 자그나마 에어컨이 있었지만 안일한 가난에 지고 싶지 않았다. 추위로 잠을 깨우고 더위로 고통스러운 결의를 다지곤 했다. 내 방 없이 산지 20년 넘는 세월은 늘 그런 식이었다. 그러면서도, 내 궁색한 현재를 알리 없는 직장에선 더없이 당당한 커리우먼 흉내를 내곤 했었다.



고시원 침대 속에서 마치 누에 속 애벌레처럼 축 늘어져 있을 때도 있었다. 캄캄한 어둠은 내 미래의 어둠 같았다. 아침 겸 점심을 대충 먹고는 저녁은 1000원짜리 김밥으로 몇 개월을 버틴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엄지발가락에 발톱이 비집고 들어와 통증이 밀려왔건만 택시비 아끼다 오히려 덧나 한참을 고생했다.


하루는 회사에 월차를 내고 고시원 좁은 공간에 반나절 내내 누워 있는데, 삶이 헛헛했다. 아무런 백도 없는 인생, 가난의 되물림에 제대로 발목 잡힌 삶, 그땐 매일 천국을 그리워하며 매일을 버티기도 했었다.


그런 날은 어둠 속에서, 국민학교 운동장의 어느 풍경과 당시 20대 청춘의 날들을 오가며, 오늘도 숨 가빠야 하는 내 삶의 기원들을 더듬거리곤 했다.  


나도 어렸을 때 생활이 또 삶이 어려웠다. 내가 국민(초등) 학교 때 우리 집은 영세민(기초생활수급자)이었다. 가족이 11명인데, 9평에 살았고 부모님이 다 계시는데도 영세민이 될 만큼 어려운 사연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7남매인데, 설상가상으로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이후는 상상에 맡기겠다. 정말 각자도생, 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중. 고등학교도 그렇지만 형편이 좀 풀린 대학 때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그때도 내 개인방이 없어서 내내 난방과 냉방이 안 되는 베란다에 공부방을 만들어, 겨울엔 난로 또 여름에는 선풍기로 지내곤 했다. 그 덕에 학부 수석장학금을 비롯 대학 내내 성적장학금을 받았고 조기졸업으로 학비를 아낄 수도 있었다. 난 다행히 또 무사히 내 삶의 위험을 잘 견디고 피하며 살아온 것 같다.

출처: 청년 클레어의 <땀소리> 중  


대학교 1학년 첫 학기 학회실, 어머니와 약속대로 학비 등은 내가 스스로 해결해서 다니겠다 했다. 어느 해가 안 그랬으려 마는, 그 해에도 우리 집은 빠듯했다. 동아리 방, 학생회실을 오가며 안면을 익힌 선배들과 대화하다 헌 전공책 얘기가 오갔다. 신입생이라 수줍음이 가득했으나 버릴 거면 저를 달라 하여, 그 학기 전공책 3권을 그렇게 조달 받았다. 헌책을 구하기도 해서 정말 가성비 작렬하는 새로운 봄이었다.


동기들은 의례히 미팅이나 대학축제, 화려한 봄을 즐겼으나 나는 도서관과 선교단체 건물을 오가는 일 외에는 일절 놀지도 않았다. 집이 있는 안양에서 서울에 있는 캠퍼스까지는 편도로 1시간 30분이건만 그때는 하숙이나 자취할 엄두도 못 냈다. 오히려 전철이 공부가 잘 된다며, 사람 없는 시간대에 전철을 타서 이동시간마저 아꼈다. 매 학기 성적장학금을 타야 했기에, 늘 긴장했고 언제 등수에서 밀려날지 모르는 피 마르는 시간들이었다.




2024년 봄, 세월이 흘러 나도 조기 승진해 임원도 되고 멋진 짝꿍도 만났다. 상전벽해처럼 흘러간 세월 속에서 과속했던 시간들이 가끔은 욱신거리는 근육통처럼 생각날 때가 있다. 그래, 30대 초반에 찾아왔었던 탈진과 번아웃은 내내 누르고만 있었던 생채기가 엄살을 받아달란 사인이 아니었을까. (오홋~ 꼬마냄비의 재기)


어느 주말 시외버스터미널.

새벽을 뚫고 하늘은 어김없이 열렸다. 여릿한 빛 좋은 쪽빛 하늘 너머 어스름이 떠오르는 태양과 일대의 금빛 향연, 감격스러운 이 하루를 마음 가득 누리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 였을까. 지금의 평온과 안도가 마치 내 일이 아닌 것처럼 가끔은 어색하다.


시외버스터미널 편의점에 곁 붙은 간이식당에는 몇 안 되는 청년들이 간간이 보였다. 토요일 새벽, 이들은 무슨 사연이 있어 먼 길 떠날 차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홀로 컵라면을 먹고 있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사랑의 도피인지 어색한 가방을 챙겨 와 출출한 허기를 채우려는 남녀 청년들.


"여러분의 청춘은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마음 깊이 그 어딘가에 자리 잡혀 있었을, 20대의 내 청춘이 그들 서너 명의 청춘들에게 독백처럼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건국 이래 부모 세대보다 더 빈곤해질 거라 우려 섞인 시선을 받는 청년들, 그들의 하루가 안쓰럽고 궁금하고 되뇌어지는 요즘이다. 그들 모두, 삶이 달팽이처럼 더디고 허물어질지라도 버티고 견디면서, 안녕 또 안녕하시길 두손 모아 안부를 전한다.



반지하에 자취하는 청년의 소회


















말더듬이 멱서리

김유정의 아호는 ‘멱서리’이다. 멱서리란 곡식을 담는 데 쓰는 그릇으로, 재산을 많이 모으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김유정은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였고, 형 유근의 무책임하고 방탕한 소비로 인해 궁핍한 삶을 전전하였다. 또한 말더듬이어서 휘문고보 시절 눌언 교정소를 다녀 고치기는 하였으나 늘 과묵하였고, 이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지만 결석이 잦아 제적 처분을 받았다. 1933년 <산골 나그네>를 발표하였으며, 2년 뒤 <소낙비>, <노다지>로 등단하면서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한다. 이 시기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가입하여 이상 등과 교분을 쌓았는데, 특히 폐결핵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서 이상과의 친분이 주목받기도 한다. 등단하던 해 <만무방>, <봄·봄> 등 10편의 작품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였지만 악화한 늑막염에 치질, 폐결핵까지 겹친 그는 1937년에 짧은 생을 마감한다.


날카로운 현실 비판, 고통을 감싸는 해학의 힘

춘천 실레 마을에서 태어난 김유정은 자연스럽게 작품 안에서 농촌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었다. 그가 주목한 당대의 현실은 피폐한 농촌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농민이나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여 도시의 하층민으로 전락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김유정의 소설에서 농촌과 도시의 하층민들의 모습은 해학적 웃음을 유발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의 소설에는 소위 ‘바보형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인물들은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혹은 자신의 욕망이 실현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김유정의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주인공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끼며, 자신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껏 웃는다. 그러다 작품을 다 읽고 났을 때, 왠지 모를 비애와 동정에 사로잡힌다.
또 인물의 순박함과 그로 인한 웃음을 더욱 부각하는 것은 그의 토속적인 문체이다. 김유정은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관심, 그리고 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탁월한 언어 감각을 보였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제목을 제외하고는 한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역의 방언과 비속어의 구사, 소리 나는 대로 적은 표현은 김유정 소설의 토속성, 그리고 웃음의 미학을 극대화하는 데 일조하였다.


어머니를 닮은 그녀에게 반하다

일곱 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고 매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던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졸업하던 해 당대 유명한 명창이자 기생이었던 박녹주를 만난다. 어머니를 닮은 박녹주에게 2년여 동안 광적으로 구애하지만 그의 마음은 끝내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박녹주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김유정은 실의에 빠지고 고향인 춘천 실레 마을로 돌아온다. 고향에서 그는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고, 마을 사람들과 정을 나눈다. 당시 마을의 돌쇠 어멈에게 들은 어떤 들병이 여자 이야기는 이후 <산골 나그네>의 모델이 되고, 실레 마을에 딸만 여럿 낳아 데릴사위를 들여 부려먹으며 욕을 잘하는 박봉필이란 사람은 <봄·봄>의 모델이 되었다.
그의 작품 중 10여 편의 작품이 모두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쓴 것이다.


ㅡ <교과서가 사랑한 작가 110> 중 ㅡ













김유정(金裕貞)


출생 - 사망 :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 1937년 3월 29일

출생지 : 대한제국 강원도 춘천군 신남면 증리

일제 강점기 조선의 조설가이다.




생애



가계

김유정의 본관은 청풍(淸風)으로 족보에는 조선 현종의 왕비 명성 왕후의 친정 아버지로 왕의 장인이었던 김우명의 넷째 손자 도택(道澤)을 김유정의 선조로 적고 있다. 할아버지 익찬(益贊, 1845년 ~ 1909년)은 자를 자영(士英)이라 했으며, 1891년에 증광시 진사시에 급제하여  통 사랑 행의 금부도사를 지냈다.  익찬의 아들인 춘식(春植), 즉 김유정의 아버지는 자를 윤주(允周)라 하였는데, 1894년에 식년시 진사시에 급제하여, 사마좌 임금 부주사(司馬座任禁府主事), 예식 부주사, 궁내 부의관을 역임하였다.



출생지

김유정의 아버지 김춘식과 어머니 청송 심 씨 사이에서 2남 6녀의 일곱째로 태어났다.

김유정의 고향은 실레마을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의 경춘선 신남역(2004년 김유정역으로 변경)이 있는 이곳은 김유정의 선대 집안이 몇 대에 걸쳐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이기도 했다. 흔히 김유정의 출생지를 춘천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김유정의 셋째 누나였던 김유경은 김유정의 출생지가 서울 진골(지금의 종로구 운니동)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현재 실레마을의 주민들 가운데 김유정춘천에서 태어났음을 증언하는 사람은 없다. 전상국은 대대로 춘천의 실레마을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김유정의 선대가 춘천 의병이 잇따라 봉기하던 구한말 경술국치 때 서울에 집을 마련하여 식솔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켰고 김유정도 이 무렵에 태어났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혹은 일본의 재산 몰수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도 한다.)

한편 김유정 본인은 자신의 고향을 춘천으로 생각하여, 〈오월의 산골작이〉라는 수필에서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20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닷는 조고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 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친 안윽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친 모양이 마치 옴푹한 떡시루 같아 하야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중략)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그들의 생활도 어데인가 시적이다. 어수룩하고 꾸물꾸물 일만하는 그들을 대하면 마치 딴 세상 사람을 보는 듯하다."고 적고 있다.



유년기

김유정의 어머니는 김유정을 낳은 뒤 딸 하나를 더 낳고, 그가 일곱 살이 되던 1915년 3월 18일에 그만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도 2년 뒤 5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죽은 뒤 집안 살림을 도맡게 된 형 김유근은 집안에 여자들을 끌어들이는 등 방탕한 짓을 일삼아서 가세는 기울었고, 진골에서 관철동으로, 다시 숭인동, 관훈동, 청진동 등으로 옮겨 다니게 되었고 그때마다 집의 규모도 줄어들었다.(이러한 김유근의 모습은 훗날 김유정 자신의 단편소설 〈〉에 한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16년부터 1919년 봄까지 김유정은 4년 동안 이웃 글방에 다니며 《천자문》, 《계몽편》, 《통감》 등을 배우고, 붓글씨를 익혔다. 만 12세에 에울입월초등학교 이듬해 3학년으로 월반한 뒤에 4학년으로 졸업할 정도로 그의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으며, 1923년 4월 9일에는 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5년제)에 검정으로 입학하였다. 휘문고보에 입학하면서 김유정은 이름을 잠시 나이(羅伊)로 바꾸었다가 3학년 때 다시 본래 이름으로 되돌렸다. 숭인동 80번지로 다시 이사하였는데, 휘문고보에서 안회남(신소설 《금수회의록》의 저자 안국선의 아들)과 친하게 지냈으며, 야구 · 축구 · 스케이팅 · 권투 · 유도 등의 스포츠와 소설 읽기, 영화 감상, 바이올린 연주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동장에서 투포환을 가슴에 맞고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였던 그는 교내에 하모니카 서클을 만들기도 했으며, 3학년 때 몸이 좋지 않아 1년 휴학하고 집에서 쉴 즈음, 당시 단성사 개관기념 행사에서 단상에 올라 하모니카 독주를 하기도 했다.



청년기

김유정이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형 김유근은 마침내 서울에서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아내와 자식들도 남겨둔 채로 춘천 실레마을로 낙향해 버렸다. 형으로부터의 생활비와 학비 보조를 받지 못하게 된 김유정은 봉익동에서 적십자 병원 의사 일을 하던 삼촌집에 잠시 머무르다 곧 누나들과 형수의 집을 전전했고 이때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특히 휘문고보 재학 시절부터 치질을 앓게 된 김유정은 삼촌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게 된 뒤에도 늑막염이나 폐결핵 등의 병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여, 친구 안회남에게 "가슴이 뜨끔뜨끔 아프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21세 때 휘문고보를 졸업(제21회)한 김유정은 이듬해인 1930년 4월 6일에 경성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두 달 만인 6월 24일에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중퇴하고 만다. 제적 사유에 대해서는 퇴학자 명단에만 기록이 있을 뿐 상세한 기록이 없지만, 대체로 수업 일수를 제대로 채우지 못했을 가능성이 지적된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사진의 모습.


휘문고보를 졸업하던 해에 김유정은 4살 연상의 기생 박록주를 보고 한눈에 반해 짝사랑하게 되었는데, 밤새워 편지를 써서 보내는가 하면 혈서를 써서 전하기도 하고, 선물도 보냈지만 번번이 되돌아왔으며, 직접 찾아가 구애하기도 하고 박록주가 나가는 요정 앞에서 밤새워 기다렸다가 인력거에 탄 그녀를 끌어내려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2년 가까이 지속된 김유정의 병적인 짝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괴로워하던 김유정은 어느 날 갑자기 형 김유근이 있는 고향 춘천으로 내려갔다. 앞서 김유근에게 병 치료와 생활비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한 상황에서 마침 둘째 누이의 동거남이었던 매형 정씨의 부추김을 받아, 집안의 남은 재산까지 탕진하고 있는 형 김유근을 상대로 재산 분배 소송을 내기 위한 낙향이었지만, 춘천에서 김유정은 고향의 순박한 정취와 가난한 당시 농민들의 삶을 직접 체험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브나로드 운동

춘천에서 김유정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들병이(이리저리 떠돌며 술을 파는 여자)들을 찾아다니며 술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대학 공부에 대한 미련으로 1931년 다시 상경한 김유정경성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지만 그곳에서도 곧 퇴학하고 말았고, 매형 정씨의 주선으로 병도 휴양할 겸 충청도의 어느 광업소 현장감독으로 내려가게 되지만, 이곳에서조차 광부들과 어울려 매일 술만 먹다가 결국 건강만 더 악화된 채 서너 달 만에 고향 실레마을로 돌아왔는데, 이곳에서의 경험은 훗날 그의 소설 〈금 따는 콩밭〉, 〈노다지〉, 〈〉 등의 모티브가 되었다.

고향에서 1930년부터 1932년까지, 1년 7개월을 머무르면서 김유정은 마을 청년들을 모아 농우회와 부인회 등을 조직하고, 고향집 언덕받이에 움막을 짓고 옛날 자신의 마름집 아들이었던 조명희나 조카 김영수(김유근의 아들) 등과 뜻을 함께 하여 『동아일보』의 농촌계몽운동 교육교재로 야학을 여는 등 본격적인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다. 춘천문화방송에서 김유정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김유정은 민중들을 사랑하여, 명문집안의 자손인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소작인들에게도 존댓말을 하였다고 한다. 김유정이 조직한 농우회는 뒤에 '금병의숙'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간이학교로서 인가를 받은 뒤 학생들을 모아 가르쳤으며, 지금엔 그곳에 면에서 운영하는 마을회관이 서있고 그 옆에 김유정의 뜻을 기리는 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2학기 문학답사 형식 수업인 《국문학연습》에 의하면, 김유정 작가가 농촌계몽운동을 한 살레마을에서는 살레 사회복지관을 운영함으로써 빈곤과 빈곤한 부모의 무지로 인해 배움에서 소외된 가난한 농민들의 자녀들과 함께 하고자 했던 김유정 작가의 뜻을 이어받고 있다.

1932년 6월 15일에 김유정은 자신의 첫 작품인〈심청 을 탈고하였다(이 작품은 4년 뒤인 1936년 조선중앙일보사 발간 『중앙』지에 발표되었다).

한편 김유근은 고향 춘천에서도 가산을 완전히 정리한 뒤, 그곳에 있던 조상의 무덤까지 파서 화장해버렸다. 형으로부터 '청산된 금액의 1/30' 만큼의 돈을 얻은 김유정은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와, 둘째 누나의 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 이때 김유정은 늑막염이 악화된 상태였고 병원에서는 폐결핵 진단까지 받게 되었다. 여기에 당시 공장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누나의 히스테리 증세에 그 누나에게 얹혀 사는 건달이나 다름없는 매형 정씨에 대한 미움까지 겹쳤는데, 이것은 훗날 김유정의 문학세계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단 생활

이미 단편 소설 '소낙비'로 1935년 《조선일보》에 당선되기 2년 전에, 김유정은 〈산골 나그네〉라는 소설을 개벽사의 문예지 『제일선』에 발표하였다. 이 〈산골 나그네〉는 김유정이 춘천에 있을 때, 팔미천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다 길가 오막살이에 살던 돌쇠라는 사람의 집에서, 돌쇠어멈으로부터 그 집에 며칠 머물다 도망친 어떤 들병이 여자에 대하여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지은 것이었다고 한다. 같은 해에 〈총각과 맹꽁이〉(『신여성』 9월호), 〈흙을 등지고〉 등을 발표했지만, 이들 소설은 그렇게 좋은 반응을 얻어내지는 못하던 차에 1934년 말에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 『동아일보』등 세 개의 신문사에 나란히 소설을 응모하였고 그 가운데 『조선일보』에 응모했던 〈소낙비〉는 1등, 『조선중앙일보』에 응모했던 〈노다지〉가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비로소 문단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등단한 해에 김유정은 자신의 생에 대표작이라 불릴 작품 대부분을 발표하였다. 〈금 따는 콩밭〉 · 〈〉 · 〈〉 · 〈만무방〉 · 〈산골〉 · 〈〉 · 〈봄봄〉 · 〈안해〉 등의 단편 10편과 수필 3편이 그가 등단한 바로 그 해에 쏟아져 나왔는데, 춘천에서 보고 느꼈던 고향의 정취와 농민들의 곤궁한 생활, 그 자신의 개인적인 불행에서 체험한 감상 등이 그의 소설의 주요 모티프였다. 문단에 이름을 올린 김유정과 절친했던 문우(文友)로는 휘문고보 때부터의 동창이었던 안회남 말고도, 사직동의 매형집에 살 때부터 앞뒷집에 살며 김유정의 생활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던 이석훈도 있었고, 이석훈의 소개로 구인회에 가입한 뒤에 알게 된 이상(李箱)도 있었다. 1947년에 똑같이 〈남생이〉라는 작품으로 『조선일보』에 등단한 현덕(玄德)도 김유정의 문우였다.

1934년에 김유정은 사직동에서 혜화동으로 이사하였고, 누나의 집에서 식객살이를 시작했다. 김유정에게는 무수히 많은 원고 청탁이 쏟아져 들어왔고, 김유정 자신도 약값을 벌기 위해 청탁이 오는 대로 글을 썼지만 그나마도 돈이 생기면 술값으로 써버리기 일쑤였다. 《여성》이라는 잡지에 자신이 기고했던 〈어떠한 부인을 맞이할까〉라는 글과 나란히 실린 박봉자(시인 박용철의 여동생)의 글을 읽게 된 김유정은 다시 얼굴도 모르는 박봉자라는 여인을 향해 무려 31통에 달하는 구애의 편지를 썼지만, 답장은 한 통도 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얼마 뒤 김유정 자신도 잘 알고 지낸 평론가 김환태와 박봉자가 약혼을 했으며 곧바로 결혼했다는 비극적인 소식만 듣게 되었다.



죽음

1936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김유정은 형수가 사는 단칸 셋방에 함께 살며 폐결핵이 더욱 악화되어 고생하였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다섯째 매형 유세준(다섯째 누나인 김유흥의 남편)의 집으로 내려가면서도 자신의 조카 김진수를 데리고 갈 정도로 조카에 대한 애정을 쏟았던 김유정은 죽기 11일 전인 3월 18일에 방안에 커튼을 치고 촛불을 켜놓고 글을 썼는데, 친구 안회남 앞으로 남긴 〈필승전〉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김유정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있다.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있다. 그리고 맹렬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채리지 않으면 이 몸을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라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하여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한둬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번역해서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허거든 네가 적극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엎집어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쏙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딱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다우.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우.


1937년 3월 29일 아침 6시 30분에 김유정은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폐결핵. (향년 29세)

김유정의 유해는 가족에 의해 광주에서 서울 서대문 밖의 홍제동 화장터(현재의 서울고은초등학교 부지, 현재 화장장은 벽제로 이전)로 옮겨져 화장되었다.




주요 작품

 

산골 나그네

소낙비

금 따는 콩밭

봄봄

동백꽃

만무방




작품 특징

김유정의 소설은 인간에 대한 훈훈한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는 데 묘미가 있다. 많은 사람을 한 끈에 꿸 수 있는 사랑, 그들의 마음과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이어주는 사랑을 우리의 전통적인 민중예술의 솜씨로 흥미롭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중에 대한 사랑에 뿌리를 둔 민중적 성격의 문학이라고 해서, 그의 작품들이 한갓 통속적 흥미나 저급한 희극성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김유정의 소설들은 흔히 인물들의 어리석음이나 무지함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일면에서 그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가난하고 비참한 실제 삶과 이어져 진한 슬픔을 배어나게 하는, 말하자면 해학과 비애를 동반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영향받음

소년 시절 김유정은 바이런 시집을 늘 갖고 다녔다. 자신의 조카에게는 《죄와 벌》, 〈가난한 사람들〉, 〈귀여운 여인〉, 〈외투〉같은 러시아 작가의 작품들과 《마리아와 광대》, 《홍당무》, 《아Q정전》같은 작품을 권했다.

작가가 된 김유정은 독서설문조사에서 감명깊게 읽은 작품으로 《홍길동전》과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들었다. 《홍길동전》은 인류 사회에 큰 역할을 가져오기에 예술적 가치를 가진 작품이지만, 에밀 졸라의 《나나》는 독자를 졸게 하고 《율리시스》는 하품을 하게 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구인회 회원인 조용만에 의하면 김유정은 이광수이효석 뿐만 아니라 로렌스, 맨스필드의 작품을 좋아했다. 또한 같은 구인회 회원인 이태준에 대해서는 어떤 경쟁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그 외에도 김유정은 니체의 초인설, 맬서스의 《인구론》,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같은 사회과학 서적들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독서는 광범위한 부분에 걸쳐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그의 작품 창작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김유정 문학촌

김유정문학촌은 소설가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지어 2002년 8월 6일에 설립한 문학관으로 춘천시가 2002년 8월 일반시민들에게 김유정의 삶과 문학을 조금 더 가까이 소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가족 관계

아버지 : 김춘식(金春植, 1874년[8] ~ 1915년), 자는 윤주(允周), 1894년 식년시 진사시 급제[9], 예식부주사[10], 궁내부의관 역임[11]

어머니 : 청송 심씨(靑松沈氏, 1870년 ~ 1915년)[12]

형 : 김유근

누이 : 김유영


 


인간 관계

 안회남(安懷南) : 휘문고보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다.


이석훈(李石薰) :안회남의 소개로 알게 된 친구였다. 김유정이 사직동의 매형 집에서 살 때 앞뒷집에서 살면서 유정의 성격이나 가정환경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김유정을 자신이 나가는 방송국에 출연시키는 등 김유정의 생활을 돕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써주었으며, 소설가 이상을 소개시켜 준 사람이다.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다.


이상(李箱) : 소설가이자 시인. 김유정에게 같이 동반자살하자고 권유하였으나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하였다.[13] 1937년 3월 29일 김유정이 이상보다 한 달 먼저 병으로 사망하였다.


현덕(玄德) : 동화작가. 김유정이 창신동, 신당동, 효제동으로 셋방살이를 전전할 때, 악화되는 병을 고치고 술도 끊게 해줄 생각으로 정릉 골짜기의 어느 암자에 있을 때부터 그를 찾아와 위로해 주었던 문우였으며, 김유정이 병이 악화되어 서울을 떠나 경기도 광주로 갈 때도 차부까지 전송해 주었고 김유정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안회남에게 알려준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김유정이 생전에 집필하던 〈두포전〉을 다 마치지 못하고 숨을 거둔 뒤, 미완으로 끝난 〈두포전〉의 뒷부분을 완성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사진 윗부분의 인물이 김유정이다. 오른쪽 아래는 친구인 이상










출처: 김유정 (소설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생애 상세 정보  


본관은 조선 시대의 명문 양반 가문 중 하나인 청풍 김씨. 아버지는 김춘식(金春植, 1874 ~ ?)이며 어머니는 청송 심씨로 8남매 중 일곱째이자 2남 6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0대조가 대동법 실시에 크게 공헌한 명재상 김육이고 9대조는 현종의 비 명성왕후의 아버지이자 숙종의 외할아버지인 청풍부원군 김우명이다. 거기에서 계보는 김우명의 넷째 손자 도택(道澤)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고향에서는 꽤 명망 있고 부유한 지주였다.[9] 하지만 신분이 낮은 소작인들에게까지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이러한 집안의 후원으로 그는 재동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차례로 입학하는 등 현대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10살도 되기 전 유년기에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누나들은 죄다 시집을 간 상태에서 홀로 남겨져 눈칫밥을 먹고 지내다 보니 여성에 대한 집착도 강했고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자라났다. 게다가 애정결핍의 후유증으로 인해 말을 더듬는 증세를 보였는데 이는 휘문고보 2학년에 눌언 교정소에서 겨우 교정받을 수 있었다. 말년의 병약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휘문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운동장에서 투포환을 가슴에 맞고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으며 야구 · 축구 · 스케이팅 · 권투 · 유도 등의 스포츠와 소설 읽기, 영화 감상, 바이올린 연주, 하모니카 연주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늑막염에 걸린 채로 후술할 박녹주와의 일을 겪은 후 실연의 아픔을 처절하게 맛본 그는 방 안에 틀여박혀 폐인 생활을 하다가 지병인 늑막염이 악화되고 치질까지 걸려 1930년 여름에 형 김유근이 있는 고향 춘천의 실레 마을로 내려간다. 낙향의 원래 목적은 집안의 남은 재산까지 탕진하고 있는 형 유근을 상대로 재산 분배 소송을 내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춘천으로 내려간 그는 들병이[12]들과 어울리며 술에 빠져 살았다고 하는데 박녹주에 대한 미련이 여기저기 집시처럼 떠돌며 술을 파는 들병이로 옮겨진 것이다. 들병이가 등장하는 작품 『솥』, 『산골 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등은 거의 실화에 가깝다는 것이 뒷날 확인되었다. 이후 매형 정씨의 주선으로 병도 휴양할 겸 충청도의 어느 광업소 현장감독으로 내려닸지만 이곳에서조차 광부들과 어울려 매일 술만 먹다가[13] 결국 건강만 더 악화된 채 서너 달 만에 고향 실레마을로 돌아왔는데 광산에서의 경험은 훗날 그의 소설 『금 따는 콩밭』, 『노다지』, 『금』 등의 모티브가 되었다. [14]

이후 그는 실레마을의 낙후된 환경을 목격하고 1931년 야학당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설립해 교사가 되어 주민들을 가르치기 시작햤다. 인근부락 청년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자기 또래 젊은이가 농민회니 부녀회니 만들어 놓고 꺼덕이는 꼴이 아니꼬워 그에게 걸핏하면 시비를 걸었고 결국 유정은 고향 마을에서 가끔 싸움판을 벌였다. 그는 싸움만 붙으면 야학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했는데[15] 증리에 살던 당시의 제자들에 의하면 그는 싸움만 붙으면 몹시 날래게 움직여 수십 명을 상대해 쫓아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얼마 못 가서 야학이 강제로 해체되고[16] 유산을 상속받은 맏형 김유근이 방탕한 생활로 자산을 다 날려먹었기 때문에 경성과 춘천의 집을 팔 지경에 이르렀을 정도로 집안이 기운다. 이에 그는 1933년부터 경기도 광주[17]에 있던 큰누나에게 얹혀살게 되었지만 이미 치질의 고통에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되어 항상 누워 있는 신세였다. 게다가 누나 집도 가난했고 공장 노동자들에게 밥을 팔며 살던 누나는 기둥서방 남편 정 씨[18]와의 심한 불화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병으로 누워 있는 동생에게 "내가 고생해서 벌어 온 돈이 아깝다. 네 놈은 돈은 못 벌어 오고 집에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냐! 취직이라도 좀 해라."라고 잔소리를 하며 풀었다. 물론 그의 체력과 건강을 보면 이것은 불가능했다. 하도 큰누나의 잔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김유정은 결국, "정 그렇다면 일본에 가서 막일이라도 하며 살겠다."고 하자 큰누나는 그가 험한 일을 하다가 그나마도 좋지 않은 건강이 더 악화되는 것이 염려되어 김유정에게 사과하였고 둘은 화해했다. 그러나 그는 매형이 싫었기 때문에 거처를 큰누나 집에서 다섯째 누나 집으로 옮겼으며 이외에도 옷차림이 남루하다고 병원에서 간호사들에게 무시당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쭉 안타깝게 지켜보던 절친한 친구인 소설가 안회남[19]은 그에게 "차라리 밖에 나가서 소설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니?"라고 제안하였고 그는 비로소 1934년 본격적으로 문학에 대한 열정을 품고 구인회에 가입했다. 그 결과 1935년 1월 소설 소낙비 등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등단한 지 2년 만인 1937년 3월 29일에 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29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이 2년 동안 그는 그야말로 목숨을 불태운 집필 활동을 했는데, 단편작들을 모두 이때 집필한 것은 물론 결국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장편도 하나 만들었고 심지어 번역본까지 한 권 만들었다. 이렇게 그가 2년 동안 남긴 작품은 무려 30여 편이나 된다. 그의 열정이나 문학적 재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장례는 그의 형제, 조카들, 친구 안회남에 의해 화장으로 치러져 한강에 유골이 뿌려졌다.

죽기 전인 1937년 3월 18일에 친구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는 그가 치질과 가난에 얼마나 시달렸는지를 말해주며 처절함 그 자체다.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ㅡ 중략 ㅡ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박녹주를 향한 집착


박녹주



김유정은 생전 늘 어머니의 사진을 품에 지니고 다닐 정도로 유년기의 상처로 인한 애정결핍이 심했고 연상의 여성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과 집착 증세가 있어 유독 연상인 여성에게 집착했다.


특히 연희전문학교 에 재학하던 시절 소리계에서 유명한 박녹주 명창에 대한 스토킹 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황당하게도 이게 그의 생애를 다룬 글에서 간혹 '짝사랑'으로 미화되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상 까놓고 말해 스토킹이다. 어느날 우연히 김유정은 목욕을 마치고 목욕탕 문 앞에 서 있던 박녹주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1928년 봄 조선극장에서 열린 8도 모창대회에 박녹주 명창이 출연한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대회가 끝난 후 수소문하여 그녀의 대기실에 찾아갔다고 한다. 박녹주와 대화를 나눈 후 김유정은 본격적으로 박녹주를 연모하게 되어 편지를 보내 정식으로 그녀에게 고백했고 이미 1920년에 원산시의 부호 남백우와 살림을 차렸던 박녹주는 그의 편지를 찢어 버렸으나 "그래도 한 번 정도 만나보는 게 어떠냐"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김유정을 집으로 불렀다.


박녹주는 김유정에게 "나는 이미 남편이 있는 몸이니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라고 점잖게 타일렀지만 김유정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면서 막무가내였다. 게다가 오히려 이때의 일로 그녀의 동생 태술과 친해진 김유정은 그를 통해 본격적으로 각종 선물이나 레코드판에서 뜯어낸 박녹주의 사진 밑에 ‘당신을 연모합니다. 저의 사랑을 받아주옵소서’라고 적힌 편지 등을 박녹주에게 보내기 시작한다. 주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김유정은 이미 늑막염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박녹주는 그가 이러한 편지들을 보내는 족족 갖다 버렸다.


그러자 김유정은  "당신이 무슨 상감이나 된 듯이 그렇게 고고한 척하는 거요. 보료 위에 앉아서 나를 마치 어린애 취급하듯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당신이 사랑을 버린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아시오" 라는 협박편지를 필두로, 집착과 망상도 점점 심해져 처음에는 박녹주를 "선생"이라고 하더니 "당신"이라고 변했고 나중에는 "너"라고 자기 부인을 칭하듯이 불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은 박녹주가 외출을 나갔다가 인력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김유정이 하얀 몽둥이를 들고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는 "녹주야 내려라. 내 오늘은 너를 해치지 않으마"라며 말했고 녹주는 떨면서 인력거에서 내렸는데 그녀에게 유정이 대뜸 "네가 내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내가 돈이 없는 학생이라 그런 것이지?" 하고 말했다고 한다. 박녹주는 무슨 미친 사람이 버릇없이 말하는 질문에 당황하는 한편 잘못 말하면 자신이 돈에 집착하는 천한 여자로 여겨질 것 같아서 "저는 나이도 돈도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당신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 것도 제 잘못이란 말입니까?"라며 한 소리 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유정은 도망갔으며 다음날 박녹주의 집 앞에서 김유정이 대성통곡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이후 김유정의 짝사랑은 점점 심해졌고 박녹주는 외출도 거의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나중엔 혈서까지 보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두 사람의 스캔들은 경성 전국에 퍼졌고 결국 참다못한 박녹주는 1929년 여름 김유정을 다시 한 번 집으로 불러서 "무슨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편지질이오? 학생과 기생이 무슨 연애를 하자는 말이요? 학생이 이러면 나도 가슴이 아프오. 공부를 끝내면 다시 나를 찾아 주시오."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김유정은 "학생과 소리 하는 사람이 사랑해서 안된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냐"라고 막무가내로 대들며 "도대체 네가 사람이냐" 라고 외쳤다고 한다. 박녹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김유정은 죽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박녹주에게 "너무 큰 소리를 쳐서 미안해"라면서 사과를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30분을 있다가 헤어졌고 그날 이후 비로소 김유정의 일종의 스토킹을 멈췄다고 한다.

1931년 5월 2일자 매일신보에 박녹주가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스트레스 및 조선극장 지배인이었던 신 모 씨와의 애정문제로 자살 소동을 벌였다는 소식이 대서특필되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1년 전에 중퇴한 김유정이 다짜고짜 박녹주가 입원 중인 병원을 찾아가서 “진짜 죽은 줄 알았어요. 만약 당신이 죽으면 저도 같이 따라갈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병실에 있던 박녹주는 "괜한 기대 말고 돌아가라."라면서 소리쳤고 그것이 박녹주와 김유정의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한다. 직후 박녹주는 순천의 거부인 김종익과 결혼했다. 박녹주는 결혼 이전부터 김종익과 교류했으며 김종익은 이 인연으로 국악계에도 지원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김유정은 삶을 다할 때까지도 박녹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은데 29세의 나이로 요절했을 때 그의 방 안에는 '녹주, 너를 연모한다'라는 혈서가 벽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장례식을 치른 안회남이 술에 만취한 채로 박녹주의 집에 나타나서 "당신이 박녹주요? 친구는 당신이 죽인 거요. 죽을 때까지 당신을 잊지 못하고 갔소!"라며 원망했다고 한다.

김유정에게 이골이 날 정도로 시달렸던 박녹주는 훗날 회고록에서 "김유정에게 너무 박절하게 대한 벌을 뒤늦게 받아 내가 평생 슬하에 자식 없이 살았나 보오. 그가 그토록 훌륭한 소설가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손이라도 한 번 잡게 해 줄 것을."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박녹주는 특별히 그에게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





이외에도 김유정은 1936년, 잡지 「여성」(1936년 5월)에 <그 분들의 결혼 플랜, 어떠한 남편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라는 공동 제목으로 시인 박용철의 여동생 박봉자와 자신의 글이 나란히 실렸다는 이유로 얼굴도 모르는 박봉자에게 우발적으로 30통의 연애편지를 쓰기도 했다. 물론 김유정이 병약한 데다 평상시 이 여자 저 여자에게 들러붙는 행각을 여러 번 보인 것을 알고 있었고 여동생을 아꼈던 박용철 본인이 그의 행동을 좋게 보지 않아 중간에 편지를 읽고 커트해서 성과는 없었다. 박봉자는 같은 해 김유정 자신도 알고 지낸 사이였던 문학 평론가 김환태와 결혼했으며 김유정은 두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박봉자 여사가 1970년대에 들어 회고하길 "아무리 내가 그 당시 신여성이었더라도 김유정이 보낸 뜨거운 구애의 편지는 지금 시대여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을 정도의 내용이었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이 일화는 뮤지컬 팬레터의 모티브가 된다.




주요 작품 각주

유명한 작품으로는 〈금 따는 콩밭〉, 〈봄·봄〉, 〈동백꽃〉, 〈만무방〉, 〈소낙비〉 등이 있다. 대체적으로 작품에 해학적 요소가 많고 영서 방언과 아름다운 순 한국어 단어를 잘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글이 상당히 재밌다. 봄봄의 장인과 나의 고자되기뿐 아니라 만무방, 금따는 콩밭, 동백꽃 등도 실감나는 서술로 읽는 맛이 좋다. 동백꽃에서 점순이가 말한 "느그 아버지가 고자라지?" 등.

이는 앞서 서술된 박녹주의 영향으로 보인다. 생전 그는 박녹주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였던 흥보가춘향가의 대사를 외울 정도로 즐겨 들었다고 한다. 그의 단편작 속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며 배경도 대부분 그의 고향 실레마을이다.

짧은 기간 동안 창작열을 불태운 탓에 거의 모든 단편 작품이 한 권의 단편집으로 집약되어 있다. 1938년 출간된 <동백꽃>에는 표제작을 비롯하여 <봄·봄>, <만무방>, <금 따는 콩밭> 등 그의 대표작이 모두 실려 있다. 2007년에는 그의 모든 소설과 수필, 편지, 일기와 번역한 소설을 모두 담은 <김유정 전집>이 발간되기도 했다. 다만 현대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가독성은 약간 떨어진다. 그의 모든 소설이 담겨 있고 심지어 미발표 원고도 들어 있다. 총 31편.

적잖은 사람들이 일제의 지배 하에 놓여있는 암울하기 그지없는 조선의 현실을 외면하고 연애소설이나 썼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가 일제강점기 농촌의 현실을 외면했다는 비판은 해학 속의 비참함이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다루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쓴 소설들을 읽어보면 농촌사회의 암울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만무방〉에선 수탈을 막기 위해서 제 논의 벼를 떳떳이 거두지 못하고 몰래 훔쳐 거둬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 나온다. 처음엔 그리 비극적으로 와닿지 않으나 한 번 더 생각하고나면 소설 속의 상황이 얼마나 암울한지 눈치채게 된다.소낙비〉에서는 이 해학 속 비극이 더욱 두드러진다. 남편이 도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에게 매음을 종용하여 동네 유지에게 보내는 줄거리가 해학적이고 향토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그 중심에는 생존을 위해 윤리마저 버린 일제강점기 농촌의 비참한 현실이 깔려 있다.

오히려 〈동백꽃〉이나 <봄·봄>이 유명하거나 교과서에 실릴 수 있었던 이유도 다른 작품들보다 덜 암울하고 덜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단편들에서는 가난 때문에 매춘을 하거나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타난다. 〈금 따는 콩밭〉만 해도 해학적이지만 상황은 정말로 허탈할 정도로 망한 상황에 친구며 부부끼리 치고 박고 싸우며 위에서 언급된 만무방이나 소낙비 같은 부류는 아예 등장인물이 도둑질, 매춘을 권하는 내용이 있다. 〈산골 나그네〉는 술집 작부까지 하다가 혼인 혼수를 들고 본남편과 도망가는 이야기고[〈따라지〉나 〈땡볕〉 같은 작품은 아예 작품의 설정부터가 눈물이 앞을 가린다. 〈따라지〉는 셋방살이하는 인간 군상들과 주인집과의 기싸움을 그리고 있고〈땡볕〉은 남편이 병든 아내를 지게에 짊어지고 병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그나마 밝다고 꼽히는 〈동백꽃〉과 〈봄·봄〉도 엄밀히 말하면 지주의 횡포와 착취에도 저항할 수 없는 계층의 상황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더 슬픈 사실은 여기서 소작농이 마름을 대하는, 즉 갑이 을을 대하는 태도가 현대인들에게도 쉽게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마저도 '주인집 딸이라서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설명에 별다른 의문 없이 수긍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해학적이고 풍자적일 뿐 이야기의 시작점에는 당시 농촌~도시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과 현실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담

은근히 모에 계통에서는 시대를 앞서간 작가 중 하나다. 단편소설인〈동백꽃〉의 등장인물 점순이만 봐도 츤데레를 포함해 은근 많은 모에요소를 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런 시대를 앞서간 모에요소나 개그신을 넣은 것 외에도 전술했듯이 해학 뒤에 있는 비참한 시대상을 작품 안에 담아내면서 은연중에 보여주는 표현기법도 매우 훌륭한 작가다.

작품의 주 배경이 되는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 김유정문학촌이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 외에도 소소한 재밋거리들이 많고 잘 짜인 행사도 자주 하고 있으니 근방에 갈 일이 있다면 한 번쯤 둘러보는 것도 좋다. 여담으로 촌장은 유명한 소설가 이순원이다.

김유정문학촌에서 5분만 걸어가면 그의 이름을 딴 경춘선 김유정역이 나온다. 원래의 이름은 신남역이었으나, 마을 주변이 김유정 관련 관광지로 조성되다 보니 그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역명까지 바꿔 단 케이스다.인물 이름을 역 이름으로 사용한 한국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2010년 12월 21일 경춘선 복선 전철 개통과 함께 바로 옆에 새로 지은 한옥 스타일의 역사로 옮겼다.

2017년 6월 1일 지식채널e에서 그에 대해 다루었는데 제목은 '약골 청년의 마지막 봄'이다. 2018년부터 일부 인터넷몰과 여러 대형서점에서는 한국과 외국의 여러 유명 작가 · 작품의 이름을 따 온 향수들을 판매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그의 이름을 딴 향수도 있다. 참고 달달한 꽃향기가 난다. 상품명이 김유정 - 봄봄인데 아마 봄봄의 분위기를 담기 위해 향수의 향을 봄 느낌이 나는 달달한 꽃향기로 설정한 듯하다.










출처: 김유정(소설가) - 나무위키 (namu.wiki)




동백꽃 [ 冬柏─ ]




정의


김유정(金裕貞)이 지은 단편소설.



개설


1936년 5월 『조광(朝光)』에 발표되었고, 그 뒤 1938년 간행된 단편집 『동백꽃』에 수록되었다. 향토색 짙은 농촌의 배경 속에서 인생의 봄을 맞이하여 성장하여가는 충동적인 사춘기 소년 · 소녀의 애정을 해학적으로 그린 김유정의 대표작이다.



내용


작품의 주인공이면서 서술자인 ‘나’는 순박하다 못하여 어수룩한 소년이다. 이에 비하여 점순은 활달하고 말괄량이 같은 소녀로서, 소년의 아버지가 소작을 든 마름의 딸이다.


소년에게 관심을 둔 점순은 구운 감자를 주면서 접근하지만,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소년은 그것을 거절한다. 무안당한 점순은 드디어 자기 집 수탉과 소년의 집 수탉을 싸움 붙이면서 여러 차례 약을 올린다. 점순네 닭이 힘이 세어 소년의 집 닭이 늘 지게 되자, 화가 난 소년은 닭에게 고추장까지 먹이지만 별 효과가 없다.


어느 날 점순은 호드기를 불며 닭싸움을 붙이고 소년이 산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화가 난 소년이 작대기로 점순네 닭을 때려 죽였으나, 마름집 위세를 생각하고 당황하여 울게 된다. 이 때 점순은 소년에게 자기 말을 들으면 일러바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둘은 부둥켜안은 채 한창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린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인물들이 약간 모자라는 듯한 소년소녀층으로 제시되어 있고, 인물들의 행동양식 · 어법 · 문체 등이 해학적이고 골계적인 점에서 김유정 문학의 일반적인 특색을 잘 드러내고 있다.


여러 번의 닭싸움을 거쳐 두 사람의 점진적인 화해 관계 및 심리적인 대립 과정을 서정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는 점에서, 김유정의 다른 작품에 비하여 비극적 요소가 내재하지 않은 희극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골계미는 우리 문학의 전통적 맥락에서 볼 때 중세와 근세로 이어지는 평민문학의 미적 특질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삶의 실제적 문제를 객관화하여 다루었다는 점에서 사실주의 문학의 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작품도 김유정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처럼 바보들의 이야기를 웃음거리로 다루었다는 부정적인 평가와, 계층의 어긋남을 객관적으로 문제 삼은 웃음의 문학이라는 긍정적 평가로 나누어진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동백꽃 [冬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최학림의 예술과 사랑] ⑦ 박녹주

(2014.02.22.)





박녹주(1904~1979·사진)는 동편제 명창으로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였다. 그녀가 1973년 '문학사상' 4월호에 '잠자는 나의 가슴에 장미 한 송이가 꽂힐 줄이랴'로 시작하는 회고의 글을 썼다. 그 글의 제목은 '녹주, 내 너를 사랑한다'. 이 강렬한 제목은 '동백꽃' '봄봄'의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이 박녹주에게 혈서로 보낸 바로 그 문장이다.



1926년 가을, 휘문고 3년생 김유정은 공중목욕탕에서 비누와 수건을 들고 나오는 박녹주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린다. 당시 박녹주는 서울 종로의 명월관 기생으로 있을 때였다. 김유정은 3년여 '녹주, 당신을 연모합니다'라는 연서를 쓰면서 명월관과 집으로 녹주를 쫓아다녔다. 어느 날 남동생이 녹주에게 말했다. "누나, 불쌍해서 죽겠어요. 찾아와서 늘 울고 갑니다. 엉엉 울고 있어요. 불쌍해서 못 보겠어요."



동편제 명창으로 소설가의 첫사랑
'봄봄'의 김유정이 3년여 쫓아다녀



2남 6녀 중 일곱째 차남으로 태어난 유정은 6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책상 위에 어머니 사진을 놓고 유년기를 보낸 유정은 휘문고 시절 친구 안회남(소설가)에게 그 사진을 보이며 "내 어머니는 미인이다"라고 자랑했다. 모성에 대한 유정의 갈망이 지독한 짝사랑으로 드러난 것이었을 테다. 박녹주의 회고에 따르면 1930년 봄 "내게 영감이 있다"고 설득하며 마지막 헤어지던 날, 유정은 울먹이며 길거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고 한다.



고향 춘천으로 낙향한 유정은 병적인 첫사랑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봄이면 노랗게 피는 동백꽃(생강나무 꽃)의 향에 젖었다. 그게 단편 '동백꽃'으로 태어난다. 사랑에 대한 몰입만큼이나 그의 글쓰기는 불처럼 타올랐다. 29세의 짧은 생을 살면서 천재라 이름하는 30편의 수려한 단편을 남겼다. 녹주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 경험은 단편 '두꺼비' '생의 반려'에 담았다. '첫사랑이 무언지 무던히 후려맞은 몸이라.' 폐결핵과 치질에 시달리며 그의 생명이 꺼져갈 때 친구 안회남에게 쓴 편지는 애달프다.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 십여 마리를 먹어 보겠다.' 닭도, 살모사 구렁이도 먹지 못하고 유정은 죽었다. 박녹주는 회고했다. "김유정에게 너무 박절하게 대하여 내가 평생 슬하에 자식 없이 살았나 보오. 손이라도 한 번 잡게 해 줄 것을…."








출처: [최학림의 예술과 사랑] ⑦ 박녹주 (naver.com)











*관련 영상 : 청년 빈곤, 스튜턴트 푸어





https://youtu.be/UcvP9CmcQI0?si=8rQuX8gWxa3F0JG3



https://youtu.be/dalm_1jptKA?si=u8BjQIVC4PIWN0eQ





https://youtu.be/j9b0kRKNj5g?si=4R6_cO5MOABT6t8F


https://youtu.be/YMNHW_c6wIk?si=Ad1KmaQCi7fIFUg3


https://youtu.be/f_AZQvPkkhc?si=Vfi84j0KpY8jbcSe







지난주 서두글  주제였던 '기후위기' 관련 유용한 앱 소개드립니다.



https://brunch.co.kr/@mobiinside/5958








@잠깐! 보석 같은 작가님들 소개합니다@

브런치에 새로 오셨거나 좀 더 많은 작가님들과 소통을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본글 댓글에 직간접적으로 메모를 남겨주시면, 다음 연재글에 본 코너에서 소개해 드릴게요. 여러 번, 반복 소개도 가능합니다. 쑥스러워하지 마시고요. <브런치 보석 작가님들 소개>는 매주 1회씩  발행됩니다. (작가님들 소개 정보는 3주마다 업데이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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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테비 (연구자) 생명과학 실험실 연구원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직장 이야기 다음으로 취미 생활을 적으려고 합니다. [연재 브런치북] 월요일이니까 딴생각 말고 운동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이 책을 읽고있습니다만 , [연재 브런치북] 사물에 관한 짧은 글-답장

장익 (출간작가) 52세지만 예술대학 22학번입니다^^;아날로그 라떼가 메타버스 mz 동기들과 대학에서 좌충우돌 공부하고 소통하는 경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브런치 단상 매거진 (brunch.co.kr) , 50대 라떼의 미대일기 매거진 , 중년 부부 카페 방문기 매거진

Kimplay (에세이스트) 후각 충전 에세이 <콧구멍워밍업> 저자 내가 겪은 낯선 일들과 계속 머물고 싶은 평온한 일상을 씁니다. [브런치북] 유산 후 조리원은 없나요? (brunch.co.kr) , 해봐 해보자 매거진 , [연재 브런치북] 틈틈이 낭만

Joanne (변호사) 캐나다 주정부 변호사로 근무하며, 책과 영화에 대한 사랑을 심어 주신 영혼의 단짝, 번역가이자 작가이신 엄마와 함께 같은 영화를 다른 시각으로 분석하는 영화평을 올리고 있습니다. 주먹이 운다: 주먹들이 웃다 (brunch.co.kr) ,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다시 본 4편의 영화들 , 동주: ‘수치’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ok란 옥란의 브런치입니다. 행복을 꿈꾸는 당신에게. 인생의 도전기에 나선 육십대 주부의 삶의 진솔한 이야기. 심리상담치유 저문과정 박사원 수료. 프리지어와 나 (brunch.co.kr) ,  가족 나들이 ,  첫사랑

성희 (고흥귀촌작가 에세이스트) 귀촌생활 차박여행 도보작가 [브런치북] 나의 귀촌 이야기 고흥에 머물다 (brunch.co.kr) , 꽃 속에 머물다 매거진 , 고흥을 걷다 매거진

마음가는대로 "마음가는대로" 인생 3단계를 살고 싶은 초보 중년입니다. 세상에 신기한 것이 이렇게 많은 줄 미리 알았더라면,, • 고위 공직자의 바른 자세와 책임 • 국외 출장 이야기 (대만, 태국, 하와이, 캐나다) 다시 가고픈 캐나다 빅토리아 시티에 대한 추억 (I) (brunch.co.kr) , 첫 출장 요리 I (준비 ; 행복의 맛을 찾아) , 첫 김장 속으로, “색다른 맛과 행복”의 다른 표현!

사진 찍는 미미 (포토그래퍼) 사진이 주는 행복을 가르치고 있고, 전시 작업도 하는 사진작가. 60대 할머니. 손주들이 부르는 이름은 미미. 사진 찍는 미미입니다. [브런치북] 옛 기억은 슬픈 미소를 짓게 한다 (brunch.co.kr) , [브런치북] 사진 찍는 미미의 특별한 휴가 , 21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SIM (교사) -학교는 작은 사회다. 사회에 있는 것 다 있다.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어른들의 모습을 적는다. Opinion 매거진 (brunch.co.kr) , 일기 입문론 매거진 , [브런치북] 단편집 분노. 자발떤날.윤수할머니

검은머리앤 (크리에이터) 변화를 두려워 했던 제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하면서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저의 성장 이야기는 수영 배우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 [연재 브런치북] 나는도전하는중입니다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제주도짠순이마씸 , 21화 아침 반 수영시간이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펑예 (매니저) 육아노동자의 평일 단상. 화요일 발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롤로그 (brunch.co.kr) , 때때로 가출하자 , 슬기로운 초등 생활이란

말랑한 마시멜로우 (주부) 추억을 먹고 사는 말랑말랑한 50대 k-아줌마 입니다. 글쓰기를 배워본 적은 없지만 60이 되기전에 내 기억 속의 과거를 더듬어 본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도전하는 관종아줌마이지요. 첫 , 번째 이야기(80년대, 대기업에서 살아남기) (brunch.co.kr) , 나의 첫 번째 집(01)

버섯돌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여러 작가 및 독자분들과 글을 공유하며 밝은 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 진로와 적성 탐색 : 아이엠컨설팅 방문기 (brunch.co.kr) , 인생의 변화를 맞은 지 1년(被審査作), 브런치 작가 심사 통과

구슬붕이 (교사) 조은현의 브런치입니다. 사진 속 꽃이름이 구슬붕이입니다. 아이들을 통해 희망을 보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는지 초등 급식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연재 브런치북] 초등학교 점심시간 들여다보기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일상 다반사 , 04화 끝없는 망상

박기련 무소주부 (좋은땅출판사 크리에이터) 행복한 결혼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이다. 우리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 결혼은 사랑의 결말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브런치북] 남자들을 위한 부부생활 참고서 1 (brunch.co.kr) ,  무자식 소식러 주당 부부이야기2 매거진 , 무자식 소식러 주당 부부이야기 매거진

곽기영 퇴직을 앞두고 있는 회사원입니다. 그동안 미뤄뒀던 글쓰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삶에서 발견하는 생각들 매거진 (brunch.co.kr) , 37. 편안한 사람이 좋다 , 36. 나무새

빛나는 윤별경 (회사원) 반짝반짝 빛나는 삶의 향기로 살고 싶습니다! [연재 브런치북] 결혼 2회 차입니다! , [브런치북] 시골에 살고있어요.  , [브런치북] 50년지기친구인 엄마를 떠나보내다

정이음 (작가지망생) 세상은 괴롭고, 외롭고, 황량하지만, 그러나 또한 아름답습니다. 언제까지나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남고 싶습니다. 곱씹기 나를 깊이 매거진 (brunch.co.kr) , 사라지는 것들의 깊이 매거진 , 인물 매거진

기기도설 (컨설턴트) 技器圖說입니다.사람과의 관계를 음식으로 기억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술과 요리,입시상담을 해왔고, 음식 속에 담긴 사람살이를 글로 쓸 때 가장 재미지고, 눈이 반짝입니다. [연재 브런치북] 다정한 음식남녀의 연애소설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대파와 양파의 힘 , [연재 브런치북] 재수생을 대하는 태도

무늬 Moon (출간작가) 이제, 삶의 무늬를 만들고 싶은 무늬 Moon의 브런치 스토리입니다. [연재 브런치북] 진짜 불혹이 되고 싶어 브런치!

관돌 (공공기관 회사원) 가족들과 지내오면서 일어난 소소한 일상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어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며 따뜻한 감성을 나누고 싶습니다. [연재 브런치북] 영애씨! 고향이 어디신가요?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분양권 당첨! 영끌족 세상속으로! , 연어의 꿈 매거진

김 미 선 (에세이스트) 인생이란 무대에서 열연했던 한 여자의 조선시대 아닌 조선스러움의 내면 엿보기. 아줌마 아저씨 탐구하기 매거진 (brunch.co.kr) , 조선남자 엿보기 매거진 , 인생 그게 뭐라니 매거진

Bono (에세이스트) Counting Stars, 원 리퍼블릭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세상을 기록 중인 살짝 모난 돌. [연재 브런치북] 책을 읽어 드립니다 , [브런치북] Streaming Life , [브런치북] 곰곰하는 중입니다

글임자 이야기 할머니 아님 주의! 13년 만에 7급으로 공무원 퇴직후 직장은 없지만, 스케줄은 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그러려니 합니다, 이젠. 나의 기쁨 나의 번뇌 매거진 (brunch.co.kr) , [브런치북] 아빠는 하지 않은 말 그리고 너 , 미운 네 살 x 10 매거진

단풍국 블리야 (공무원) 11년 경력 컨벤션기획사ㅣ3번의 정부 표창ㅣ캐나다 BC주 공무원ㅣ글쓰기를 꿈꿔왔던 단풍국 블리야의 브런치입니다. [연재 브런치북] 나는 자랑스러운 컨벤션기획사 (brunch.co.kr) , 단풍국 신입시민의 일상 매거진 , 스폰서가 필요해 매거 , 진

글 쓰는 연금술사 (크리에이터)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비밀을 찾고 싶었던 중세 연금술사처럼, 단어와 문장을 작품으로 만드는 비밀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나고있습니다. [연재 브런치북] 사진엽서 한장 -네팔에서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내 아내는 월남댁 , [연재 브런치북] 사진엽서 한장-베트남에서

Yoon (그림책빛솔 에세이스트) 글 쓰는 그림책운반자입니다. 일상과 직업에서 느낀 감정과 나에 대한 많은 생각들, 부끄럽지만 조심스럽게 꺼내봅니다. [연재 브런치북] 쫄보지만 그럭저럭 살고 있습니다 (brunch.co.kr) , 01화 우울한 사람들 , 04화 무탄고지

너나들이 작가님 (에세이스트)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씁니다. 내가 사는 삶이 행복해지도록 삶과 글에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연재 브런치북] 슬기로운 휴직생활 (brunch.co.kr) , 갑분글감으로 쓰기 매거진 , [연재 브런치북] 행복이 별건가요.

시sy (출간작가) 방송기자, 철학 전공 Ph.D, 2021년 등단. a Pill 매거진 (brunch.co.kr) , 철학 커뮤니케이터 매거진 , [연재 브런치북] 쓰다 만 소설 그리고 거짓말

윤영 (에세이스트) 마음이 머무는 곳. 우리들의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인간탐구 매거진 (brunch.co.kr) , 제멋대로지만 마음 가는 아 글 시 매거진 , 웃기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매거진

박정옥 (출간작가) 박정옥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잊혀져가는 우리의 생활 풍습들. 누구나 그리워하던 유년의 기억들. 세상을 마주보는 따뜻한 이야기들을 엮어내고싶은 수필가입니다. [브런치북] 그리운 것은 이유가 있다 (brunch.co.kr) , 축하해 주세요. , 때늦은 덕질

도윤 (프리랜서) 자녀를 출가시키고 세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여 일상을 공유합니다. 또 다른 맏이와 마주침 (brunch.co.kr) (미운털이 배기기 시작) , 또 다른 맏이와 마주침 (다 중국 것이라는데) , 또 다른 맏이와 마주침 (슬픔보다 더 거대한 감정)

민선미 (에세이스트) 민들레 홀씨처럼 세상의 만물을 보고, 듣고, 내 언어로 사유하여 나눕니다. 난임을 겪는 부부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으면 꼭 성공할 수 있다고 응원합니다. [브런치북]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brunch.co.kr) , 난임부부로 견뎌온 날들 매거진 , 문장 수집가 이야기 매거진

달하 (의사) 말기암환자를 돌보며 '죽음'과, 두 아이를 키우며 '생'과 가까이 삽니다. 사는 동안 모두가 자신만의 힘을 발견하길 소망합니다. 가까운 타인 매거진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없어요, 가슴뛰는 그런 일 , 일상력 매거진

아헤브 (회사원)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유산 남기는 생을 모토로 삽니다 아프리카, 미국,대만,중국,캐나다 일본,캄보디아,태국을 여행하였고 코딩,독서,자연여행 그림 신앙에 집중합니다 Jesu Juva [연재 브런치북] 아빠 나는 장애인이에요?(브런치북) , 01화 아빠 나는 장애인이에요?(1화) 03화 3화_소아병동 (3화)





아래는 최근 6개 글에서 말씀 나눠주신 작가님들이세요.



조선여인 (에세이스트) 은퇴 2년 차로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에피소드를 글로 표현하고자 함. 인간미 담긴 글을 좋아해서 매일 두리번거리지만 제 나이는 잘 모르는 조선여인임. 조선여인의 브런치스토리

무무 (마케터)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날을 꿈꾸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 글을 씁니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 선택적 가난에 대해서… (brunch.co.kr) , 조건 없이 주는 사랑… 우리 깨때기 아줌마 , 남의 불행 위, 나의 행복… 샤덴프로이데

코리디언 (에세이스트) 캐나다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갑니다. 코리안+캐네디언=코리디언  불어로 살아남기 매거진 (brunch.co.kr) , My View Today 매거진 , 까막눈

종갓집   맏며느리와 개 같은 남편 (한국반려동물상담센터 교수) 이왕 사는 인생,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연재 브런치북] 개 같은 남편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결혼식 보다 결혼생활 , [연재 브런치북] 종가집 며느리의 생각 한 자락 

빙산 (IoM 번역가) “빙산의 아래 부분과 동전의 옆면“에 관심이 많은 외벌이 회사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만연한 오해를 따라다니며 진실(혹은 진심) 한 포기를 심어 놓으려 노력중입니다. NOTION TO MOTION 매거진 (brunch.co.kr)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위해 매거진 , [연재 브런치북] 오해수집가가 살펴본 동전의 옆면








교과서에 실린 작가 110명

*아래는 '가나다순'이고 선호도가 높은 작가님들을 우선순위로 소개해 드릴께요


강은교

고정희

공선옥

곽재구

기형도

길재

김광규

김광섭

김기택

김만중

김소월

김소진

김수영

김승옥

김시습

김영랑

김용택

7. 김유정

김종삼

김춘수

나태주

나희덕

류시화

문정희

문태준

3. 박경리

박두진

박목월

2. 박완서

박인로

박재삼

박지원

박태원

백무산

백석

생텍쥐페리  

서유미  

서정주

성삼문

성석제

송순

신경림

신동엽

신석정

신영복

심훈

안도현

양귀자

염상섭

오정희

유치진

유치환

1. 윤동주

윤선도

윤오영

윤흥길

이강백

이규보

이근삼

이문구

이상

이상화

이성부

이순원

이양하

이용악

이육사

이청준

이태준

이호철

이황

이효석

임철우

장석남

장영희

전광용

정몽주

5. 정약용

정지상

정지용

정철

정현종

정호승

4. 조세희

조지훈

주요섭

차범석

채만식

충담사

천양희

최인훈

최일남

최치원

프란츠 카프카

피천득

하근찬

한강

한용운

함민복

허균

헤르만 헤세

현덕

6. 현진건

홍석중

황동규

황석영

황순원

황인숙

황진이

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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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들님의 신청>

조정래

공지영

이해인

김훈






별첨 : 국립중앙도서관>자료검색>근대문학종합목록>작가/작품정보>근대문학연표 (nl.go.kr)



*사진, 그림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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