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를 개척한 소설가
환각(幻覺) : 감각 기관을 자극하는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마치 어떤 사물이 있는 것처럼 지각함. 또는 그런 지각. 환시(幻視), 환청(幻聽), 환후(幻嗅), 환미(幻味) 따위가 있다.
순탄했던 어린 시절
포동포동한 몸에 작은 키, 걸음걸이는 씨암탉 같았던 현진건은 살결이 희고 맑은 예쁘장한 미남이었다고 한다. 그는 1900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우체국장을 지내던 현경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비교적 유복한 편이었으며, 고향의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12세 되던 해인 1912년 일본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1917년 동경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1918년에는 독립운동을 하던 형을 찾아 상해로 가서 호강대학 독일어과에 입학하기도 한다.
이 시절 그는 독일어 수업을 받으며 독일의 문학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촌 형 현정건을 만나 항일 의지를 키우게 된다. 현정건의 모습은 그의 소설 <적도>에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영화 <밀정>에 나오는 연계순은 기생 출신인 의열단원 현계옥을 모델로 한 것인데 사촌 형 현정건의 연인이기도 하다.
실제 행동으로 애국 운동을 실천한 작가
1919년에 귀국한 현진건은 1920년 9월 《개벽》에 독일의 단편 <석북화>를 번역 발표하고, 같은 해 11월에 <희생화>를 창작 발표하였다. 현진건은 체호프의 작품을 좋아했고, 그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한국의 체호프’라는 격찬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단편 소설뿐 아니라 장편 소설과 수필도 썼는데, 특히 <백두산기행>은 당대의 명문으로 꼽힌다.
한편, 현진건은 언론에도 관심을 가져 1920년 《조선일보》에 들어갔다가 퇴사하고 최남선이 경영하던 잡지사 등을 거쳐 《동아일보》에서 근무하였다.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하던 1936년 8월 9일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1등을 하고, 남승룡이 3위를 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는 신문에 손기정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실었다.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을 당한다. 현진건은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과 관련된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되어 1년간 옥고를 치른 다음 언론계를 떠나게 된다.
사실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
1937년 《동아일보》를 사직한 현진건은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으며, 빈궁 속에서도 친일 문학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려고 양계 사업과 미두 사업을 벌였으나 모두 실패하고 곤궁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때까지 남긴 작품이 중 단편 20편과 장편 4편 그리고 번역 소설 8편이다. 빈곤에 시달리던 그는 1943년, 딸을 월탄 박종화의 아들과 결혼시키고 두 달 후인 1943년 음력 3월 21일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는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근대 문학 초기에 단편 소설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로 평가받았다.
ㅡ <교과서가 사랑한 작가 110> 중 ㅡ
1912년 ~1917 일본 세이조중학교
중국 상해 호강대학교
1915년 ~ 동인지 거화(巨火)를 발간
1921년 ~ 조선일보사 입사
동아일보 기자
1921년 ~ 백조의 동인
희생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영춘류
전면
타락자
유린
피아노
타락자
사공
우편국에서
할머니의 죽음
그림은 흘긴 눈
까막잡기
발[簾]
불
새빨간 웃음
지새는 안개
첫날밤
그의 얼굴
사립정신병원장
고향
동정
조선의 얼골
해 뜨는 지평선
여류음악가
신문지와 철창
황원행
정조와 약가
웃는 포사
서투른 도적
연애의 청산
적도
화형
흑치상지
무영탑
적도
선화공주
현진건 단편집
"나는 역사소설이 작품으로 나타나기까지 작자의 태도를 대별하여 두 가지 경로를 밟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는 작자가 허심탄회로 역사를 탐독완미하다가 우연히 심금을 울리는 사실을 발견하고 작품을 빚어내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자체가 주제를 제공하고 작자의 감회를 자아내는 것이니 순수한 역사소설이 대개는 이 경로를 밟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예하면 스코트의 제(諸) 작품 아나톨 프랑스의 「신들은 주린다」라든가 우리 문단에도 춘원의 「단종애사」, 상허의 「황진이」 같은 작품이 그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작자가 주제는 벌써 작정이 되었으나 현대에 취재하기도 거북한 점이 있다든지 또는 현대로는 그 주제를 살려낼 진실성을 다칠 염려가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그 주제에 적당한 사실을 찾아 대어 얽어놓은 경우입니다. 쉔키비치의 「쿠오 바디스」,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춘원의 「이차돈의 사(死)」 같은 작품은 다 이런 경로를 밟은 작품이라고 봅니다.
제1의 경우라고 해서 대작(大作) 신품(神品)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제2의 경우에야말로 웅편(雄編) 걸저(傑著)가 더 많지 않은가 합니다. 그가 작품마다 그 구별이 뚜렷한 것이니 아니오 서로 혼합되고 착종하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