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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May 24. 2024

5. 정약용 '목민심서'

실학 정신으로 개혁을 꿈꾼 학자

정약용과 <목민심서>는 워낙 유명한지라 자료가 방대해, 오늘 글은 아주 깁니다. 아래 소제목들을 미리 보시고 선별해서 읽으셔도 좋습니다. 한번 정도는 필독하면 좋은 인물이고 책인지라, 본글 전체와 중간에 첨부드린 <참고 영상>도 시청하시면 좋습니다.

하단에 브런치 작가님들의 <신간출간> 코너와 <브런치 보석 작가 소개> 코너도 유익하오니 살펴 주세요


특별한 대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가르침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다.
그리고 공부의 마지막은 일과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삶이 계속되는 한 공부는 끝이 없다.
인간은 허공에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땅에 남기는 발자국으로 스스로를 증명한다
ㅡ 다산 정약용 ㅡ



실학(實學)은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이라는 뜻으로 유학의 전통에서 '공리공론(空理空論)에 기초한 헛된 학문'이라는 뜻의 허학(虛學)과 대립된 말로 폭넓게 쓰여 왔다.

1. 대접(待接) : 마땅한 예로써 대함. 음식을 차려 접대함.
2. 대접 : 위가 넓적하고 운두가 낮으며 뚜껑이 없는 그릇. 국이나 물 따위를 담는 데 쓴다.



사람들은 누구나 특별한 대접(待接)을 받고 싶어 한다. 나이 들수록 이 '특별한 대접(待接)'이란 화두는 생존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동시에 특별한 대접에 걸맞는 특별한 크기의 대접 곧 특별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함의에는 곧잘 줄행랑을 치고 싶어 진다. 그 일은 더디고 힘겨우며 때로 오랜 유배를 감내해야 할 만큼 희생과 손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대접을 받으려는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특별한 아니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깨끗하며 성숙한 그릇, 그것이 특별하다 자칭할 수 있는 깨달음을 득도하는 과정이 아닐까.


큰 어른이 사라져 가는 시대.

이 한 문장이 이토록 절절하게 아프고 갈증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금이 저릴 정도록 책망을 들어도 바보처럼 듣기 좋았던 그 무거운 말들을 더듬거려 찾아본다.


대학 때 만난 멘토와 사모님이 내게 준 큰 선물은 바로 '어른됨'에 대한 정답과 모범이었다. 성경 외에 두 분이 즐겨 읽었던 책 중에 하나가 <목민심서> 였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른들에 대한 반항심과 반발심을 누르고 숨기며 20대가 된 나, 그간 치열하게 살았으나 이내 두려웠다. 닻이 없는 배처럼 거대한 바다 앞에서 어디론지 쓸려 갈지 모를, 나도 확신이 서지 않는 자신의 이면에 짓눌리도 했다.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큰 바위 얼굴>이 지루했던 초등학교 어느 수업시간이, 이젠 지루하지 않은 간절한 화두로 무겁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민들은 여위고 병들어
줄지어 굶어 죽은 시체가 구덩이를 메우지만
다스린다는 자들은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ㅡ 목민심서 서문 中 ㅡ




초등학교 때였던가, 어머니가 빚 때문에 갖은 고초로 창피를 당하던 시절이었다. 덕자(가명) 고모네 돈 빌리러 갔던 어머니는 빈손으로 돌아와 한숨을 몰아 쉬셨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긴요히 필요한 그 돈이 없어 우리 가족은 한동안 피 마르는 고생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덕자고모는 다음 해였던가, 우리와 비슷한 달동네에서 벗어나 말끔하고 세련된 동네의 2층 짜리 다세대 연립 주택으로 이사 갔다. 내부 계단을 이용해 1층, 2층을 모두 다 쓰던 고모네 새집을 눈물 나게 부러워했었다.


'그랬구나.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서 돈을 움켜쥐려, 그 때문에 돈이 없다 한 거구나.'


돈이 궁색해 빌리려 가는 사람들에게, 어른들이 자주 말하는 '나도 요즘 돈이 없어'는 그렇게 다국적 외국어 같았다. 그 뜻을 해석 못 한 사람은 아둔하고 이내 해석한 사람은 서러워지는 말. 서글펐다. 내가 아니라 부끄럽게 내민 손마저 처연히 민망해졌을 어머니의 손이 서글펐다. 고모들 중에 그래도 인심 좋았던 분이시지만 함께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곤 싶지 않았겠지, 이해해 보려 했다. 막내고모는 말했다. 우리 집은 그 시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계속 도울 수가 없었다고, 내가 어른이 아니라 어른들 세계를 모른다고 말이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어른으로 살기 싫다고, 그런 어른이 되지 않을 거라고 이를 악물고 절치부심했던 이유 말이다.     





덕자 고모와 그 가족들의 형편과 인생은 그 후로도 아주 잘 풀릴 것 같았다. 덕자 고모를 포함해 고모네들은 그 시절 우리 넷째 언니의 사실상 미혼모 상태를 뒤에서 은근히 그르다 말하곤 했었다. 근데 운명의 장난이었던 것일까, 나와 동갑인 덕자 고모의 딸 영자(가명)도 얼마지 않아 공교롭게 미혼모가 되었고, 이제 50세가 넘은 고모네 큰 오빠와 작은 오빠 둘 다 이상하게 장가를 안 가고 있다. 큰 오빠는 인물도, 직장도 좋고 성격도 좋은데 말이다. 10년도 더 전엔 느닷없이 병원의 오진으로 2주일 만에 돌아가신 덕자 고모, 나는 고모의 장례식장에서 밤새 고모의 딸 영자를 위로하고 고모의 친절을 더 기억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취준생 청년 친척들을 돌보며 곁방을 주어 거저 섬겨 주셨던 고모. 어느 한해, 한 가지 사건으로 그분의 더 많은 덕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그 개인과 가정에 덮친 느닷없는 고통을 나의 아련한 실망에 견주어 비열하게 의미 두려는 끔찍한 속내는, 돈이 없다 내뱉은 한때의 무정보다 더 끔찍한 무정이다.


누가 누구를 무정하다 탓할 것인가. 상경해 처음으로 내 집 마련하려는 그 다급함과 절실함이, 모든 가치의 우선순위를 잠시 뒤물린 것은, 실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 아니 이젠 내 모습의 일부가 아닐까.


그래서일까 나는 연봉이 꽤 올라갔지만 선뜻 내 집 마련의 욕심이 한동안 없었다. 이 끔찍한 어른의 모순에 직면할 나 자신을 은닉하고 싶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시대의 미치광이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그리고 수많은 부역자들을 볼 때, 우리는 괴물 같은 인간들이 세상에 또다시 출몰하지 않기를 두려움으로 간구한다.


근데 여기서 한 가지, 그 소수의 괴물 어른들은 과연 소수가 맞을까?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의 패망으로 전쟁보상금에 국가가 수세에 몰린 데다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독일 국민들은 가난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게다가 당시 독일을 포함해 유럽 등 많은 나라에선 오래전부터 반유대주의가 팽배했었다고 한다. 그들 나라에선 유대인들은 토지소유도 금지되어 농사도 지을 수 없었고, 길드에 참여할 수 없었기에 기술도 배울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가장 멸시받던 업종인 대금업을 떠맡듯이 종사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유대인들은 지식산업 즉 금융, 변호사, 회계사 등에 악다구니를 치며 올라갔던 것 같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도,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등 금융업에 많이 종사했기에, 독일에선 반유대주의에 입각해 재산몰수로 포문을 연 유대인 절멸(학살) 정책은, 다수 채무자이며 잠정 채무자로 전락할 상당수 독일인들의 무언의 합의와 알지만 모른다한 '방조' 그리고 적극적인 '협조' 덕에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학살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대다수 평범한 독일 국민들은 당시 유대인 학살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는 자세히는 몰랐을지 모른다. 허나 자세히 알고 싶지 않은 비겁한 방조의 마음은 엄연히 있지 않았을까. 600만 유대인 학살은 소수의 괴물 어른들 때문만이 아니라 다수의 생각하지 않는, 크고 작은 이익에 함몰된 평범하고 착한, 그러나 언제든 다수의 이름으로 악을 옹립하고 충성하며, 그 정도의 죄는 괜찮다는 관용의 비릿한 이름으로, 악의 횡포를 방조하고 눈 감아주는 이들로 인하여 가능했던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으로서 홀로 코스터 희생자가 될 뻔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 훗날 미국에서 정치철학 등으로 명저를 냈다 한다. 그녀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저서에서 악의 평범성을 심도 있게 기술하였다고 한다. 500만 명의 유대인을 수송하는 일을 자행했던 나치 독일의 희대 살인마인 아이히만은, 그 자신의 말로는 ' 평범한 가장으로서 조직에 충성되게 성실하게' 맡겨진 업무를 수행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사형선고를 언도받게 될 '세기의 재판'에서 심지어 칸트의 철학을 인용하며 '도덕의 보편성'을 말했다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가 발을 딛고 살았던 독일의 당시 상황에서 자신은 도덕적 보편성에 따라, 조직의 위계와 명령에 충성해서 일했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것이다. 독일인에게 동의해 마지않을 '보편성'이 타인이나 다른 민족에게는 '보편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도대체 누가 가르쳤어야 하는가? 심지어 유대 학살 현장엔 동족 유대인도 부역한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한나 아렌트



큰 어른이 사라지는 시대란, 유려한 언어로 논리적으로 말하는 어른들이 희귀하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치와 신념대로 모든 불이익과 핍박,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고, 그 가치가 '평생을 또 목숨을 걸고 살아내야 할 인간의 본류이며 작은 위대성'임을 실제로 살아낸 사람들이 희박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른이 되면 마땅히 어느 곳에서고 어른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 진다. 그래 나이 들수록 서운병이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그가 누구이든 연장자는 특별히 공경하고 대접하는 것이 마땅하다. 동시에 어른된 우리는 특별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 각고의 고뇌와 헌신이 '어른'이란 단어에 실려 있음을 무겁게 받게 된다. 뉴스에 출몰하는 엽기 행각, 엽기 범죄의 주인공들이, 직전까지 평범하고 착한 가장, 아내, 아들, 딸, 할머니, 할아버지일 수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인간됨의 절망감과 서글픔을 느낀다. 그 불완전성에 가슴 시린 존재의 가벼움을 느낀다.


동시에 그런 인간사에 소수이지만 인간성의 뿌리를 붙들고 목숨과 인생을 걸고 싸웠던 큰 바위 얼굴 같은 어른들이 있어 안도와 위로를 얻는다. 정약용은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목민심서>는 단순이 옳은 말을 나열한 여타의 책들을  뛰어넘는 이유가 있다. 그러한 이론들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대가지불한 수백 년 전의 한 남자의 하루가, 매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민심서는 강직하며 동시에 마음 따뜻한 큰 아버지가 들려주는 인생 지침서 같다. 


본서는 심지어 돈이 없는 사람이 돈을 빌리려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형편이 너무도 어려워 굶어 죽을 지경인 사람이라면 돈을 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런 상황에서 돈을 적시에 빌려주기 위해서는 평소에 사치와 낭비를 멀리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말 사소한 일에 대한 지침이지만 어찌나 현실적인 조언인지 무릎을 쳤다. 이 정도의 디테일을 말할 때에는, 이 대목을 본인이 살아봤기에 가능하리라는 추정을 한다. 정약용의 글들이 파닥거리는 생동감과 현실감, 미래 지향성까지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이론을 실제가 되도록 살아내는 데까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했기 때문이 아닐까.


TV엔 끔찍한 어른들도 출몰하지만 더 많은 경우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사후, 탁월해서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된 정약용은 살아 생전의 평범성을 비범하게 잘 살아낸 시대의 '큰 바위 얼굴'이었다. 다산 정약용과 나치 독일을 보며 다수의 평범한 우리는 어른됨의 엄중함을 무거움으로 받게 된다.

















영특한 소년의 남다른 어린 시절

정약용은 1762년 경기도 광주군 마현에서 진주 목사를 지낸 정재원과 윤선도의 후손인 해남 윤씨 사이에서 4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영특했던 정약용은 일곱 살 때 한시를 지었으며, 열 살 이전에 지은 시를 모아 《삼미자집》이라는 제목의 책을 편찬하였다. 삼미(三眉)는 어릴 적 정약용의 별명으로, 천연두를 앓고 난 뒤 생긴 눈썹의 흉터 때문에 눈썹이 셋으로 나뉘었다는 뜻에서 이러한 별명이 붙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어린 시절부터 책에 빠져 살았던 정약용과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실학 4대가로 불린 이서구가 영평에서 대궐로 돌아오다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당나귀에 책을 가득 싣고 북한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열흘 뒤 소년을 다시 만난 이서구는 의아해하며 소년에게 어디를 돌아다니느냐고 물었다. 절에서 《강목》을 열흘 만에 다 외우고 내려왔다는 소년의 대답에 깜짝 놀란 이서구는 실제로 책을 외웠는지 시험을 해 보았다. 놀랍게도 소년은 책을 다 외우고 있었는데, 이 소년이 바로 정약용이다.


정조와의 만남, 실학 정신의 발휘

1783년 진사시에 합격한 정약용은 이후 성균관에 입학하여 학문에 매진한다.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정조가 성균관 유생들에게 《중용》에 관한 80개조의 질문에 답하도록 하였는데, 정약용이 <중용강의>라는 답안을 제출하였고 이를 읽어 본 정조가 정약용의 답안을 극찬하였다. 이후 정약용은 1789년 대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고, 정조는 그를 매우 총애했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학문 자세를 지녔던 정약용은 청나라에서 들어온 고증학, 서양에서 들어온 서학 등 새로운 학문과 사상에 관심이 많았다. 또한 기술을 천시하던 종래의 유교적 통념을 비판하면서,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대 조선은 농경 사회에서 상공업 사회로 변화하는 시기였다. 정약용은 이 변화의 흐름을 읽어 내고, 부국강병과 이용후생에 직결되는 각종 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실제 실천으로 옮기는데, 1792년 수원 화성을 설계할 때 거중기를 제작하여 4만 냥의 공사비를 줄일 수 있었다.


대학자의 밑거름이 된 오랜 유배 생활

남인과 서인의 대립이 날로 심해지던 상황에서 서인들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를 들어 정약용을 수차례 모함한다. 정약용을 아꼈던 정조는 그를 보호했지만, 1800년 정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면서 정약용은 위기에 처한다. 결국 1801년 신유박해 때 정약용은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를 떠난다. 정약용은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긴 시간 동안 그는 독서에 몰두했고, 학문에 매진하였으며, 훌륭한 저서를 집필하였다. 정약용의 저서 500여 권 중 상당수가 이 시기에 쓰였거나 초안이 마련된 것들이었다.

정약용은 행정 기구의 개편, 관제, 토지 제도, 부세 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경세유표》,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목민심서》, 형사 사건을 다루는 관리들을 계몽하기 위해 저술한 형법서인 《흠흠신서》 등 다양한 방면에서 훌륭한 저서들을 남긴다.

ㅡ <교과서가 사랑한 작가 110> 중에서 ㅡ












정약용



정약용(丁若鏞, 1762년 ~ 1836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아명은 귀농(歸農), 는 수시(美庸), 다산(茶山)·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문암일인(門巖逸人),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1][2]IASB 2012년,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아 '2012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다.[3]






초기생애



출생과 성장


경기도 광주부 초부면 마재(마현(馬峴), 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94)에서 태어났다. 정약용이 태어난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이다.[4]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정선, 영월, 충주, 여주를 거쳐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한다. 현재는 생가터와 실학박물관등 정약용 유적지가 잘 조성되어있다.[5]


부친 정재원은 첫 부인 의령 남씨와 사이에 큰아들 약현을 낳았고, 둘째 부인인 고산 윤선도의 오대손녀인 윤소온(해남 윤씨, 조부 윤두서, 부친 윤덕렬)씨 사이에 약전, 약종, 약용 3형제와 딸 한 명을 낳았으며, 정약용은 4남 2녀 중 네번째 아들이었다.[6][4] 정약용이 태어난 해에는 영조의 노여움을 산 사도세자가 뒤주속에 갇혀 죽는 일이 벌어졌다.(5월) 부친 정재원은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하였고 그해 6월에 태어난 정약용의 아호를 귀농(歸農)이라 지었다.[7] 벼슬을 탐하여 당쟁에 휘말리지 말고 농촌에 귀의하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정약용의 선조들은 8대를 연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모두 홍문록에 올랐는데[8] 고조부, 증조부, 조부의 3대에 이르러서는 벼슬에 오르지 못했다.[4] 아버지 정재원은 1762년 3월에 생원시에 합격한후에는 대과에 응시하지 않았다. 출세에는 큰 욕심이 없었기에 사돈인 채제공이 대과 응시를 여러차례 권유하였으나 마다하였다.[9] 뒤늦게 음관으로 벼슬길에 나간것은 생활고 때문이었으며[10] 호조좌랑, 울산부사, 진주목사(정3품)까지 지냈다.[11]




가문의 내력


본관은 압해(押海)였다. 지금은 전라남도 신안군에 속하는 섬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나주목에 속해있었기에 나주 정씨로도 불렸다.[12] 조상들은 고려 말에 황해도 배천에 살다가 조선이 개국하자 서울로 이주했다. 11대 조부 정자급(丁子伋)이 승문원 교리를 지낸이래 8대에 걸쳐 벼슬을 하였다.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정수강, 병조 판서를 지낸 정옥형, 의정부 좌찬성을 지낸 정응두, 대사헌을 지낸 정윤복,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정호선, 홍문관 교리를 지낸 정언벽, 병조 참의를 지낸 정시윤이다.[13] 8대 조상이 연이어 모두 홍문관 명부에 이름을 올렸는데, 홍문관은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삼사(三司)로 불린 중요부서로 학문이 높은 학자관료만 들어갈 수 있었다.[12]


조선의 역대 문과 급제자들의 명부인 '국조문과방목'을 보면 홍문관에서 근무한 자들은 따로 표시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선시대 청요직(淸要職)의 상징으로서 정승·판서 등 고위 관리들은 거의 예외없이 이곳을 거쳐갔다.[14] 그래서 정약용은 평소 팔대옥당(八代玉堂)이라 하며 학문명가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12]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하여 남인이 몰락하자 5대조 정시윤은 당쟁을 피해 경기도 광주 마현(馬峴)으로 옮겨 살았다.[15] 고조부 정도태(丁道泰), 증조부 정항신(丁恒愼)은 벼슬을 하지 못했다.[13][16] 고조 정도태, 증조 정항신은 진사시에 입격했고, 조부 정지해(丁志諧)는 통덕랑에 오르기는 했다.




언문습득


정약용은 특별한 스승이 없이[17] 부친 정재원의 임지를 따라다니며 부친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형 정약전은 성호 이익의 학맥을 잇는 녹암 권철신으로부터 사사했으나 정약용은 부친의 가르침 이외에 독학하였다. 이가환, 이승훈과 교류하게 되면서 이익의 학문을 접했으나 유작을 통해서 사숙(私淑)했을 뿐이다.[18]


네살에 천자문을 배웠고[19] 일곱 살 때 '바다'라는 를 지은 것이 남아있다. 열 살 이전의 어린 시절에 지은 시를 모아 《삼미자집》(三眉子集)이라는 책을 냈는데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20] 삼미(三眉)라는 별명은 어릴 적에 걸렸던 천연두가 나으면서 생긴 흉터 때문에 눈썹이 세 개 생겼다는 뜻이다. 아홉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맏형수 경주 정씨와 계모 김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열살때 경서와 사서를 모방해서 작문한 글이 자신의 키만큼 쌓였다고 한다.[20]


어릴 적에 천연두에 걸렸으나, 왕족 출신의 사가 명의였던 이헌길의 진료로 인하여 살았다. 정약용은 훗날 이헌길의 《마진기방》을 바탕으로 한층 발전된 홍역 치료서 《마과회통》을 집필하고, 이것은 현대 의학이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조선의 생명을 구한다. 또한 정약용은 이헌길의 생애를 다룬 《몽수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성호학파 입문


1776년 결혼하여 처가에 왕래하기 위해 서울을 자주 드나들면서 이때 성호 이익의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21] 같은 해 아버지가 다시 벼슬을 하여 호조 좌랑이 되었으므로 서울에 집을 세내어 살았다.[13] 1776년 4월 10일(음력 2월 22일)에 승지 혼문으로 명성이 높은 이가환과 매부 이승훈을 만났다.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삼촌이었으며, 성호 이익의 종손으로 당시 이익의 학풍을 계승하는 중심인물이었다. 이승훈도 이익의 학문을 계승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영향을 받아 정약용도 그 이익의 유서를 공부하게 되었다.


이들에게서 이익의 학문을 접하면서 실학사상의 토대를 다졌다. 이익은 근기학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 정약용이 어린시절부터 근기학파의 개혁이론에 접했다고 하는 것은 청장년기에 그의 사상이 성숙되어 나가는 데 적지 않은 의미를 던져주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정약용 자신이 훗날 이 근기학파의 실학적 이론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받게 된 단초가 바로 이 시기에 마련되고 있었다.[6]


1777년(15세) 화순 현감이 된 아버지를 따라가서 화순현 북쪽에 있는 동림사에 가서 형 정약전과 함께 서책 학습에 매진했다.[13] 1780년(18세) 아버지가 경상도 예천군수로 부임하자 예천에 가서 살았다.[22] 1782년, 서울에 집을 마련하여 정착 한 후 과거공부에 전념하였고 1783년에 세자 책봉 경축 증광시에 합격하고 회시로 생원이 되었다. 22세에는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갔는데, 매달 치르는 시험과 열흘마다 치르는 순시(旬試)에 매번 높은 성적으로 뽑혀서 책과 종이와 붓을 상으로 하사받으며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13]






관직생활




화성성역의궤에 실린 거중기


대과 급제


1789년(정조 13년), 27세 되던해에 대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규장각에서 정조의 총애를 받아 공부하면서 한강에 배와 뗏목을 잇대어 매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배다리를 만들기도 하였다. 1791년 신해박해 때 공서파의 모함으로 인해 서산 해미에 유배되었으나 11일 만에 풀려났다.[23][24] 이후 사간원홍문관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1791년에는 수원 화성 설계에 참여하여 거중기를 활용하였다. 30세가 되던해인 1792년에는 아버지 정재원이 죽는다.



성균관


1794년에는 성균관에서 강의하게 되고, 음력 10월에 경기도 암행어사로서 연천, 삭녕 등을 순찰하였다. 1795년 을묘박해 사건이 벌어졌을 때 모함을 받아 그해 음력 7월에 금정찰방으로 좌천되었다.[23] 이어 병조참지, 좌부승, 곡산 부사 등을 지냈다. 1799년에 승정원 동부승지가 되었다.



곡산부사


곡산 부사로 부임하기 전에 이계심이라는 농업노동자의 조세저항 운동인 이계심의 난이 일어났다. 법학자 조국 서울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정약용은 민중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항 10여 조를 가지고 직접 나아온 이계심을 처벌하지 않고 관리의 부패에 항의하는 자들에게는 천금을 주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용기를 격려하였다.[25] 즉, 정약용은 민중들을 국가의 권위와 법으로 억누르는 게 아니라, 생존권을 요구하는 민중들의 항의를 귀담아듣는 애민 관리였다. 1799년형조참의가 되었는데 곧 탄핵을 받아 〈자명소(自明疏)〉를 올리고 사퇴하였다.





천주교와 인연



천주학 입문


1776년 이가환, 이승훈과의 만남으로 성호 이익의 학문에 연을 맺었다. 자연스럽게 남인 소장파 학인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성호 이익 문하에서 학습하여 학문적 명성이 자자한 권철신과도 연을 맺게 된다. 또한 이들이 천주학과 서양학문을 많이 연구하는 터라 정약용도 자연스럽게 이를 접하게 되었다. 권철신이 주도하여 1777년과 1779년에 경기도 양주에 있는 주어사와 천진암을 오가며 여러날에 걸쳐 서학교리 강습회를 열었는데,[26] 정약용은 이벽, 정약전, 권일신, 이가환, 이기양, 이승훈 등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27] 이 시기에 학문적 호기심에 서양학문과 함께 천주학을 접했다. 1784년 4월에 큰 형수의 제사에 참여했다가 귀경하면서 큰형 정약현의 처남 이벽으로부터 천주교 교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13] 천지창조의 기원, 영혼과 육신, 생사의 이치에 관한 이벽의 설명은 놀랍고도 오묘하여 즉시 매료되었다.[28] 이를 계기로 천주교에 대한 책을 여러권 탐독하며 심취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천주교와의 인연은 곧 악연이 되어 훗날 많은 고초를 겪게 된다.[29]



명례방 사건


1784년, 이벽에게서 세례를 받은 후 천주교인이 되었다.[23]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후 귀국한 이승훈이 서울 명동에 있는 역관 김범우의 집에서 신앙모임인 '명례방공동체'를 운영하였는데[30] 정약용도 이 모임은 참여하였다. 그러던중 1785년 초에 포졸들에게 이 비밀모임이 발각되어 형조에 끌려가는 명례방 사건이 벌어진다.[31][32] 다행히 중인신분인 역관 김범우만 투옥되고 정약용을 비롯한 양반출신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그러나 김범우는 유배지에서 사망하였고 이벽은 그의 부친과 갈등끝에 식음전폐하다 죽었다. 이승훈은 가문의 압박속에 배교했으며 모임의 주축이었던 양반출신들이 모두 떠나자 '명례방공동체'는 와해되었다. 이때 정약용도 일시적이나마 배교했으나 훗날 천주교인들과 은밀하게 교제를 재개했다.



반회사건


1787년(정조 11) 10월경, 반촌에 있는 김석태(金錫泰)의 집에서 정약용은 이승훈, 강이원 등과 은밀히 천주교서적을 연구, 토론하였다.[23] 그러한 사실을 안 이기경(李基慶)이 천주교 배척론자인 홍낙안(洪樂安)에게 알리자, 척사유생들의 상소가 잇따랐다. 그로 인하여 당사자들에게 직접적인 처벌은 내려지지 않았으나, 천주학 도서의 도입과 유포가 문제되어 조정에서 그 폐해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33] 이 당시 조선에는 한글로 번역된 천주교 서적이 목판으로 간행되어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었는데, 충청도 지방의 산골마을에까지 천주교 서적이 보급되어 있었다.[33] 1788년에 8월에 이경명이 서학 엄벌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자 정조는 천주교를 사교(邪敎)로 규정하고 금령을 내렸다.[34][35] 아울러 전국에 천주교 관련 서학서적을 색출, 소각하는 조처가 내려졌다.[36] 반회사건이 발생한 직후 아버지 정재원은 자식들에게 천주학을 멀리하라고 명했다.[37] 정약용은 정약전과 함께 아버지 말씀을 따랐으나 정약종은 천주학을 내려 놓치못했다.



신해박해


1791년, 전라도 진산에 윤지충이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치른 후 제사를 폐함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는 진산사건이 발생했다. 정약용의 집안도 큰 충격에 휩싸였다. 윤지충은 정약용의 외가쪽 친척이었기 때문이다.[37] 조상제사거부는 유학의 핵심인 '효'를 부정하는 일로써, 이는 곧 나라의 어버이 되는 왕에 대한 '충'을 부정하는 행위였다. 이는 유교이념으로 떠받쳐져 있는 조선의 지배체제 자체를 부정하고 도전하는 것이었다.[38] 윤지충과 그의 행위에 동조한 외사촌 권상연은 참수당했다.[39][40] 평택현감으로 있던 정약용의 매부 이승훈은 삭탈관직 당했다.[41]


그동안 정조는 천주교를 일시적인 종교 현상으로 이해하여 묵인하는 온건한 정책을 펼쳤었다.[42][43] 그러나 지난 1788년에 천주교를 사교로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도 극형을 명한후 홍문관에 소장되어 있던 서양서적을 소각하여 불온한 서양사상의 전파를 차단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서인들은 윤지충이 남인이었던 관계로 이 사건을 정쟁화하며 사건을 증폭시켰으며 남인들 조차 공서파와 신서파로 분열하였다.


한편 천주교가 사악한 종교로 낙인이 찍힌 이 사건을 계기로 정약용은 천주교와 관계를 완전히 청산했다. 그러나 윤지충과 친척이었던 관계로 서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44] 집안내에서도 약간의 갈등이 발생했다. 둘째 형 정약전도 이번 사건 발생직후 배교를 했으나 셋째형 정약종은 반회사건과 신해박해로 전국이 소란스러웠는데도 불구하고 천주교에 대한 열정에는 변함이 없었다.[45] 정약종은 교리에 따라 제사참여를 거부하며 갈등하다가 처자식을 데리고 한강 건너 양근의 분원으로 이사를 가버렸다.[45]



을묘박해


1795년 6월, 포도청이 밀입국후 은밀히 활동하던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를 체포하는데 실패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관련자들이 체포되여 선교사의 도피처를 추궁받았으나 이들은 끝까지 함구하였고 모진 고문끝에 옥사하였다.[46][47][48] 조용히 지나가는듯하던 사건은 2개월 뒤에 대사헌 권유(權裕)가 세 사람이 일찍 죽는 바람에 선교사 주문모 체포의 기회를 놓쳤는데, 이는 포도대장의 경솔함과 사건의 진상을 덮으려한 의혹이 있어 보이니 치죄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자 조정이 다시 시끄러워졌다.[49][50] 부사과 박장설이 이승훈·이가환·정약용이 주문모 도주사건에 연류되었다고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을 성토하는 상소가 연이어 올라왔다.


노론 벽파의 공세가 빗발치자 정조는 한발 물러서게 되었는데, 결국 1795년 7월 25일에 이승훈을 예산으로 유배 보내고, 이가환은 충주목사로, 정약용은 충청남도 홍주 금정찰방으로 좌천시켰다.[51][52] 당시 충청지역에 천주교의 교세가 크게 성장하고 있던터라 정조는 이 지역으로 이들을 보내어 교세 확산을 막음으로 천주교에 심취했었던 과오를 속죄하고[53] 지방좌천을 통해 노론 공격의 예봉도 차단하려 내린 초치였다. 정약용은 무려 7품계나 떨어지며 체면이 몹시 구겨졌다. 그러나 정약용이 금정에서 교세 저지를 위해 펼친 노력은 실효를 거두었고 충청지역 천주교계의 거물인 이존창을 체포하는 공도 세웠다.[54]



정조의 급사


형조참의를 제수받아 재직하던 중에 대사간 신헌조가 형 정약전을 부당하게 탄핵하자 '자명소'를 올리고 1799년 7월 26일에 사직하였다.[55] 잠시 서울에 머물다가 1800년 초에 낙향하여 마재에서 지내던 중 6월 28일에 정조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급하게 상경하였다. 국장을 치루는 동안에 독살설 등 많은 유언비어가 나돌며 어수선해지자 정약용은 처자를 마재으로 내려보내고 홀로 서울에 머물면서 정국을 살폈다.[56] 겨울에 주상의 졸곡(卒哭)[57]이 지나자 낙향하였고, 오직 초하루와 보름날 벼슬순서에 따라 차례로 열을 지어 곡하는 곡반(哭班)[58]에만 참석하였다.[59] 그 나머지 시간은 고향집에서 경전을 읽으며 지냈다.



숙청 작업


염려했던대로 어린 순조의 섭정을 맡은 정순왕후가 1801년 음력 1월 10일에 천주교 탄압령을 내리며 남인에 대한 숙청작업을 시작했다.[60][61] 오가작통법을 적용하고 역율로 다스리라는 엄명이 전국에 떨어졌다. 정순왕후는 과거에 사도세자 제거에 앞장섰던 전력이 있어[62][63] 정조의 즉위를 반대했었기에 정조가 즉위한후 집안은 몰락했고 오라비 김귀주가 귀양지에서 사망하며[64] 정조와는 원수지간이었다. 이런 정순왕후의 목표는 정조때 성장한 남인을 몰아내고 재기하지 못하도록 박멸하는 것이었다.[65] 선왕 정조는 노론 벽파를 견제하기 위해서 남인을 중용하였다.[66] 남인들이 서학에 관심을 두고 천주교에 가까운 자가 많았으니 좋은 명분이 되었다.


노론 벽파의 최우선 목표는 정조의 총애를 받던 이가환, 권철신, 정약용 3인의 제거에 있었다.[67] 이가환과 권철신은 남인을 이끌고 있었고 정약용은 남인을 이끌 차세대 젊은 주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가환은 반드시 죽여야 했는데, 이는 이가환의 가문이 조상때부터 있었던 노론 벽파와의 악연 때문으로[68] 이가환은 노론벽파가 가장 기피하는 인물이었다.[69] 이가환은 1791년 진산사건 직후 배교하며 천주교 탄압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노론 벽파도 알고 있었으나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노론 벽파가 원했던 것은 이가환이 천주교를 버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의 목숨이었다.[70] 이가환과 권철신은 모진 고문 끝에 옥사하였다.



구속과 석방


정약용은 가슴 졸이며 지내던중에 셋째형 정약종이 서적과 서찰등을 숨기려다 관아에 적발되어 모두 압수당했다는 소식을 1월 29일에 접하였다.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2월 8일에 전격적으로 체포되어 옥에 갇혔다. 국문장에서 단지 학문적 관심으로 천주교를 접했을뿐이었기에 이미 1791년 진산사건(신해박해)이후 천주교와 결별했다고 자신을 변호했다.[71][72][73] 그러나 그의 목숨을 노리는 노론 벽파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2월 11일에 정약종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밖에도 이승훈, 최창현 등 많은 이들이 투옥되었다.


정약용은 1791년 진산사건에 충격을 받고 천주교를 버렸다.[65] 1797년 천주교도로 오해 받자 《자명소》를 써서 반박했고 1799년에는 《책사방략》을 저술하여 배교를 분명히 한적이 있다.[74] 또한 '동부승지 사직상소'에서도 배교했음을 분명히 밝힌적이 있었다.[75][76] 이번 국문중에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론하며 천주교 지도자인 권철신, 황사영 등을 고발하였다.[77] 또한 천주교신도를 색출하려면, 믿음이 약한 노비나 학동을 신문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으나[77] 자신의 구명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자 체념하였다.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후 천주교 선교활동을 주도했던 이승훈은 정약용의 매형이고[78] 천주교 교리 연구회장인 정약종은 셋째 형이며 지난번 진산사건(1791년)을 일으킨 윤지충은 외사촌 형이었기 때문에 정약용은 궁지에 몰려있었다.[79] 그러던중 잡혀온 여러 신자들의 국문이 거듭될수록 정약용의 배교가 명백한 사실임을 증명하는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80] 분명한 물증들로 인해 정약용과 정약전은 구속된지 18일만에 유배로 감형된 후 석방되었다.




귀양살이


정약용은 18년간 경상도 장기, 전라도 강진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유배 기간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을 저술하였으며, 둘째 형 정약전도 물고기의 생태를 기록한《자산어보》라는 명저를 남겼다. 고난을 겪음으로써 학자로서의 지성이 자라는 새로운 경험을 한 것이다.




말년


1818년(순조 18) 음력 5월에 귀양이 풀려 승지(承旨)에 올랐으나 음력 8월 고향으로 돌아왔다. 혼인 60주년 회혼일 아침인 1836년 마현리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다산이 남긴 마지막 시는 〈회혼시〉였다. 정약용이 죽기 전 자녀들에게 신신당부로 이른 말은 "한양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양에서 버텨라"는 것이었다.




추증


1910년(융희 4) 7월 18일에 정헌대부 규장각 제학으로 추증되고 시호 '문도(文度)'가 내려졌다.[81]




결혼



장인 홍화보


1776년 2월 22일에 무관 홍화보의 여식인 풍산 홍씨와 혼인하였다. 장인 홍화보는 몸이 마르고 키도 작은편이었으나[82] 용맹스러운 무신(武臣)으로 호탕한 성품에 병법에 밝았다고 한다.[83] 1771년에 황해도 장연부사로 있으면서 병영을 설치하여 청나라 해적선 퇴치에 공을 세운바 있다. 영조 51년(1775)에는 승지로 제수되었는데, 이는 무인이 승지가 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조 4년(1780)에는 영남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낸바 있다.[83] 이런 장인의 영향을 받은 정약용은 〈아방비어고〉등 병서를 지을 수 있었다.[82]



자손들


정약용이 유배되었을 때에는 다시 과거시험을 보거나 관직에 진출할 수 없는 '폐족(廢族)'을 자처하였으나, 손자 시대에 이르러 직계 자손들이 과거에 급제하거나 관직에 나아가 폐족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진사에 합격하고 단양군수를 역임한 손자 정대림(丁大林), 참봉을 거처 삼척부사를 지낸 손자 정대무(丁大懋), 문과 과거에 급제하고 비서원승을 지낸 증손자 정문섭(丁文燮) 등이 대표적이다.




정약용의 사상



정약용의 철학사상


당시 주자학을 절대시하여 이기설·예론 등의 논쟁에만 골몰하던 학계의 현실을 개탄하고 보다 참되고 가치있는 경세치용의 실학을 건설하기 위하여 한대 이후의 오도된 유학을 거부하고, 공자·맹자의 수사학(洙泗學)으로 돌아가 유학의 본질을 파헤쳐 후인에 의하여 왜곡되고, 날조된 이론을 바로 잡으려고 하였다.


이이·유형원·이익의 경세학적 태도를 이어받아 새 시대의 새 학문으로 집대성하였고, 당시 중국에 유입되고 있던 서양의 종교·과학 등에 접촉하여 이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새 학문의 목적을 고증·경세(經世)·목민(牧民) 등에 두고 공자로부터 재출발하여 전연 독자적인 체계를 수립하였다.


천(天)을 유형천(有形天)과 주재천(主宰天)·역리천(易理天)으로 구분하고, 주재천에의 신앙을 강조하였다.


천명을 정치적으로는 인심으로, 윤리적으로는 정명(正命)으로 보아 백성을 위한 군자의 사명을 강조하였다.


 주자의 천리설(天理說)과 이기설(理氣說)을 부정하고 천명이 도심(道心)에 있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인성론(人性論)에 있어 인간의 본성은 기호(嗜好)라는 성기호설(性嗜好說)을 주장하고, 사람에게는 도의지성(道義之性)과 금수지성(禽獸之性)의 양성(兩性)이 있음을 밝혀 이들 양자간의 갈등을 인정하였다.


인물성동이논변(人物性同異論辨)에 있어 한원진의 인물성이(人物性異)를 지지하면서도 기질(氣質)의 성(性)은 같되 본연의 성은 다르다는 새로운 입장을 취하고, 주자학의 기질지성청탁수박설(氣質之性淸濁粹駁設)을 부정하였다.


주자의 이기론(理氣論)을 전면 거부하고, 공자·맹자의 양기설(養氣說)을 다시 주장하고 이를 목민(牧民)사상과 연결지었다.


역리(易理)의 성립과정을 합리적·과학적으로 해명하여 음양(陰陽) 64괘(卦) 등을 미신적인 교리(敎理)로 보는 데 반대하였다.


성인(聖人)을 신격화하는 데 반대하고, 인간은 누구나 성(誠)을 다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공자의 충서(忠恕)·효제(孝悌) 이외에 자(慈)를 강조하여 윗사람의 아랫사람에 대한 의무·사명으로 하였다.


성정중화론(性情中和論)에 근거하여 예악중화론(禮樂中和論)을 전개하고 원시 유교의 왕도(王道)사상을 강조하였다.



요컨대 정약용은 한나라 이후 유학의 병폐·타락을 성리(性理)·훈고(訓話)·문장(文章)·과거(科擧)·술수(術手) 등 다섯 가지로 지적하고, 공자에게로 돌아가 보다 합리적이고 건전하며 실제적인 신유학(新儒學)을 건설하여 조선 봉건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려고 한 주체적·혁명적 사상가였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토지정책



정전제를 주장한 배경


1755년 사형당한 유수원이 <우서>에서 비판한 대로, 다산 당시 농토의 100%를 사대부가 독점하여 평민들은 모두 소작농이었다. 이 상태는 일제강점기까지 계속되었다. 1944년 일제의 통계는 전국 농토의 64%가 소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36%는 사대부가 머슴들을 부려 직접 경작한 것이다. 이는 사대부 계층이 일제와 협력했다는 방증인데, 역사학자 이덕일이 쓴 《우리역사 수수께끼》(김영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의 농촌의 실제 권력은 일제가 아닌 향촌사회의 양반사대부라고 보기도 한다. 다산의 <전론>에 따르면 당시 추정 인구 800만(사망신고를 해도 산 사람으로 취급해 세금을 징수하는(백골징포) 등으로 정확한 추정 불가)에 농토가 800만결이었다. 일 가구당 1결이 되어야 굶어죽지 않는다. 다산의 추정에 따르면 사대부 1인이 평균 990명분의 농토를 차지하였고, 영남의 최씨와 호남의 왕씨는 3990명이 소유할 농토를 독점하고 있었다. 사대부는 소작인에게 세금까지 부담시켰다. 소작료는 평균 소출의 25%였으나 30%까지 올랐다. 당쟁과 홍경래의 난 등으로 몰락한 양반들과 난에 가담한 평민들이 노비계층으로 떨어져 헌종 때는 노비의 인구비중이 35%에 달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노비제도가 없어져 노예의 신분에서는 벗어났지만, 양반사대부 계급인 지주들이 토지를 독점하여 소작인들을 착취하였으므로 빈곤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갈등은 1923년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소작농민들이 지주 문 씨와 친일 지주들과 결탁한 일제에 저항하여 소작쟁의를 한 계급투쟁에서 잘 드러난다. 역사학연구소에서 펴낸 《교실밖의 국사여행》(사계절)에 따르면 당시 소작인들이 농사를 지어 수확하면, 80퍼센트를 소작료로 가져가는 착취를 했고, 이에 소작농민들이 소작쟁의를 하여 소작료를 낮춤으로써 처지를 바꾸는 중요한 일을 했다. 당시 지주와 결탁한 일제 경찰에서 농민들을 구속하여 목포 지방법원으로 송치하자, 농민들이 목포 지방법원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였는데, 당시 동아일보에서는 "하늘을 이불삼아 싸운다."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계급갈등은 남북한에서 1946년(북한), 1948년(남한)에서 무상몰수-무상분배(북한), 유상몰수-유상분배(남한)방식으로 토지개혁을 함으로써 농민들에게 토지가 돌아감으로써 지주 계급이 소멸함으로써 해소되었다.



정전제의 내용


중농주의 실학자로서 토지의 무상 분배, 공동 노동-공동 분배를 함으로써 토지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한 사회주의 토지 정책인 여전론정전론을 상상하며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정전론은 토지를 우물 정(井)으로 나누면 모두 9구역의 땅이 나오는데, 이중 8구역은 8명의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어 농사를 짓도록 하고, 1구역은 공동 노동을 하여 국가공동체의 복리를 위한 비용인 세금을 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전론은 여(이문 여,閭)를 농민들이 공동 노동, 공동 분배하는 사회주의 토지정책이다. 그렇지만 농민들이 공동으로 노동하고, 농업노동자가 일한 만큼 나눠주는 토지불평등 해소정책이니, 현재 북한과 같은 토지정책은 아니다. 정약용 선생이 자신의 사회주의 사상을 실천하기 위한 점진적인 방법이 1819년 정약용이 전라도 강진군에서 유배를 할 때에 상상한 정전론이다.[84]



청렴하고 평등한 경제


다산의 사상을 연구하는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에 의하면, 다산 선생은 평등하고 청렴한 경제(공렴,公廉)으로써 불평등하고 부패한 경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산은 부자의 것을 덜어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손부익빈(損富益貧)으로써 소득불평등을 풀어가고자 했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4대 궁인(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 노약자, 어린이, 초상을 당한 사람, 질병을 앓은 환우, 재난피해자 등으로 분류해 사회와 국가에서 애민(愛民)사상으로 이들을 배려함으로써 조선이 복지국가가 되기를 바랐다.[85]



과학기술


수원 화성 건축 당시 기중가설(起重架說)에 따른 활차녹로(滑車轆轤 : 도르래)를 만들고 그를 이용해 거중기를 고안하였다. 또한,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당대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적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시도하였다. 문집으로 여유당전서가 있다.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 정조의 다른 최측근인 홍국영과 친인척 관계이기도 하다.




평가


조선 근대 공학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정약용은 유형원·성호 이익을 통해서 내려온 실학사상을 한 몸으로 집대성했다. 한국 근세에서 남인학파의 정치적으로 비현실적인 태도에 비하여, 다산은 남인학파 중에서도 다분히 실제적인 경험을 지녔다. 정조 시기 중앙 관리로서의 경력, 지방행정의 경험, 연천(連川) 방면의 암행어사 행각, 청년 시절의 왕환(往還)과 부친의 임소(任所) 견문 등을 바탕으로 강진 다산초당에서 귀양살이를 하며 자신의 학문·사상을 체계화해 정리할 수 있었다. 다른 실학자들처럼 성리학·천문·지리·역상(曆象)·산학(算學)·의복(醫卜)에 관련된 저서는 물론 《경세유표》와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은 모두 ‘다산학’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경제·사상의 총괄 편으로 정박명절(精博明切)하며 탁견(卓見)이 아님이 없다.


이러한 사상이 급속도로 붕괴해 가던 조선사회에 적절히 적용되지는 못했지만, 다산이야말로 조선조 학계에 전개된 진보적인 신학풍을 한 몸으로 총괄·정리하여 집대성한 실학파의 대표인 것이다. 일찍이 위당 정인보는 "선생(茶山) 1인에 대한 연구는 곧 조선사의 연구요, 조선 근세사상의 연구요, 조선 심혼(心魂)의 명예(明銳) 내지 전조선 성쇠존망에 대한 연구" 라고까지 평하여 그의 학문·저술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정약용은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나 대부분을 한문으로 썼으며[86][87]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도 한문을 사용했다. 국어교육학 박사인 김슬옹은 '우리문화신문'에 기고를 통해, 정약용이 철저히 한글을 외면했음을 지적하며, 사상의 위대함이 표현과 소통의 위대함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또한 정약용 역시 성리학과 실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양반 사대부였음을 비판하였다.[88]




저서



3대 저서


정약용은 한자가 생긴이래 가장 많은 책을 저술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89] 그가 저술한 500 여권의[90] 책중에 이른바 '1표 2서'라 불리는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는 정약용의 주요 저서로 꼽힌다.


목민심서

 《목민심서》 : 백성을 다스리는 지방 목민관(牧民官, 수령)의 치민(治民)에 관한 요령과 감계(鑑戒)가 될 만한 마음가짐과 태도 등을 저술한 책이다.



흠흠신서

 《 흠흠신서 》 : 곡산부사로 재직할 때 실제 수사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서술한 판결과 형벌 및 치옥(治獄)에 대한 주의와 규범에 관한 책으로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일을 가벼이 처리하지 않도록 유의할 점을 적었다.



경세유표


 《 경세유표 》 : 관제·군현제와 전제(田制)·부역·공시(貢市)·창저(倉儲)·군제·과거제·해세(海稅)·상세(商稅)·마정(馬政)·선법(船法) 등 국가 경영에 관한 일체의 제도 법규에 대하여 적절하고도 준칙(準則)이 될 만한 것을 논정(論定)한 책이다.



기타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 정약용이 회갑을 맞던 해 자신이 직접 쓴 자신의 일대기이다.

《맹자요의》

《춘추고징》

《상서고훈》

《매씨서평》

주역사전

《역학서언》

《대학공의》

《대학강의》

《중용자잠》

《중용강의》

《아언각비․이담속찬》

《문헌비고간오》

《소학주관》

《소학기언》

《심경밀험》

상례사전

《상례외편》

《상의절요》

《제례고정》

《의례문답》

《상례작의》

《악서고존》

《시경강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대동수경》

《풍수집의》

마과회통

《삼미자집(三眉子集)》: 정약용이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았다가 나았는데, 그때 오른쪽 눈썹에 그 자국이 남아 눈썹이 셋으로 나뉘어 삼미(三眉)라 불렸다. 이 《삼미자집》은 정약용이 10세 이전에 지은 글을 모은 문집이다.


아학편(兒學編)》




편지모음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01년부터 1818년까지 장기와 강진에서의 유배길에 올랐을 때에, 두 아들(학유,학연)에게 보낸 편지, 부인이 결혼할 때에 입은 치마에 써내려간 시(하피첩), 딸에게 보낸 시화집을 창비에서 출판했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박석무 편역/창비[91])



죽은 아들을 그리워한 글


다산 선생이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전라남도 강진군으로 유배되었을 때에 아들인 농아가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펴낸 《글과 생각》교과서와 워크북에 실린 다산의 기록에 따르면, 다산은 부인 사이에서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성년까지 자라지 못하고 죽은 자녀들도 있었다. 이 책에 구전문학을 전공한 박종성 교수의 해설과 함께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글이 실려 있다. 농아는 홍역천연두로 죽었는데, 전라남도 강진군이 바다와 마주하는 지역이므로 아들에게 소라껍질을 보내어 소통을 하던 다산으로서는 아들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일이 매우 마음아픈 일이었다. 아들의 죽음을 전해들은 그날은 공교롭게도 농아의 생일이었다.


그래서 아들의 묘지명을 농아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 붕당정치를 벗어나 농사를 지으면서 소박하게 살라고 농아라고 이름을 지어준 이야기, 소라(객관적 상관물, 다산과 아드님의 소통을 뜻하는 상징물이다.)를 보낸 이야기(농아는 영리하게도 아빠가 소라껍질을 보낸 뜻을 알고 있어서 무척 반가워하고, 소라껍질이 오지 않으면 서운하게 여겼다고 한다.)를 써서 직접 지었으며, 아들 학유, 학연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전에 죽은 아들들은 임종이라도 지켰지만, 농아는 그렇지 못해 마음이 아프며, 엄마가 마음이 아프실 테니 돌볼 것을 부탁했다.





기타



세계기념인물(UNESCO)


정약용은 '2012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장자크 루소헤르만 헤세가 함께 선정됐다. 2012년이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네스코는 2004년부터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가 일치하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 명사의 기념일을 유네스코 연관 기념행사로 선정해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2013년에는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이 유네스코 기념의 해로, 2021년은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유네스코에서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한 바 있다.[3]



노론의 적개심


생전 500여권 이상의 저작들을 출간하였다. 저작들의 대부분은 유배생활 19년간 집필한 것이다.


20세기 초반까지도 노론계 인사들은 남인에 속하는 정약용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유지했고 그를 혐오하였다. 한국에 서점의 개념이 도입된 1890년대 이후, 자유롭게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었음에도 그의 저술들을 외면하였고, 윤치호노론계 인사들이 그의 책을 읽지도 사지도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어젯밤 추도식을 지낸 다산 정약용이야말로 이조가 배출한 아니 박해한 위대한 학자이다. ...(이하 중략)... 그는 16년 동안 유배 상활을 하면서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 70여 권의 귀중한 원고를 남겼다. 그런데 요즘에도 노론계에 속하는 인사들은 그가 남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책을 읽지도, 사지도 않는다."
ㅡ윤치호일기, 1935년 7월 17일자 ㅡ




홍국영과의 관계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 정조의 다른 최측근인 홍국영과 인척관계이기도 하다. 정약용의 장인 홍화보홍국영의 증조부뻘, 혜경궁에게는 할아버지(조부)뻘이 된다. 홍이상의 둘째 아들 홍영(1584년생)과 넷째 홍탁(1597년생)은 13년 나이차였고, 홍영의 증손자 홍중기(홍만용의 아들)와 홍탁의 손자 홍만기가 동갑이었고, 홍탁의 손자 홍만기는 40세가 다된 늦은 나이에 아들 홍중후를 봤다. 홍중후는 1687년생으로 8촌인 홍중해(홍국영의 고조부), 홍중기(혜경궁 홍씨의 증조부)와는 29세와 38세의 나이 차이가 난다. 따라서 같은 친척임에도 항렬차가 많이 나게 되었다.



심환지와의 관계


노론 중 벽파의 일원인 심환지는 정약용을 미워하면서도, 정약용의 형제들 중 정약용을 특별대우했다. 정약용을 추국하면서 이런 혼우라도 믿을수 있어야지라고 중얼댄 것을 정약용이 여유당전서에 실어놓았다. 심환지왈, 출출(어허, 이런), 혼우라도 믿을수가 있어야지(沈煥之曰, "咄咄, 婚友不可恃")라 했다.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1800년 초, 심욱(沈澳)의 딸과 결혼했는데, 심욱의 10대조 할아버지 심달원(沈達源)이 심환지의 10대조 할아버지 심연원(沈連源)의 친동생이었다. 심연원의 손자 심의겸과 그 후손들은 서인이 되었지만, 퇴계이황의 문하생 고봉기대승의 문하에서 수학한 심달원의 후손들은 그대로 동인, 남인 당원이 되었다.



공부방법


정약용의 공부방법은 초서법이다. 초서법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쓰는 방식인데 약간 다르게 하였다. 원래는 깜지같은데 정약용은 중요한 부분만 골라서 기록하였다고 한다.






정약용이 등장한 작품


드라마

《다산 정약용》(MBC, 1983년, 배우:정욱)

《파문》(MBC, 1989년, 배우:전국환)

《소설 목민심서》(KBS2, 2000년, 배우:이진우)

《이산》(MBC, 2008년, 배우:송창의 (67회~77회))

《조선추리활극 정약용》(OCN, 2009년, 배우:박재정)

《성균관 스캔들》(KBS2, 2010년, 배우:안내상)

《구르미 그린 달빛》(KBS2, 2016년, 배우:안내상)


뮤지컬

《정조대왕》 (2007년, 배우:이훈)


영화

《영원한 제국》(1994년, 배우:김명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년, 배우:천보근, 송중기)

《자산어보》(2021년, 배우:류승룡)









출처 : 정약용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정약용 선생님 관련 참고 영상


https://youtu.be/M0jaXcDJC6s?si=yubZhBNzs8LK_LFF



https://youtu.be/aN7S3jv6MIk?si=SclaEY2aFYl7ciwY



https://youtu.be/jPHvXxtDJS0?si=1TnJmWmd0UMDP3v8




*정도전의 둘째형인 정약전 관한 영화 <자산어보> 요약본


https://youtu.be/8PcTEOiS0-E?si=PTUe2bYb_YNETSmW




*서두글 참고자료 영상 (각각 10분 이내로 필시청 권장)


https://youtu.be/K7muj9zG-us?si=24NxdI7oQsEgP1w5


https://youtu.be/CY_T119Yn98?si=dcer41j9F9iavSVC














목민심서




출간 : 1818년 (순조 18)

편저 : 정약용







1. 개요



"...오늘날의 백성을 다스리는 자[1]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민들은 여위고 병들어 줄지어 굶어죽은 시체가 구덩이를 메우지만 다스린다는 자들은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ㅡ 목민심서 서문 中 ㅡ



다산 정약용이 저술한 책이다. 제목의 뜻은 목민할 마음만 가졌지 몸소 시행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라고 다산 본인이 밝혔다. 혹은 목민관이 가져야 할 마음(牧民心), 백성을 다스리는 마음에 관한 책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내용적으로는 수령, 관리가 걸어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즉 관리, 윗사람으로서의 솔선수범, 청렴함 등을 강변하고 있는데 사실 실질적인 행정 업무 설명서적인 성격도 강하다. 또 관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현대에 시민으로서, 그리고 책임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로 의미를 확장해서 읽으면 부정한 상사(上司)에게 굴해서는 안 된다는 말 등 굉장히 유익한 내용이 많다(함부로 따라하면 작자처럼 귀양가기도 한다). 책 자체의 평가는 매우 높다.

저자인 정약용은 1801년 순조 1년 일어난 천주교 박해인 신유박해에 휘말렸다. 이 사건은 노론 벽파의 주도로 남인을 주축으로 한 정조의 친위세력인 시파(時派)를 완전히 몰락시킨 사건이다. 남인 청류당 계열 가운데 이가환, 이승훈 베드로[2], 정약종 아우구스티노[3], 이벽 세례자 요한, 권철신 암브로시오 등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했다. 정약용은 겨우 살아남아 16년간 땅끝이나 다름 없던 강진으로 귀양살이를 보내게 되며, 이런 유배 생활에서 쓰여 진 것이 바로 목민심서이다.

이런 내용과는 별도로 정약용의 개인적인 주관 등이 들어가서 의외의 재미가 있다. 논어를 딱딱한 책으로 생각하고 처음 읽어 본 사람이 공자가 제자의 뒷담화를 하는 장면이나 제자가 공자에게 반항하는 장면 등을 읽으면서 놀라는 것과 비슷하다. 당시 목민관들 사이에 돌던 '업계의 속사정'이라든가, 시장터에서 골목대장 행세를 하는 자를 묘사한 장면 등 가볍고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정약용 개인 취향이 보이는 부분도 있는데 나라에서 식량을 절약하기 위해서 금주령을 내리면 설사 서울에 끈이 있는 지방의 토호라고 할지라도 잡아다가 엄단할 것을 설파하던 분이 '농주는 식사대용도 되니까 그냥 넘어가라......'고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총 분량은 부임(赴任)·율기(律己, 자기 자신을 다스림)·봉공(奉公)·애민(愛民)·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 典)·진황(賑荒)·해관(解官, 관원을 면직함) 12편이며, 각 편을 6조로 나누어서 총 72조로 구성한다.

목민심서는 크게 두 가지의 이본(異本)이 있다. 하나는 1817년 강진(康津)에서 이루어진 초고본이고 다른 하나는 이 초고본을 수정ㆍ가필하여 1821년에 마현(馬峴)에서 마무리한 완성본이다. 완성본에는 초고본의 조명(條名)을 다소 바꾸고 문장을 수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역대 중국과 조선의 순리(循吏)들의 선행(善行)에 관한 사례를 대폭 증보했기 때문에 책의 분량이 3분의 1 이상 증가하였다.



2. 내용


부임육조
목민관으로 발령을 받고 고을로 부임할 때 유의사항이다.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나라에서 주는 비용 외에는 한 푼도 백성의 돈을 받아서는 안 되며, 일을 처리할 때는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해야 하고, 아랫사람들이 자신 모르게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단속해야 한다.


                    제배(除拜, 임명 받기): 수령의 직분을 매관매직을 피하며, 새 수령 맞이용 말의 비용은 이미 나라에서 주니 백성들에게 돈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치장(治裝, 행장 꾸리기): 검소한 복장을 해야 하며, 고사, 시집, 의서, 병서 등등 책들을 많이 구비해야 한다.                  

                    사조(辭朝, 조정에 하직하기): 자신을 추천한 전관에게 사사로히 감사를 표하지 말고, 맞이하러 온 이방이 가라치는 팁이 담긴 읍총기를 주면 즉시 돌려주고, 이방에게 고을의 큰 폐단을 듣고 감사에게 바로 잡을 방법을 의논해 봐야 한다. 맞이하러 온 이방과 하인에게 장중하고 화평하게, 또 간결하고 과묵히 접대해야 마땅하다.                  

계행(啓行, 부임 행차): 일찍 출발하고 해가 지기 전 일찍 쉬도록 하되, 하인들이 밥 먹고 시작하도록 수리[4]에게 말해 준다. 미신을 물리치고 제 길로 가면서 이웃 선배 수령들을 맞이해 업무에 관해 물어봐야 하고, 취임 전 하룻밤은 백성들 폐 끼치지 않게 이웃 고을에서 자야 한다.

                    상관(上官, 취임): 길일을 기다리지 말고 비가 없는 빠른 시일날 취임하여 아전과 하인들을 모아 인사한다. 그 후 고을 백성들을 다스릴 준비를 한다.                  

                    이사(莅事, 업무 시작하기): 이튿날 새벽에 출근한여 상급관청에 올리는 보고 중 전례에 따라고 좋은 건 바로 서명하고 사리를 따져야 할 것은 글을 다듬어 아전들에게 다시 쓰도록 한다. 민간에게의 명령은 꼼꼼히 검사하여 의심가는 건 수리와 담당 아전한테서 조사하여 본말을 안 후 서명한다. 백성들에게 고을 폐단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그 폐단에 대해 최대한 서명을 미루고 개혁을 도모한다. 모든 관청일에는 기약일을 넉넉히 주선할 수 있게 한 다음 이를 분명히하고 거듭 알린 후에도 기약일을 어기는 사람은 약속대로 벌을 시행한다. 화공을 구해 고을 지도를 그려 관아 벽에 걸어 두도록 한다.                  




율기육조
율기는 '몸을 다스리는 규율'이란 뜻으로서 목민관이 지켜야 할 생활 원칙이다.


                    칙궁(飭躬, 바른 몸가짐): 목민관은 몸가짐을 절도 있게 해서 위엄을 갖추어야 한다. 위엄이란 아랫사람이나 백성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동시에 원칙을 지키는 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청심(淸心, 청렴한 마음): 마음가짐은 언제나 청렴결백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청탁을 받아서는 안 되며, 생활은 언제나 검소하게 해야 한다.                  

                    제가(齊家, 집안을 다스림): 집안을 잘 다스리는 것도 목민관의 중요한 덕목이다. 지방에 부임할 때는 가족을 데리고 가지 말아야 하며, 형제나 친척이 방문했을 때는 오래 머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병객(屛客, 청탁을 물리침): 이는 쓸데없는 청탁이 오가고 물자가 낭비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                  

                    절용(節用, 씀씀이를 절약함): 모든 것을 절약하고 아껴야 한다.                  

                    낙시(樂施, 베풀기를 좋아함): 이 아낀 걸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 또한 목민관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봉공육조
목민관의 업무 내용과 그 처리 방법을 자세하게 제시한다.


선화(宣化, 가르침을 펼침): 목민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임금의 뜻을 백성에게 잘 알리는 일이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교문(敎文)이나 사문(赦文)과 같은 공문서를 각 고을로 내려 보내는데, 글이 너무 어려워 일반 백성들이 그 뜻을 이해하기 힘들었으므로 목민관은 이것을 쉽게 풀어써서 백성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수법(守法, 법도를 지킴): 목민관은 법을 잘 지키는 한편 지방에서 내려오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 힘써야 한다.                  

                    예제(禮際, 예의있는 교제): 상대에게 예의에 맞춰 백성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하고 특히 친분이 있더라도 감사와 감영에게 예를 극진하게 할 것이다. 상급관청이 아전과 하인들을 조사하면 지위에 맞게 순종하되, 악의 없이 과오로 나온 경우에는 죄인을 호송하는 문서에 사정을 해명하고 용서를 빈다. 만약 악의가 있을 경우엔 사직서도 써서 같이 제출해서, 감사가 굽혀서 사과하면 정서를 볼 것이고, 아니고 무례하게 굴면 사직하라.                  

                    문보(文報, 보고서): 공문서는 정해진 기간 내에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                  

                    공납(貢納, 공물 바치기): 또한 공납과 같은 세금을 공정하게 징수해서 아전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왕역(往役, 차출되는 일): 외국 선박이 표류해 들어온 경우에는 예의를 갖춰 잘 보살펴 주어야 하며, 그들에 관한 모든 것(배의 모양, 크기, 문자 등)을 빠짐없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 때 그들의 좋은 점은 보고 배워야 하며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애민육조
백성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양로(養老, 노인 봉양): 목민관은 노인을 공경하고 불쌍한 백성을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유(慈幼, 어린이를 보살핌): 백성들을 타일러 자기자신들의 자식들을 기르게 하고 내버려진 아이들은 거두어주고 길러주어야 한다..                  

                    진궁(振窮, 가난한 자를 구제함): 특히 4궁(窮), 즉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을 구제하는 데 힘써야 한다.                  

                    애상(哀喪, 상을 당한 자를 도움): 집안에 초상이 난 사람에게는 요역(徭役)을 면제해 주고                  

                    관질(寬疾, 병자를 돌봄): 환자에게는 정역(征役)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                  

                    구재(救災, 재난을 구함): 목민관은 자연 재해가 나지 않도록 항상 대비해야 하며, 재해가 생겼을 때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구호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전편부터 공전편까지는 각 방의 세부 업무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다. 조선 시대의 지방 행정 조직은 수령 아래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의 육방의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이므로, 마땅히 모든 업무를 빈틈없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전육조


 속리(束吏, 아전을 단속): 아무리 학문이 뛰어나더라도 아전을 단속할 줄 모르면 백성을 다스릴 수 없다. 아전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목민관 스스로 자기 몸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목민관은 아랫사람을 은혜로 대하고 예로 바로잡아도 고치지 않고 세력을 믿고 속이는 자이면 법으로 단속해야 한다. 단속 후 비석을 세우고 이름을 새겨 영구히 복직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너그러우면서 권한이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있도록 하여, 조종하며 통제하는 모든 일이 다른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도록 한다. 모든일에 먼저 자신의 견해를 세워 바깥의 사물에 흔들리지 않고 노여움을 다른 데로 옮겨 풀지 않고 무릇 한 가지 명령과 한 가지 지시서를 내릴 때라도 마땅히 수리와 해당 아전에세 그 일의 근본과 지엽 등 자세히 알아보고 난 뒤에 결재를 하면 아전의 꾐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감사가 아전으로 수령을 염탐하기 때문에 아전에게 빌붙어 자신의 불법을 덮고자 하는 미련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취임한지 몇달이 지나거든 아전들의 이력표를 만들어 책상에 놓아서 연초에 해당 아전에 맞는 요긴한 직책을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중(馭衆, 관속들을 통솔함) : 청렴함에서 위엄, 성실함에서 믿음을 얻어 뭇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 관노 중 수령은 말이 없는데 나서서 꾸짖고 치라 명령하면 엄하게 다짐해두고, 어기는 자는 처벌해야 한다. 기생보단 수급비들을 보살펴 준다.                  


                    용인(用人, 사람 쓰기) :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무엇보다도 인재를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고을에서 가장 착한 사람을 향소로 골라 수령을 보좌하게 한다. 향원에서 옛 좌수들을 후보삼아 투표를 하여 1위는 좌수, 2위는 부승으로 임명한다. 아첨 잘하는 자는 충성스럽지 못하고, 간쟁하기 좋아하는 자는 배반하지 않는다. 무반은 모두 굳세고 씩씩하여 적을 막아낼 기색이 있어야 한다. 관리를 뽑을 때는 충성과 신의를 첫째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재주나 지혜는 그 다음으로 보아야 한다                  


                    거현(擧賢, 인재의 추천) : 인재를 추천하는 것은 수령의 임무이다. 관내에 귀한 이와 어진 이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마땅하며 명절마다 술과 고기를 계속 보내야 한다.                  


                    찰물(察物, 물정을 살핌) : 수령은 우뚝 고립되어 있어서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속이려는 자들이다. 눈을 사방에 밝히고 귀를 사방에 통하게 해야 한다. 아전과 향청직원, 군교들의 간사하고 교활함이 저절로 행사되지 못하게, 관노비와 별졸들이 몰래 민간에 나가 토색질하고 행패 부리는 것, 또 불효불공하고 장터에서 횡탈을 일삼는 것, 향촌에서 무력으로 행하거나, 힘을 믿고 약한 이를 업신여기는 자를 금해야 하니, 별도로 염탐 및 조사가 필요하다. 부임 초기에는 2-3차례, 그 후엔 4계절의 마지막 달에 1차례씩 향통을 마을에 놔둬 신고를 2-3일 받은 후 지적된 잘못한 바를 고칠 것이고, 민폐를 개혁할 것이요, 무고하는 것 또한 살펴야 할 것이다. 관리가 고발을 당하면, 정말 부정이 있는 자는 곧바로 조사하여 처리하고 실제 증거가 없는 일은 다시 조사해야 할 것이다. 토호나 도적이 고발을 당하면 해당 면에 경고 명령을 내린다. 매 계절의 첫달 초하룻날에 각 면의 최장자 중 행실이 바르고 일을 잘 아는 이를 4명씩 뽑아 향로로 삼아 향교에 첩문을 내려 고발장을 받아 잠자코 홀로 헤아려 별도로 몰래 알아야 한다. 자제와 빈객 가운데 단정하고 결백하며 실무에 능한 사람으로 몰래 조사하게 하여 성공한 자들에게 후하게 보수를 주어야 한다. 현 이방을 좋아하지 않는 다른 아전들을 통해 그 이방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미세한 허물과 잘못은 그냥 보아 넘기거나 속 짐작만 하고 하고, 혹은 은밀히 그사람을 불려 따뜻한 말로 훈계하여 스스로 반성하게 하는 등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 옆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모두 사사로운 의도가 들어 있음으로 그대로 듣고 믿어서는 안 된다. 수령이 직접 미행하지 말아야 한다.                  


                    고공(考功, 고과제도) : 관리가 한 일은 공과를 기록해두었다가 연말에 공적을 따져 상벌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백성들로 하여금 믿고 따르게 할 수 있다. 수령의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 어사 감찰을 3년에 1번씩 좀 더 자주 하여서 신뢰를 얻고 부정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호전육조
세금을 거두는 일이다. 소출량을 기준으로 한 세금 징수는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정약용은 이 점을 비판하고 공정한 세금 징수를 위해 해마다 직접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민관은 원활한 조세 업무를 위해서 호적을 정비하고 부정 방지에 힘써야 한다. 또한 국민 경제의 근본인 농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농사를 권장하는 핵심은 세금을 덜어주고 부역을 적게 하여 토지 개척을 장려하는 것이다. 권농 정책에는 벼농사 장려뿐만 아니라 목축과 양잠의 장려, 소의 도축을 막는 일 등이 모두 포함된다.



예전육조
제사와 손님 접대, 교육, 신분 제도 등에 대한 것이다. 목민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정성을 다해 제(祭)를 지내는 일이다. 미풍양속을 해치는 미신적인 제사가 있다면, 사람들을 계몽하여 없애 버려야 한다. 또한 교육을 장려하고 과거 공부를 권장하여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문란해진 신분 제도를 바로잡는 일도 목민관이 해야 할 일이다.



병전육조
군대를 키우고 잘 훈련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 당시에는 병역 의무자가 군대에 가는 대신 옷감을 내고 면제를 받는 제도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부정이 많았다. 목민관은 이러한 부정을 가려내어 가난한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병기들을 수리하고 보충하여 늘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하며,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지방을 지켜야 한다.



형전육조
재판과 죄인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재판을 할 때는 사건의 전말을 모두 파악한 뒤 신중하게 판결해야 하며, 특히 옥에 가두거나 형벌을 내릴 때 잘못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거짓으로 남을 고발한 사람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예로부터 어진 목민관은 형벌을 약하게 했으니 지나친 형벌은 피하는 것이 좋다. 옥에 갇힌 죄수에게는 집과 식량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폭력을 일삼은 흉악한 자들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공전육조
산림과 수리 시설, 환경 미화 등에 대한 것이다. 목민관은 산림을 울창하게 가꾸고 농사의 기본이 되는 수리 시설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 수리 시설의 경우, 지방 토호들이 제멋대로 저수지를 파서 자기 논에만 물을 대는 행동을 막아야 한다. 도로를 닦고 건전한 공업을 육성하는 것 또한 목민관의 책임이다.



진황육조
재해가 났을 때를 대비해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다. 흉년이 들 때를 대비해서 평소에 곡식을 저축하고, 창고 안에 있는 식량의 양을 늘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또 흉년이 들어 위급한 때는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말고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백성을 구제하는 데는 2가지 관점이 있는데, 첫째는 시기에 맞추는 것이며, 둘째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이는 정확한 실태 파악을 바탕으로 구휼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목민관은 집을 잃은 백성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고, 재해에 대한 구제가 끝나면 백성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어야 한다.



해관육조
해관이란 관직에서 물러난다는 뜻이다. 목민관이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날 때와 그 이후의 일에 관해 말하고 있다. 벼슬에 연연하는 것은 선비의 도리가 아니며, 떠날 때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가는 것 또한 선비가 할 일이 아니다. 백성들이 목민관이 떠나가는 것을 슬퍼하고 길을 막아선다면 훌륭한 목민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오랜 병으로 눕게 되면 거처를 옮겨서 공무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죽은 뒤에라도 백성들이 내는 돈을 받지 않도록 미리 유언으로 명령해 두어야 한다. 송덕비나 선정비는 죽은 이후에 세워야 하는 것으로, 있을 때 세우는 것은 예가 아니다.






출처 : 목민심서 -나무위키




@신간 소개@


브런치 작가님들께서 유심히 보시고 활발히 소통하시면 좋은 작가님입니다. 책 출간이나 영화화 관련 중요한 포인트를 잘 알고 계신듯 하오니 도움 받으며  많은 응원해 주세요 :)


조CP (텍스티 프로듀서)

삶은 fairytale이 아니란 생각이 든 어느날, 내 삶은 jokertale이라 할만한 것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후 10여년이 흘러 아빠가 된 ‘나’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 투유드림 산하 소설 레이블 텍스티CIC CP

- 영어덜트 <스프린터: 언더월드>, 하드보일드 액션 스릴러 <슬픈 열대>, 쁘띠SF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 힐링소설 <편지 가게 글월> 등 다수 대중문학 프로듀싱, 편집

- 웹툰 <복마전>, <재능 삼킨 마법사> 시즌1, <해시의 신루> 시즌1, <테이스츠 오브 호러>, <웃음>, <서울시 퇴마과>, <스프린터> 프로듀싱

- 소설 <미남당 사건수첩>, <고시원 기담>, 웹소설 <달콤한 보스들>, 웹툰 <서울시 퇴마과> 영상화 계약 체결

- 국내외 행사 IP피칭 및 비즈니스 미팅: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E-IP 피칭 2016, 2018 New Creator Award 수상, 2019 쇼박스 초이스 어워드, E-IP관객상 수상. 2018 KOCCA K-Story & Webtoon in Japan, America, China 참가

- 브랜드/지역 스토리 개발 및 브랜디드 콘텐츠 기획제작 다수



1. 책 <수상한 한의원>

https://brunch.co.kr/@jokertale19/13

https://naver.me/FnMZGUUF



2. 책 <편지 가게 글월>

https://brunch.co.kr/@jokertale19/25

https://naver.me/IMnkhQI1











@잠깐! 보석 같은 작가님들 소개합니다@

브런치에 새로 오셨거나 좀 더 많은 작가님들과 소통을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본글 댓글에 직간접적으로 메모를 남겨주시면, 다음 연재글에 본 코너에서 소개해 드릴게요. 여러 번, 반복 소개도 가능합니다. 쑥스러워하지 마시고요. <브런치 보석 작가님들 소개>는 매주 1회씩  발행됩니다. (작가님들 소개 정보는 3주마다 업데이트 예정)


작가 소개 출처 : 4. 조세희 '난장이의 공' (brunch.co.kr)





버섯돌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여러 작가 및 독자분들과 글을 공유하며 밝은 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 진로와 적성 탐색 : 아이엠컨설팅 방문기 (brunch.co.kr) , 인생의 변화를 맞은 지 1년(被審査作), 브런치 작가 심사 통과

송주 (프리랜서) 두 아들 엄마이자 프리랜서 영어강사입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며 읽고 쓰며 즐거움을 찾고자 합니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글이 독자 들에게도 작은 즐거움 이었으면 합니다. 아침에 눈 뜨면 얘 있다 매거진 , 끼적여 봅니다 매거진 , [브런치북] 차라리 집구석에서 나오자

벼리 (에세이스트) 삶을 여행하는 중 입니다. [연재 브런치북] 아이와 둘이서 배낭여행 (brunch.co.kr) , 꿈을 이루기 위한 엄마와 딸의 인도네시아 여행 , 09화 마지막까지 잊지 못할 추억을 준 코모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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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퀸 (작가의향기 강사) 영어강사, 독서광, story telling creator, 인생의 재미와 의미 전달자 짧은 소설 매거진 (brunch.co.kr) , 서평 매거진 , [연재 브런치북] 배꼽 빠지는 Grammar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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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대문 (예술가) 독일에 온지 N년차, 얼마나 더 머물지는 모르겠지만. 골똘이 생각하고, 쉽게 쓰는 글을 좋아합니다. 일상의 시선이 만나는 순간과 공기처럼 부유하는 이야기를 엮어내는 중입니다. [연재 브런치북] 베를린, 외국인으로 삽니다 _ 2 (brunch.co.kr) , 독일에서의 구텐 탁 매거진 , [연재 브런치북] 외노자의 출근길

Kyrene (연구자) 각인각색의 Persona를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Prologue (brunch.co.kr) , [따로 또 같이] 낮은 곳에 머물고 싶어! (brunch.co.kr)

강경 작가님(에세이스트) 고향에 돌아갈 날을 꿈꾸며 미국에 살고 있는 무명작가입니다. [연재 브런치북] 시 짓는 마음 , 나의 글 나의 삶 매거진  , 미디어에 비친 세상 매거진

서민혜 (공무원) 저는 물고기 관리 정책을 하는 해양수산사무관이자 수의사입니다. 현재는 시카고에서 유학생활 중 입니다. 저의 신조는 인간으로서 도리를 지키며 밥 값하자 입니다. [연재 브런치북] 시카고 피자물고 오대호 수영하기 (brunch.co.kr) , 제법 재미난 비판적 사고 매거진 , [연재 브런치북] 고래 사무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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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그리다 (에세이스트) 자연속에서 계절을 담아내는 초록예찬가, 사계절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요. 아름다운 사계절의 소중한 순간을 글로 씁니다. 전지적 계절 관찰자시점 -자연관찰자  [브런치북] 꿈꾸는 봄과 여름

안녕   테비

Bono (에세이스트) Counting Stars, 원 리퍼블릭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세상을 기록 중인 살짝 모난 돌. [연재 브런치북] 책을 읽어 드립니다 , [브런치북] Streaming Life , [브런치북] 곰곰하는 중입니다

조선여인 (에세이스트) 은퇴 2년 차로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에피소드를 글로 표현하고자 함. 인간미 담긴 글을 좋아해서 매일 두리번거리지만 제 나이는 잘 모르는 조선여인임. 조선여인의 브런치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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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 (시인) 시를 쓰며 에세이와 그림일기를 통해 나를 만나고 있습니다. . . 그림에세이 '지금이야, 무엇이든 괜찮아' , '누구나의 계절' 출간. 신간 <모든 다정한 저녁> 출간 호랑의 그림일기 매거진  , 호랑의 북 포레스트 매거진 , [브런치북] 들녘에 사는 이별

송영희 알아주는 수필가가 아니어도 좋고, 유명한 시인이 안 되어도좋습니다. 내 글을 읽고 훈훈한 삶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람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시댁 풍경 (brunch.co.kr) , 생강차가 된 종이 , 갱년기를 손질하다

소위 작가님 (소설가) 민들레 홀씨 같던 제가 글을 쓰면서 가만히 삶 위에 내려앉고 있습니다. 숨쉬듯 읽고 쓰는 삶을 꿈꿉니다. 운명처럼 소설가가 되었지만 저는 그냥 쓰는 사람입니다  [브런치북]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brunch.co.kr),  [연재 브런치북]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2  , 음악과 책과 영화 그리고 나 매거진

보각화 (작가지망생) 가슴 한가운데 빛나는 희망 이라는 빛. 그것은 사랑이 되기도~ 행복이 되기도 합니다. 등대의 빛이 되기를 희망하며 글을 써내려가 봅니다. 일상이 좋다 매거진 , [연재 브런치북] 마음에 그리는 잔잔한 물결 , [브런치북] 아득한 어둠 속_꽃은 피어난다 (brunch.co.kr)

Nova (미술가) 그림도 쓰고, 글도 그리는 Slocum 마나님  Kuba Nova Story 매거진 (brunch.co.kr) , Beyond Storyscape 매거진 , 구독을 누르지 못하는 마음

이미경 (주부) 이미경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매일 꿈꾸는 주부로, 가족을 케어하는 매니저로, 버려지는 물건을 재활용하는 예술가로 하루를 누구보다 일찍 열며 살아갑니다. [브런치북] 나의 꽃나무는 어떻게 피어나나 (brunch.co.kr) , 어린 농부의 사계 , 최고의 선물

펑예 (매니저) 육아노동자의 평일 단상. 화요일 발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롤로그 (brunch.co.kr) , 때때로 가출하자 , 슬기로운 초등 생활이란

Beverly   Story (크리에이터) 베버리 스토리 - 글쓰기가 좋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술술 읽어지는 좋은글, 혹은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NY, LA [연재 브런치북] 아이스크림 먹으러 갑니다 (brunch.co.kr) , [브런치북] 남편이 잘렸다 , [브런치북] 드라마퀸이 읽는 웹툰,드라마

tv양쌤 (프리랜서)먹거리, 교육, 양육, 환경 에세이스트 .디베이트코치 >현 업.제로웨이스터> 노력 중 .비건지향> 계속 지향 중 .동물해방 관심> 열렬히 응원 중.기후위기관심> 지속적인 행동 중

James 아저씨  경기도에서 유기 진도견 두 아이를 입양하여 12년째 키우고 있고 얼마 전 그중 살구가 세상을 떠났으며 이제 남은 한 아이, 자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연재 브런치북] 개, 고양이 그리고 나  ,  사람과 사람들 매거진 , 감정소모 매거진  , [브런치북] 어느 날 고양이 , [브런치북] 자두, 살구 이야기

Sunny   Sea (교사) Sunny Sea의 브런치입니다. 태양처럼 웃는 선생님, 30여년 간의 호기심과 열정 넘치며 다이내믹한 교직 생활에서 얻게 된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Sunny Sea Magazine 매거진 (brunch.co.kr) , 향기 가득한 에세이 컬렉션 매거진 , 나는야 패러디 송 가수!

산들바람 (주부) 시각장애인 남편과 2남 2녀 자녀를 둔 40대 중반의 주부입니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저의 일상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저와 함께 차 한잔 하실래요? [연재 브런치북]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수는 없잖아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산들바람 불어오는 날 , 18화 첫 경험

유철현 작가님 (편의점 회사원) 편의점 홍보맨. 아주 평범한 자세로 새로운 하루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습니다. 신간출간 <어쩌다 편의점>을 썼습니다.  어쩌다 편의점 출간기 매거진 (brunch.co.kr) , 편의점이라는 세계 매거진 , 선릉역 출근길 매거진

김인경 내면의 상처를 표현하면서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 10년간 4번의 유방암 수술을 하고 현재까지 투병중입니다. 대학생딸과 고1아들과 행복을 나누는 미안함맘이 가득한 엄마랍니다. 잊고싶은 기억들 매거진 (brunch.co.kr) , 유방암 실제사례집2 매거진 , 따뜻한 가족 매거진

유미래 (시인) 2022년에 퇴직했습니다. 퇴직 후 모든 일상이 글감이 되어 글로 반짝입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글을 씁니다. [연재 브런치북] 슬기로운 노인 복지관 생활 (brunch.co.kr) , 유세프의 요리 교과서 매거진 , 행복 더하기 매거진

SeonChoi (출간작가) 역사학자. 출간작가(에세이-슬픔도 미움도 아픔도 오후엔 갤거야, 소설-엄마의 담장). 인스타 그램(@liftoverthefence) [브런치북] 옛사람과의 동행, 그 치유의 길 (brunch.co.kr) , 봄비 내린 날 참새 , 조각보

딴짓 (에세이스트) 외국어 콘텐츠 교육기획 R&D 20년차. 글 쓰는 회사원. 나답게, 의미지게, 재미있게 살고 싶습니다. 현실은 사춘기 아들과 오늘도 멘붕이더라도. [연재 브런치북] 당신은 이웃을 알고 있습니까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아들 진짜 싫다 , 02화 미용사인 그가 내 아들에게 건넨 조언(2)

희야 (상담사) 잘 살아준 나에게 글쓰기로 선물을 주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삶도 쉬운 길은 없습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든 분들께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는 글이 되고 싶습니다. 너와 내가 있고 우리가 있는 곳 매거진 , 내 마음의 단상 매거진  , 대단한 글쓰기 2 매거진

메민 (간호사) 간호사는 애증의 직업, 빅5 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여유도 노력하면 가질 수 있나요 (brunch.co.kr) , 안 죽어요 , 쓰고 버리는 간호사

현이 (회사원) 대단하거나 거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씁니다. 발견하고 머무는 시선 매거진 (brunch.co.kr) , 취미댄서의 시선 매거진 , 직장인의 시선 매거진

정영의 (LH민들레작은도서관 작가지망생) 정영의의 브런치입니다. 책 읽고 글 쓰기가 취미이고 김탁환의 소설들 읽기와 열하일기 읽기 그리고 브런치에 글쓰기를 올해 목표로 삼았습니다. 1. <열하일기 75일 읽기>를 시작하다 (brunch.co.kr) , 2. 나의 브런치 입성 소동(0315) , 3. 내 친(한 친구를) 소(개 합니다)(0322)

할수 (생태공예힐링공작소 크리에이터) 에세이작가, 숲해설가, 생태공예연구가, 생태공예힐링핼퍼1호. 숲이 내게 걸어온 말들 저자(설렘출판사) 미니멀리스트 그녀 이야기 매거진 (brunch.co.kr) , [100-45] 인간이 만든 벼락 , [100-43] "너한테는 잡아먹혀도 괜찮아."

최담 (에세이스트) 글쓰는 농부입니다. 인생에서 두 번째로 잘한 선택이 귀농입니다. 농촌에 살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거기서 보이는 생각들 매거진 (brunch.co.kr)

백년서원 (브랜딩커뮤니티 에세이스트) 인생2막 즈음에 브런치를 만나 새로운 길을 가고있어요 '나의 70 이 설렌다!' 백년서원의 브런치는 그 여정을 찾아가는 마인드 맵 입니다☕️ 설레는 인생 만들기 지금 시작합니다 (brunch.co.kr) , 어느 날 갑자기 나 같은 겁쟁이가 글을 쓴다?

글마중   김범순 , 거기서는 이렇게 산다 매거진 , 거기서 살아 다행이다 매거진

네모 작가님(주부) 세상과 삶을 통찰하는 서평가. 주로 SNS에서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과 좋은 책으로 공감을 이뤄나가고 있습니다. <마음의 때를 벗기고> 5인 공저 시집 출간(부크크출판사,2023), <겨울의 편린> 4인 공저 시집 출간(부크크출판사, 2024) [연재 브런치북] 독후감과 서평 사이 (brunch.co.kr) , 매일 읽고 써야 사는 여자 매거진 , 도서관 비정규직 근로자의 생존기 매거진

박기련 (좋은땅출판사 크리에이터) 행복한 결혼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이다. 우리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 결혼은 사랑의 결말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브런치북] 남자들을 위한 부부생활 참고서 1 (brunch.co.kr) ,  무자식 소식러 주당 부부이야기2 매거진 , 무자식 소식러 주당 부부이야기 매거진

무늬 Moon (출간작가) 이제, 삶의 무늬를 만들고 싶은 무늬 Moon의 브런치 스토리입니다. [연재 브런치북] 진짜 불혹이 되고 싶어 브런치!

글쓰는   러너 (에세이스트) 말보다 글이 편한 내향인. SNS 목표선언활동가.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다. 기획 22년차 직장인으로 인스타그램에서 달리기와 건강한 글로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지금 핸드폰에 당신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brunch.co.kr) , 감사일기를 쓰다가 그만둔 이유 , 당근으로 전세 놓기. 기적이 일어날까요?

홍디 (일상드로잉 디자이너) 일상디자이너/드로잉에세이스트/대기업을 퇴사한 22년차 패션디자이너, 이제 일상을 디자인합니다. 수요일마다 수채화의 매력을 연재합니다. 인스타에 홍디작가의 디자인을 소개합니다. [브런치북] 여기에서 행복하는 중입니다 (brunch.co.kr) , [ , 연재 브런치북] 수요일마다 물드는 수채화의 매력 , 간헐적 간식 매거진

달무지개 너는 누구야? 너는 무엇을 좋아해? 너는 어떤 사람이니? 끄적거림 (brunch.co.kr)  , 안녕! 떡볶이 , 안녕! 나의 김밥

위엔디 (엔지니어) 공간(空間)을 이야기로 만드는 건축 기술자 입니다. 마음이라는 정서가 기초(基礎)가 되고, 행동이 구조(構造)가 됩니다. 중국어 성경묵상 매거진 (brunch.co.kr) , 성도로 살아가는 오늘 매거진 , 독점적 건축 썰 매거진

무한소 (강사) 현재 나타키이라(미애)작가로 '생'에 조용하게 스며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학을 가르치고 있고 그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고자 현실과 연계해서 글로 옮겨 나가는 중입니다. 신간 출간 <관계의 수학> https://m.yes24.com/Goods/Detail/125577702  [브런치북] 수학의 목적 (brunch.co.kr) , 말의 본질을 읽고 쓰다 매거진 , [브런치북] 토닥토론 가온독에 갑니다

아크하드 (주부) 술자리 후 습관처럼 찾는 슈퍼에서 달콤한 아크를 먹을까 시원한 하드를 먹을까 고민하는 결정장애 엄마가 E(외향형)망아지와 I(내향형)강아지, 두 딸을 낳아 키우는 우왕좌왕 육아일기 97프로 외향형 망아지 첫째 딸 매거진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그렇게 엄마가 된다. 독한 엄마가 , [연재 브런치북] 그렇게 엄마가 된다. 독한 엄마가

무무 (교사) 현재 초중고생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공부방 선생님이자 인터넷 언론사에서 시민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47세에 꿈꾸었던 '기자'가 되다 (brunch.co.kr) , LOVE STORY , 내 꿈은 인터뷰 전문기자

metainsight (교사) 세 아이의 엄마, 책선생으로 살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 책 이야기를 나눕니다.

샘의 독서 일기 매거진, 터널에서 만난 데이지 매거진

너나들이 작가님 (에세이스트)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씁니다. 내가 사는 삶이 행복해지도록 삶과 글에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연재 브런치북] 슬기로운 휴직생활 (brunch.co.kr) , 갑분글감으로 쓰기 매거진 , [연재 브런치북] 행복이 별건가요.

윤해 자연에서 나온 사람과 세상 속을 사는 인간 사이에서 고민하며 한 세대를 살아온 사람이자 인간으로서 사유를 나눕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도울 수 있는가? , 스스로 승리하는, 스승 , 여기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샹그릴라이다 (brunch.co.kr)

달하 (의사) 대학병원에서 말기암 환자들을 보며 환자들의 집으로 방문하는 일을 했습니다. 살아가는 모든 이음에 사람과 돌봄이 있음을 느끼며 삽니다. 자주 즐겁고 엉뚱한 생각들을 하기도 하고요. 알아가는 사이 나 x 가족 매거진 (brunch.co.kr) , 우리는 모두 돌보고 돌봄을 받고 매거진 , 임종방 찬가 매거진

괜찮아 (크리에이터) 미국 캘리포니아, 작은 도시 머세드(Merced)에 2022년 7월부터 살고 있습니다. 머세드에서의 일상과 책에 관한 이야기 나눕니다. 여행의 기록 매거진 (brunch.co.kr) , 머세드 이야기 매거진 , 일상의 기록 매거진

papababa (포스코그룹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및 포스코홀딩스에서 근무했던 박하영 변호사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우리는 왜 롯데자이언츠 야구에 죽고 못사는가? -1 (brunch.co.kr) , 롯데자이언츠 팬으로 살아가는 법 , 우리는 왜 롯데자이언츠 야구에 죽고 못 사는가? -2

GTS (국어 강사) 대학생 시절 읽은 만화 주인공을 동경하여, 스스로 별명을 'G.T.S'라 정하고, 지 멋대로 살아온 인간. 12년 교사생활 후, 1년간 떠돌이 생활, 현재는 재종반 강사인 방랑자 [연재 브런치북] 사직하고, 세계여행 1부 멀어지기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회색인 바이블로드 , 하나고 고3이 쓴 문법 에세이 매거진

아리사 (회사원) 저장과 발행사이_ 저장과 발행사이 매거진 (brunch.co.kr) , 백세시대 백세까지 살까 봐 자격증 매거진 , 관리부 김과장 매거진 (brunch.co.kr)

비마이데이 (크리에이터) 극내향의 어른이자 엄마. 이제갓스물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위로와 공감도 되지만 때론 꼰대처럼 들리지않을까 아슬아슬 줄타기하며 마음을 나눈 글을 씁니다. 엄마 아르바이트구인란에 가족 같은아르바이트생을 찾아? (brunch.co.kr)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우린 알지. , 괜찮아, 괜찮아

초맹 (크리에이터) 심플.. 심플.. 단순함의 패시브! 그냥.. 그냥.. 끄적임의 액티브! 심플과 미니멀을 지향합니다. 오피스 게임의 법칙 매거진 (brunch.co.kr) , 사내 문화와 제도로 벌이는 급여 삭제 , 퇴사 후 이직! 연봉은 이렇게 깎인다!

효문 (방송작가) 나와 삶, 관계를 돌아봅니다. [브런치북] 가진 것은 없지만 유언장을 씁니다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하루 5분 셀프 인터뷰 , [브런치북] 두 번째 성장통

단풍국 블리야 (공무원) 11년 경력 컨벤션기획사ㅣ3번의 정부 표창ㅣ캐나다 BC주 공무원ㅣ글쓰기를 꿈꿔왔던 단풍국 블리야의 브런치입니다. [연재 브런치북] 나는 자랑스러운 컨벤션기획사 (brunch.co.kr) , 단풍국 신입시민의 일상 매거진 , 스폰서가 필요해 매거 , 진

아생 (케이피플포커스 에세이스트) 33년간 국어입시학원에서 강의 했고 2022년에 은퇴. 현재 K People Focus 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치매엄마의 우당퉁탕 개구진 하루 매거진 (brunch.co.kr) , 어중간한 파이어족 은퇴한지 2년 매거진 , 안경은 어디?...안경집에 있었다

박애주 (에세이스트) '경력 vs 덕력'에서 큰 저항 없이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박애주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최애의 ae 매거진 (brunch.co.kr) , 최애의 eye 매거진 , 티켓팅은 너무 어!려!워! 최애의 æ✨

등불지기 (간호사) 어두운 곳을 밝히고 시린 곳에 온기를 더하고 싶은 글쓰는 등불지기입니다. 삶을 이끄는 소리 (brunch.co.kr) , 삶, 그리움을 그리다. , 변소야화

스토리아 (연구자) 지금 여기의 시점에서 유럽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파리대학에서 프랑스현대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불타버린 파리 노트르담은 어떻게 되었을까? (brunch.co.kr) , 술에 너그러운 유럽의 금주 캠페인 ‘메마른 1월’ , 사하라 대추야자 그늘 아래 박하차 석 잔은 천국의 행복

사진 찍는 미미 (포토그래퍼) 사진이 주는 행복을 가르치고 있고, 전시 작업도 하는 사진작가. 60대 할머니. 손주들이 부르는 이름은 미미. 사진 찍는 미미입니다. [브런치북] 옛 기억은 슬픈 미소를 짓게 한다 (brunch.co.kr) , [브런치북] 사진 찍는 미미의 특별한 휴가 , 21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오성진 (치의학박사 칼럼니스트) 삶이란 무엇인가,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가를 늘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돌변 (크리에이터) 돌고래랑 IQ가 같다고 믿었던 사람. 지독한 노력파. 하는 일 마다 잘 안 풀렸던 사람의 역습 (프롤로그) 돌고래 변호사 (brunch.co.kr) , 시체 닦는 고등학생 알바 이야 기

수우미양가 (국경없는예술 예술가) 예술 앞에 진심인 수우미양가입니다. 사랑에 국경이 없듯, 예술에도 국경이 없다고 생각하며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연재 브런치북] 수우미양가, 아트 컬렉팅 (brunch.co.kr) , 국경 없는 예술(Borderless Arts) , 오픈런(Open Run)의 진실

종갓집   맏며느리와 개 같은 남편 (한국반려동물상담센터 교수) 이왕 사는 인생,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연재 브런치북] 개 같은 남편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결혼식 보다 결혼생활 , [연재 브런치북] 종가집 며느리의 생각 한 자락 

박성진 시집1, 안녕 나의사랑 나의아저씨 (고 이선균 추모시집)시집2,동주를 노래하다(윤동주)시집. 보석칼럼니스트 여행작가 부부 (brunch.co.kr) , 사랑하기 힘든 꽃 아네모네 , 하루를 빛나게 살자

연두씨앗 (출간작가) 느리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육아.여행.일상을 기록하고 ,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누군가의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전) EBS,OBS,KBS 방송 구성작가 네버엔딩 방콕도서관 매거진 , 인생의 쉼표 매거진 , 들어볼래 이 노래 매거진 (brunch.co.kr)








아래는 최근 6개 글에서 말씀 나눠주신 작가님들이세요.



하늘강가 (작가지망생) 낭만주의자. 자유로운 영혼. 불나방. INFP. ILMS. 지금 우리의 계절 매거진 (brunch.co.kr) , 화양연화(花樣年華) , 34. 취미

곽기영 퇴직을 앞두고 있는 회사원입니다. 그동안 미뤄뒀던 글쓰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삶에서 발견하는 생각들 매거진 (brunch.co.kr) , 37. 편안한 사람이 좋다 , 36. 나무새

Calm 과거를 잊어보려고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상식선(常識線)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사회에서 고요함을 지향합니다. 생각 그리고 경험 매거진 (brunch.co.kr) ,  일상 매거진 , [20240419] 웩슬러 성인지능검사

무무 (마케터)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날을 꿈꾸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 글을 씁니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 선택적 가난에 대해서… (brunch.co.kr) , 조건 없이 주는 사랑… 우리 깨때기 아줌마 , 남의 불행 위, 나의 행복… 샤덴프로이데

시인의   숲 (동서문학회 출간작가) 코이카 자문관인 남편과 함께 르완다 키갈리 kiyovu에 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심장이라 불리는 르완다, 그 삶의 모습을 진솔하고 생생하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브런치북] 고양이와 함께 부르는 궁디팡팡 (brunch.co.kr) , 01화 길고양이와 뜻밖의 만남 ,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28화

복전 최홍수 (기획자) 대학교에서 중국 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에 근무하면서, 국비로 중국 절강대학원에서 중국경제를 배웠습니다. 퇴직 후  , 건강과 행복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나쁜 일은 잊으시고 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runch.co.kr) , 얼굴(표정)이 밝으면, 축복입니다. , 눈으로 ‘뭘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장익 (출간작가) 52세지만 예술대학 22학번입니다^^;아날로그 라떼가 메타버스 mz 동기들과 대학에서 좌충우돌 공부하고 소통하는 경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브런치 단상 매거진 (brunch.co.kr) , 50대 라떼의 미대일기 매거진 , 중년 부부 카페 방문기 매거진

유의미 (간호사) 비주류 일상 B급 전문작가. 유머는 포기 못해 글을 씁니다. 유미의한 내가 느낀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합니다. [연재 브런치북] 요양병원 김간호사1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똑닮 아들, 정반대딸 남매 육아1 , [연재 브런치북] 당신도 집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조음 (에세이스트) 색색의 인연 조각들을 모아서 조금씩 풀어 보려 합니다. 따스한 시선으로 격려해주시고 제 글을 읽고서 조금이나마 웃으신다면 글 쓴 보람이 있을것입니다. 행복하십시요 [연재 브런치북] 그대가 웃으면 세상이 환하다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설산의 표범처럼 살라하네 , 내 눈엔 고양이만 보여요 매거진

Adela  (프리랜서) 인생을 여행하는 중. 읽고, 쓰고, 겪어보고, 고민하며 나온 생각을 돌아보다. 결핵전담간호사가 들려주는 이야기 매거진, 간호사이지만 환자입니다 매거진, MZ세대인 사람의 생각모음 매거진

구슬붕이 (교사) 조은현의 브런치입니다. 사진 속 꽃이름이 구슬붕이입니다. 아이들을 통해 희망을 보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는지 초등 급식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연재 브런치북] 초등학교 점심시간 들여다보기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일상 다반사 , 04화 끝없는 망상

마음가는대로 "마음가는대로" 인생 3단계를 살고 싶은 초보 중년입니다. 세상에 신기한 것이 이렇게 많은 줄 미리 알았더라면,, 다시 가고픈 캐나다 빅토리아 시티에 대한 추억 (I) (brunch.co.kr) , 가장 길었던, 그래서 더 행복했던  여섯 시간의 만찬 , 첫 김장 속으로, “색다른 맛과 행복”의 다른 표현!

은후 (출간작가) 이성보다는 감수성이 좀 있어 아름다운 시와 문장을 꿈꿉니다. [연재 브런치북] 밤을 걷는 시say (brunch.co.kr) , 이슈가 있슈 매거진 , 오후엔 시 한잔 매거진

실비아 (에세이스트) 캐나다 이민 15년차 직장인으로 2030년 은퇴와 함께 골프 티칭 프로를 꿈꿉니다. 글쓰기와 글읽기, 또 산을 좋아합니다. [브런치북] 캐나다 록키 하이킹 - 1권 (brunch.co.kr) , 숙제 끝~ ,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행복

윤영 (에세이스트) 마음이 머무는 곳. 우리들의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인간탐구 매거진 (brunch.co.kr) , 제멋대로지만 마음 가는 아 글 시 매거진 , 웃기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매거진

바다의별 (프리랜서) 오랜시간 어린이집 원장으로 살았답니다. 이젠 '소풍 온 것 처럼' 살아가는 일상을 글로 이야기 나누어 보려고합니다. [브런치북] 백수가 무어 그리 바빠? (brunch.co.kr) ,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매거진 , [브런치북] 아직도 엄마랑 화해하는 중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검은머리앤 (크리에이터) 변화를 두려워 했던 제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하면서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저의 성장 이야기는 수영 배우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 [연재 브런치북] 나는도전하는중입니다 (brunch.co.kr) , [연재 브런치북] 제주도짠순이마씸 , 21화 아침 반 수영시간이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이른아침 묘비명이 "꽃이 되고 나비가 되고"이면 좋겠다. 책방에서 즐기길 매거진 (brunch.co.kr) , 봄을 꿈꾸길 매거진 , 새에게 다가가길 매거진

Aner병문 (회사원) Aner 병문. 책 읽고 태권도하며, 남는 시간 보드게임하고 술 마시다 끄적이는. :) 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 (brunch.co.kr)













교과서에 실린 작가 110명

*아래는 '가나다순'이고 선호도가 높은 작가님들을 우선순위로 소개해 드릴께요


강은교

고정희

공선옥

곽재구

기형도

길재

김광규

김광섭

김기택

김만중

김소월

김소진

김수영

김승옥

김시습

김영랑

김용택

김유정

김종삼

김춘수

나태주

나희덕

류시화

문정희

문태준

3. 박경리

박두진

박목월

2. 박완서

박인로

박재삼

박지원

박태원

백무산

백석

생텍쥐페리  

서유미  

서정주

성삼문

성석제

송순

신경림

신동엽

신석정

신영복

심훈

안도현

양귀자

염상섭

오정희

유치진

유치환

1. 윤동주

윤선도

윤오영

윤흥길

이강백

이규보

이근삼

이문구

이상

이상화

이성부

이순원

이양하

이용악

이육사

이청준

이태준

이호철

이황

이효석

임철우

장석남

장영희

전광용

정몽주

5. 정약용

정지상

정지용

정철

정현종

정호승

4. 조세희

조지훈

주요섭

차범석

채만식

충담사

천양희

최인훈

최일남

최치원

프란츠 카프카

피천득

하근찬

한강

한용운

함민복

허균

헤르만 헤세

현덕

현진건

홍석중

황동규

황석영

황순원

황인숙

황진이

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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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들님의 신청>

조정래

공지영

이해인

김훈






별첨 : 국립중앙도서관>자료검색>근대문학종합목록>작가/작품정보>근대문학연표 (nl.go.kr)



*사진, 그림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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