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글 초안을 저번주에 거이다 써놨다가 서랍에 넣고 망설이다, 내일 5월 18일이라 한번 올려 봅니다. 가끔은 묵직한 주제가 소망이 되기도 할 듯해서요 :)
“내가 ‘난장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 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
ㅡ 조세희 작가 인터뷰 중 ㅡ
코로나19로 지구가 멈춰버리기 시작했던 몇 해 전, 그렇다 벌써 몇 해 전이 되었다. 속절없이 애석하게 사라져 갔던 숱한 이름들이 있었다. 어떤 이별은 느닷없다 말하기도 숭고한, 예고되어 있는 실존의 상실이건만, 예의 저항감을 일으키는 급작스런 멈춤이었다.
어른이 되고도 한참 동안 먹고 살기 바빴다. 종교는 안식처처럼 내 삶의 난문에 답을 지어 주었다. 이른바 성공자들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계발서를 읽어 댔고, 지식자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동서양의 철학, 심리, 역사, 공자왈 맹자왈 등 유식해 보이려 고전들을 간간히 보았다. 간간히가 맞을게다.
소설, 에세이, 시 등 이른바 문학이라 일컬어지는 분야는 내게는 다소 사치처럼 느껴졌었다.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에게 문학의 허구는 도피를 부추기는 열병 같았다. 현재를 파고 또 파듯 매일이 치열한 자에게 그것은 호사스러운 여유 같았다. 매일의 숙제가 막중한 누군가에겐 가끔 오늘의 직무유기만 같았다. 그래 청소년기 이후론 문학에서 한참 멀어졌었다. 언제, 어떤 용기 아니 객기였을까. 대형서점 문학 매대의 책들에 다시금 손을 올려 가름하게 되었던 때가.
한때 핑계와 명분, 이유를 나열하며 멀어졌던 문학서적 사이로 언제가 한번 읽어 보고 싶었던 기묘한 소설책들이 있었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그런 책중 하나였다. 코로나 때 들려온, 이 소설을 쓴 어느 작가의 비보가 남다르게 다가왔던 이유였다. 2023년 5월 11일 발표된 코로나 종식 선언을 5개월여 남긴 2022년 12월 크리스마스때였다.
작가였던 그는,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한 존재였다. 미루고 또 미루는 습관은 이내 우리의 안일한 신뢰에 배반의 돌직구로 되받아 치곤 한다. 이왕 읽을 책이었다면 미리 읽어 멀리서나마 생색이라도 낼 것을, 아쉬운 미련이 못내 아까웠다. 작가를 먼저 알았던 책, 그 치명적인 한 사람의 부재란 아련한 회한으로 스며들었다.
글을 쓰며, 기상천외하게 작가의 꿈이 부풀어 오르다가도, 당장 한 줄이 아쉬운 뻣뻣한 글촉은 허황되게 부풀어 오른 풍선의 허풍을 터트리고 만다. 때론 글을 쓰며, 읽히지 않을까 아니 누군가는 읽되 영구적이지 못할, 이 글자의 축적이 허망해 보이기도 하다. 글쟁이의 기념이라 하나, 세상 도서관에 즐비한 읽히지 않는 숱한 책들처럼, 오랜 기다림을 감수하며 번호표만 하염없이 붙들고 있을 '먼 미래의 나의 책'에 대한 안쓰러움에 절필의 유혹도 밑돈다.
종종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아득해질때, 그래도 써야 할 이유를 절절하게 호소하는 글들은 그래 작가의 희망으로 피어오른다. 시대가 누락한 아니 누군가 기만하고 일부러 은폐한 그 지점은 자주 침묵으로 꺼져버리곤 한다. 그 은닉한 시간과 공간, 현장에 내달아 당도해서는 쉼 없이 열기를 품어내며 타이핑을 한다. 작가의 시대고발 정신은 어쩜 개인고발 정신 이상으로 막중한 유난이며 매혹이다.
빈곤사회는 고래로 늘 있어왔다. 동시에 빈곤은 늘 우리 가까이에서 숨죽여 지내곤 한다. 입을 열지 말라 강요 당하기도 한다. 동시에 그들 빈곤은 자주 상품화, 소재화, 선전화에 노출되기도 한다. 빈곤이 있어야 할 곳은, 본래 그 위치의 부당함만큼 엉뚱한 곳에서도 한 번 더 부당하게 호도 당하고 마는 것이다.
빈곤을 배설하고 쓸어 담는 세상의 폭주하는 문자와 영상, 소식들은 흡사 형체 잃은 전쟁을 방불한다. 빈곤을 논하고 빈곤을 말하지만, 정작 빈곤의 원형은 달아난 듯한 소음 일색들에 피로감이 밀려온다. 빈곤을 이용하고 소비하는 매체, 그 어디메에 진정 빈곤을 적실하게 마주할 용기 있는 작자가 있을까. 빈곤을 그 어디에서 건져 올려야 진주 같은 진가가 드러날지를 아는 것, 어쩜 작가란 소재의 단편적 나열이 아닌 그 소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 아니 그 소재가 마땅히 부여 받아야 직위와 위계를 정당히 부여하는 일이 아닐까. 백화점 매대의 화려하게 나열된 상품 가짓수의 하나가 아니라 전쟁터에 내던진 채 그 틈바구니에서 소리 없이 고개 내민 들풀 같은 실체로서 말이다. 그렇게, 소재의 정밀하고도 치열하며 내밀한 아우성을 경청하고 바라바줄 단 한 사람, 작가는 무거운 렌즈를 등에 지고서 고독히 이 하루, 이 시대를 조망하고 조명하는 일에 심호흡 가쁜 걸음을 내딛는 존재가 아닐까.
조세희 작가는 살아생전 자신의 책이 300쇄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는 현상을 기뻐하기 보다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했다 한다. 이미 종식됐어야 할, 어느 가정의 고통이, 어느 시대의 치부가 여전히 상존하는 현실을 탄식했다 한다. 글을 쓰지 않는 날에도 카메라를 들고 노동자들의 삶을 담으며, 글의 소재란 대상을 애지중지 남몰래 아끼고 아꼈던, 그 치열한 작가의 불꽃정신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작가의 외적 요건이 중요해지는 시대이다. 이른바 잘 나간다는 작가가 멋진 외제차를 몰고, 빌딩을 사고, 명품을 사들이고, 고가의 해외여행을 해야 '성공'이라 이름할 수 있다 여겨지는 한축의 은밀한 모의가 불편하다. 글의 소재을 찾아 얻어낸 글감은 속절없이 소비되어 탕진되고 마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위상으로 내던져지는 그 지점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대상을 소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치열하게 고뇌하고 함께 아파하고 지독하게 위해 주려, 몸부림쳤을 어느 작가의 외로운 밤들을 자간에서 읽어내는 일, 책을 읽기 전 작가를 몇 번이고 아련히 추억하고 싶었던 이유였다.
누군가의 공석(空席)이 이토록 안타깝고 애처로운 그리움으로 남는 일, 그런 사건이 우리 생애 내내, 세상 어딘가에선 일상처럼 내내 상속되길 희구한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ㅡ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 ㅡ
*공석(空席): 사람이 앉지 아니하여 비어 있는 자리. 결원으로 비어 있는 직위.
등단 이후 오랜 공백기
조세희는 1942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묵안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그는 중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였다.
이때 우연히 접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깊은 문학적 감명을 느끼게 되었고, 고전과 대중 소설을 넘나들며 수많은 책들을 탐독하게 되었다. 이러한 독서 체험을 바탕으로 조세희는 작가의 꿈을 키우며 ‘아주 좋은 원고 삼천 장’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1965년, 조세희는 암으로 어머니가 입원하기 직전 썼던 단편 <돛대 없는 장선> 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다. 암과 힘겹게 싸우던 어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느낀 상실감, 도스토옙스키, 카프카, 포크너, 보르헤르트, 카뮈 등 의 뛰어난 작품에 짓눌린 부담감 등으로 인해 그는 등단 이후 십여 년 동안 침묵을 지킨다.
소외된 도시 빈민들에 대한 관심과 문학적 조명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조세희가 다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3년 무렵이었다. 오랜 공백기를 깨고 1975년에 《문학사상》에 단편 <칼날>을 발표하는데, 이 작품은 ‘난쟁이 연작’의 첫 작품이다. <뫼비우스의 띠>, <우주 여행>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을 차례로 발표하고, 총 열두 편을 묶어 연작 소설집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펴내게 된다.
조세희는 빈곤층의 핍박받는 삶을 직접 목격한 뒤 놓았던 펜을 다시 잡았다. 다음은 《작가세계》에 실린 조세희 인터뷰의 일부이다.
“어느 날 나는 그 시절 최약자들이 몰려 사는 재개발 지역에 가서 집이 헐리면 당장 거리에 나앉아야 되는 세입자 가족들과 그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식사를 반도 못 끝냈을 때 철거반이 철퇴로 대문과 시멘트 담을 쳐부수며 들어왔어요. 그날 지옥의 사자와 같은 철거반과 이미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그 집에서 싸우고, 골목 밖에서도 싸우고, 철거민 가득한 동회 앞으로 가 또 싸우고 돌아오다 나는 작은 노트 한 권을 사 주머니에 넣었어요. 나는 그 노트에 ‘난쟁이 연작’ 을 쓰기 시작했어요.”
조세희의 작품 속 ‘난쟁이’는 도시 빈민이면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노동자인 동시에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소외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조세희는 이런 인물의 억압받는 현실과 짓눌린 삶의 모습을 소설 속에 담기 위해 노력하였다.
시대의 기록자로 남고 싶은 작가
1980년대 군사 정권 시절, 조세희는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통탄해하며 “어느 날 나는 내가 써야 할 많은 말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말았다.”라는 말과 함께 집필 활동을 중단한다. 한편, 1979년 사북 지역의 광산 노동자들이 부당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서 일어난 사북 항쟁이 발생하는데, 조세희는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때의 사진 작업과 경험을 바탕으로 1985년 사진 산문집 《침묵의 뿌리》를 출간한다.
지난 2005년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200쇄 출간을 맞았다. 작가는 ‘200쇄 출간은 부끄러운 기록’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하였다. 억압의 시대를 기록한 이 소설이 아직도 이 땅에서 읽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30여 년 전의 불행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작가는 펜 대신 사진기를 들고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에 참석하여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글로써, 문학으로써 그는 시대를 기록하는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ㅡ <교과서가 사랑한 작가 110> 중에서 ㅡ
조세희[ 趙世熙 ]
출생 - 사망 : 1942년 8월 20일 ~ 2022년 12월 25일
출생지 : 국내 경기도 가평
데뷔 : 1965.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돛대없는 장선」으로 등단
조세희는 난장이 연작을 통하여 1970년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였던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경기도 가평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후,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돛대없는 장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가 등단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의 일이지만, 문단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 「칼날」(1975), 「뫼비우스의 띠」(1976), 「우주여행」(1976),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6), 「육교 위에서」(1977),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1977),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1977), 「클라인씨의 병」(1978),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1978) 등으로 이어지는 난장이 연작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그의 난장이 연작은 1970년대 한국 사회의 모순을 정면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기에서 난장이는 정상인과 화해하며 살 수 없는 대립적 존재로 등장하고 있으며, 1970년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였던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소설적 접근을 통해 작가는 한국의 1970년대가 이 두 대립항의 화해를 가능케 할 만큼의 성숙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난장이 연작을 1970년대적이라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그려내고 있는 난장이 연작에 환상적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계급적인 대립과 갈등이 마치 비논리의 세계나 동화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현실의 냉혹함은 더욱 강조된다.
특히 난장이 시리즈가 연작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되는 요건이다. 연작 형식은 소설 양식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면서 이야기 형식의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이같은 형식이 난장이 연작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소설이 종래의 단편형식으로는 현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장편 양식으로 현실을 개괄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주제와 양식과 기법에 대한 도전과 그 성과는 1970년대 문학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오늘 쓰러진 네모」(1979), 「긴 팽이모자」(1979), 「503호 남자의 희망공장」(1979), 「시간여행」(1983), 「1979년 저녁밥」(1984) 등을 발표하고 있다. 소설집으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시간여행』(1983),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1995) 등을 간행하였다. 1979년에 난장이 연작으로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학력사항
경희대학교 - 국어국문학 학사
수상내역
1965년 작품명 '돛대없는 장선' -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돛대없는 장선」이 당선
1979년 작품명 '난장이 연작' - 제13회 동인문학상
작품목록
심문
뫼비우스의 띠
뫼비우스의 띠[재수록]
우주여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
육교 위에서
우주여행[재수록]
궤도회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난장이 에필로그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민들레는 없다
과학자
에필로그
긴 팽이모자
오늘 쓰러진 네모
철장화 1
503호 남자의 희망공장
고맙다, 어린 왕자
시간여행
어린 왕자
시간여행
1979년 저녁밥
하얀 저고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조세희 [趙世熙]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요약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 시기에 도시 개발로 인해 살곳을 잃게 된 도시 빈민층의 아픔을 이야기함.
1. 작품 소개
1970년대 도시에 있는 판자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그 당시에는 도시를 재개발한다는 명목으로 판잣집들을 철거하는 일이 많았다. 판잣집은 판자로 허술하게 지은 집으로,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그래서 판잣집을 철거한다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절망적인 일이었다. 살던 집을 빼앗기게 된 주인공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며 이 소설을 읽어 보자.
1)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연작 소설 중 하나임)
· 배경 : 시간 - 현대 / 공간 - 낙원구 행복동
· 주제 :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삶의 고통과 좌절
· 특징 : 난장이 가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물질 만능주의)을 고발, 비판함.
2) 등장인물
· 아버지(난장이) : 온갖 궂은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가지만 절망적인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공장 굴뚝에서 떨어져 자살해요.
· 어머니 :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생계를 꾸려 나가기 위해 노력해요.
· 큰아들(영수) : 속이 깊고 영리하여 공부를 하고 싶어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두고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해요. 공장에서 일을 하다 노동 운동(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회 운동)에 뛰어들어요.
· 둘째 아들(영호) :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자신과 가족이 처한 현실의 문제에 불만을 가져요.
· 막내딸(영희) : 가족을 사랑하는 순수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요. 집의 철거 과정에서 투기업자에게 험한 일을 당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용기를 내어 입주권을 되찾아 와요.
· 박우철 : 부동산 투기업자로 가난한 서민들에게 입주권을 싸게 사서 다른 사람들에게 비싸게 팔고 어린 영희에게 부도덕한 일을 해요.
인물 관계도
3) 줄거리
‘나’(영수)의 가족은 무허가 판자촌인 낙원구 행복동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나’는 우리 집이 재개발 사업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니 집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받는다.
아파트에 입주할 능력이 안 되는 우리 가족은 다른 이웃들처럼 행복동을 떠나는데, 아버지와 동생 영희는 입주권을 팔고 이사 가기 전날 사라진다. 영희는 입주권을 산 남자를 따라갔다가 돈과 입주권을 훔쳐 도망쳐 나온다.
동사무소에서 입주 신청을 한 영희는 예전 집으로 돌아오지만 가족은 이미 다른 데로 이사가 버린 뒤다. 영희는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아버지가 그동안 일하던 공장 굴뚝에 올라갔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아버지(난장이), 어머니
도시 재개발로 인하여 집에서 쫓겨나게 된 난장이 가족 - 큰 아들(영수)의 시선으로 쓰여짐.
난장이 김불이는 아내, 큰아들 영수와 영호, 딸 영희와 행복동에서 살고 있었다. 김불이는 칼갈이, 건물 유리닦이, 수도 고치기 등의 일을 하며 가난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아내가 인쇄 공장에 나가 돈을 벌고 큰 아들 영호도 공장에 나가게 된다.
그러던 중 난장이 가족이 살던 동네가 재개발(오래된 집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일) 되기 시작하며 집을 철거할 예정이니 나가라는 계고장이 날아온다. 낡은 집들을 무너뜨리고 새 아파트를 짓게 된 것이다. 난장이 가족은 새 집에 들어가는 데에 필요한 입주권을 받았지만 입주권과 함께 내야 할 큰 돈(입주금)을 마련할 수 없어 절망에 빠진다.
영수
공장에서 쫓겨난 형제와 거리로 쫓겨나게 된 난장이 가족 - 작은 아들(영호)의 시선으로 쓰여짐.
영호도 형과 함께 인쇄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장의 일 하는 환경은 매우 안 좋고 월급이 적었다. 그래서 영호와 영수는 이런 부당한 대우에 대해 사장에게 항의하려다가 공장에서 쫓겨난다.
행복동 주민들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업자(집과 땅, 건물을 사고 팔며 이익을 챙기는 사람) 에게 입주권을 싼 값에 팔고 동네를 떠났다. 난장이 가족도 끝내 입주권을 팔지만, 가족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고 집이 철거당한 뒤, 결국 거리로 쫓겨날 처지가 된다.
영호
입주권을 되찾은 영희와 난장이의 자살 - 막내 영희의 시선으로 쓰여짐
난장이 가족의 입주권을 헐값에 사간 박우철은 영희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영희는 입주권을 되찾겠다는 생각으로 박우철에게 갔다 험한 일을 당하고 새벽에 박우철에게 수면제를 먹여 금고 안에서 입주권과 돈을 들고 나온다.
영희는 박우철에게서 되찾아 온 입주권과 돈으로 새 아파트 입주 절차를 마치고 행복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영희는 아버지가 굴뚝에서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져 오빠에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죽여버리라고 외치며 흐느낀다.
영희
2. 감상 나누기
난장이 아버지, 성실한 어머니 그리고 영수, 영호, 영희는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의 가난한 가족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끊을 수 없는 깊은 가난의 뿌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영수네 삶 깊숙이 박혀 있었지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성실히 생활하며 천국을 꿈꾸지만, 집을 헐어야 한다는 ‘철거 계고장’을 받고 절망에 빠집니다. 작가는 난장이 가족의 삶을 통해 1970년대 화려한 도시 재개발 뒤에 숨은 도시 빈민층의 아픔을 전하고 있어요. 그런데 난장이 가족이 살고 있는 판자촌의 이름이 ‘낙원구 행복동’이랍니다.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처절한 가난과 절망으로 가득 차있는데 말이지요.
동네 이름처럼 이들의 삶이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그건 난장이 가족의 힘만으로는 부족해요. 영수의 말처럼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 줄사람’이 필요합니다. 난장이 가족과 같은 고통을 지닌 사람들의 아픔을 우리가 함께 나눈다면 모두들 조금씩은 행복해지겠지요.
3. 조세희 작가와의 만남
조세희는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힘겹게 사는 도시 빈민층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열 심히 일을 해도 가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이들의 삶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글을 썼지요. 주요 작품으로는 《나무 한 그루 서 있거라》, 《모독》등이 있고, 사진 산문집 《침묵의 뿌리》도 있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천재학습백과 미리보는 중학 문학)
<작품평>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문학의 사회성과 미학성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연작은 1975년 12월부터 3년여에 걸쳐 발표되었고 1978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줄곧 문학사·정신사·사회사에서 두루 문제작으로 논의된 현대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난쟁이로 상징되는 못 가진 자와 거인으로 상징되는 가진 자 사이의 대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대립 속에서 난쟁이들의 불행과 비극은 비단 경제적인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살이 전면에 걸쳐진 것이었다. 그 비극적 현실은 그동안 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 이 땅에서 거의 최초로 자유와 더불어 평등의 이념형을 본격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려고 허둥대던 시절에 사랑으로 더불어 잘살 수 있는 희망과 해방의 조짐을 모색한 문학인 것이다. 현실을 피상적으로 관찰하지 않고 애써 심연에서의 근원적인 인식 지평에서 현실과 대결하고자 했던 작가의 긴장 어린 노고가 거기에 담겨 있다.
물론 치열한 현실 인식만 가지고 소설이 되는 게 아니고, 또 그 현실 인식의 내용이 계속 유효하다고 해서 그 소설이 계속 읽힐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소비사회의 추세에 따라 문학작품마저 점차로 패션화되는 경향, 그 생산과 소비, 유통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를 고려할 때 30년 가까운 세월이란 가히 장중한 무게가 아닐 수 없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현대의 살아 있는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그 문학성에 있었을 것이다. 그의 치열한 현실 인식이 도저한 문학적 실험 정신과 어우러져 과연 잘 빚은 항아리 모양으로 생명의 활기를 지피고 있는 형상이다. 짧은 문장의 절묘한 결합으로 창조해 낸 아주 새로운 이야기 스타일, 리얼리즘과 반리얼리즘의 접합, 문학의 사회성과 미학성(문학성)의 결합, 현실과 이상의 산업 시대 묘사, 신화적 교감과 긴장 등등의 측면에서 작가는 나름대로 카오스모스(chaosmos, chaos(혼돈)과 cosmos(질서)의 합성어)의 소설 시학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허위적 현실 인식을 위한 추상적 대위법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대립적 세계관에서 출발하되 그것을 혁파하고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 지평을 모색하고자 한 소설이다. 증조부가 노비였던 난쟁이는 평생을 신체적 불우와 사회적 편견, 경제적 질곡으로 인해 고통 속에서 살다 죽어 간 인물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난쟁이는 1970년대 한국 사회와 경제의 생산과 소비 및 분배 구조에서 억압받은 소외 계층을 표상하는 전형적 인물이다. 마침내 산업사회의 증후가 본격화되던 당대 사회에서 자신의 난처한 경제적 토대와 세계의 타락상으로 인해 철저하게 소외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존재다. 이런 조건의 인물을 작가는 '난쟁이'라는 신체적 불구성에 빗대어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난쟁이'의 저편에는 상대적으로 불구성을 내포하고 있는 '거인'이 놓인다. 조세희가 상징적으로 시도한 바 '난쟁이-거인'이라는 대립축의 패러다임을 「환경 파괴」 등의 글에 제시된 작가의 주석적 진술을 토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현상적으로 보아 '못 가진 자-가진 자'의 대립을 비롯하여, '빈곤-풍요, 고통-안락, 분노-사랑의 결핍, 피착취-착취, 어둠-밝음, 검정-노랑, 추움-따뜻함' 등이 병렬적 관계를 이룬다. 이 현상적 대립항들은 사회경제적 조건 면에서 거인이 '+' 징표를, 난쟁이가 '-' 징표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이는 타락한 교환가치 측면에서의 징표일 따름이다. 가치 측면에서는 그 징표 체계가 역전된다.
난쟁이는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잘못은 신에게도 있다」)우고 싶어 했다. 반면 난쟁이의 대안에 놓이는 거인 자본가의 손자인 경훈은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고 말한다. 이 화해할 수 없는 거리의 심연, 혹은 문제적인 거리가 현상적인 징표를 역전시킨다. 즉 '사랑-사랑의 결핍, 도덕적-비도덕적'이라는 대립항으로 난쟁이가 '+' 징표를, 거인이 '-' 징표를 가지게 된다. 양자 공히 '-' 징표를 지닌다는 점에서 온전한 정상인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도시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도시 빈민은 오늘날에도 꾸준히 양산되고 있다.
작가가 보기에 인간적인 삶은 '정상인'의 삶이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허위적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위해 우선 '-' 징표를 전경화(前景化)1)한다. 그래서 난쟁이는 끝끝내 인간의 대지에서 희망의 길을 찾지 못한다. 「우주 여행」에서 지섭이 말한 대로 지구가 '불순한 세계'이기 때문이었을까. 지섭이 항상 읽는 책에 나오고 또 윤호가 나중에 공감하게 되는 대목은 이렇다.
"(···)지상에서는 시간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약속과 맹세는 깨어지고,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눈물도 보람 없이 흘려야 하고, 마음은 억눌리고 희망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일 끔찍한 일은 갖고 있는 생각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일이다."
- 「우주 여행」 중에서
지섭은 또 결론적으로 말했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중에서
이러한 지섭의 말은, 사랑이 거세된 소유 욕망 때문에 인간과 세상이 죽어 간다는 것으로 요약 가능하다. 세상에서 거세당한 사랑의 이데아를 추구하고자 했던 난쟁이는, 그 때문에 더더욱 불행했다. 이 점 꼽추나 앉은뱅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불구성의 증폭으로 요약될 '난쟁이성'은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에 나오는 수저 이미지에서 여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큰아들 영수의 꿈에서 "아주 큰 수저를 끌고" 가던 "작은 아버지"의 "몸은 놋수저 안에서 오므라"들고 만다. 수사학으로 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난쟁이 성의 징표라 할 만하다. 난쟁이는 사랑 없는 욕망으로 점철된 거인들의 욕망의 밥숟갈에 의해 삼킴을 당했다. 그가 꿈꾼 사랑의 세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벽돌 공장의 굴뚝 위에 올라가 종이 비행기를"(「우주 여행」) 날리는 대리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계여행(異界旅行)만을 꿈꿀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꿈은 결코 충족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난쟁이는 자신이 사랑의 삶을 희원하던 바로 그 장소(공장 굴뚝)에서 투신자살하고 만다.
난쟁이의 큰아들 영수 역시 마찬가지다. 산업시대의 본격적인 노동자 1세대인 영수는 난쟁이인 아버지의 생각을 진전시키고자 했다. 아버지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법률 제정이라는 불가피성을 감수해야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법률 제정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라면 기존의 세상과 다를 게 없다고 영수는 생각한다. 하여 영수는 "교육의 수단을 이용해 누구나 고귀한 사랑을 갖도록" 하여 "누구나 자유로운 이성에 의해 살아 갈 수"(「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있도록 하고자 했다.
나는 은강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머릿속부터 변혁시키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 나는 그들이 살아가는 사람이 갖는 기쁨·평화·공평·행복에 대한 욕망들을 갖기를 바랐다. 나는 그들이 위협을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랐다.
-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중에서
영수의 변혁 욕망·꿈·희망은, 아버지의 그것이 그러했듯이, 현실에서 충족될 수 없었다. 노사 협상이 완패로 끝난 다음, 영수는 신도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생각이 통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난장이네 큰아들로 태어나 (중략) 불행하게도 무엇을 선택할 기회를 한번도 가져 본 적이 없다"(「클라인씨의 병」)는 생각에 이른다.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삶의 차원을 현실이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이 슬픔은 곧 분노와 적의로 옮겨 간다. 적의의 끝, 분노의 절정에서 영수는 자본가를 살인, 사형당하고 만다. 역시 비극적인 결구로서, 끝내 난쟁이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정이 한층 심각한 것은 거인 쪽이다. 거인은 지독한 사랑의 결핍 상태에서 더더욱 비도덕적인 살만 찌우고 있는 판이니, 그 '-' 징표의 심각성을 더해 갈 뿐이다. 이 점 은강그룹 회장의 손자인 경훈의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는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훈의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에겐 지켜야 할 게 많아"(「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경훈은 노동자들에 대해 생각한다. "보나마나 나이보다 작은 몸뚱이에 감춘 적의와 오해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 못할 아이 (중략) 다"(「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또 경훈은 난쟁이와 그의 큰아들에 대해서도 야수적이고 비인간적인 인물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반성조차 할 줄 모르는 그는 죄 많은 거인 의식의 극단을 보인다. 그러니 경훈의 의식의 끝은 이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한다", "사랑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대표적인 '-' 징표의 본보기다. 반성 없는 '-' 징표는 다른 쪽의 '+' 징표와 만날 수 없다. 난쟁이와 그의 아들이 추구하던 사랑의 세계와는 결코 조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현실은 '그물'과 '가시고기'의 대립적인 축도로 인식된다.
내 그물로 오는 살찐 고기들이 그물코에 걸리는 것을 보려고 했다. 한 떼의 고기들이 내 그물을 향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살찐 고기들이 아니었다. 앙상한 뼈와 가시에 두 눈과 가슴지느러미만 단 큰가시고기들이었다. 수백 수천 마리의 큰가시고기들이 뼈와 가시 소리를 내며 와 내 그물에 걸렸다. 나는 무서웠다. 밖으로 나와 그물을 걷어올렸다. 큰가시고기들이 수없이 걸려 올라왔다. 그것들이 그물코에서 빠져나와 수천 수만 줄기의 인광을 뿜어내며 나에게 뛰어올랐다. 가시가 몸에 닿을 때마다 나의 살갗은 찢어졌다. 그렇게 가리가리 찢기는 아픔 속에서 살려 달라고 외치다 깼다.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중에서
경훈의 꿈 내용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물과 가시고기는 분명히 대립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 그대로 먹고 먹히는 관계이다. 이 관계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사랑도 반성도 없다. 그러므로 경계는 분명하다. 이렇게 경계가 분명한 상황에서라면 경훈 쪽의 대롱이 난쟁이 쪽의 구멍으로 들어갈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그것은 없다"(「클라인씨의 병」)라고 과학자는 잘라 말한다.
이렇게 허위적인 현실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위해 조세희는 추상적 대위법(對位法)을 구성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이분법적 세계관과는 다르다. 반성하고 초극해야 하는 현실을 명료하게 인식하기 위한 방법론적 기제이기 때문이다.
대립의 초극을 위한 카오스모스
조세희는 허위적 현실 상황을 추상적 대위법의 세계로 구성하면서도, 사랑과 희망의 길을 위한 지향 의식을 분명히 한다. 그 희망의 길 위에서 다시 비극의 길 혹은 허위적 현실을 거듭 만날 수밖에 없었기에 사정은 단순치 않다. 그렇지만 비극의 길과 희망의 길이 분리 대립을 일으키는 현실, 둘이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초극하고자 한 작가의 지향 의식이 전경화된다. 기존의 타락한 현실과 타락한 인식의 틀에 탈(頉)을 내고 혼돈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사랑의 질서, 희망의 질서를 탐색하고자 한 작가의 지향 의식이 주목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작중 수학 교사가 주목된다. 이 연작에서 작가의 현실 인식안(眼)과 가장 근접한 인물로 보이는 수학 교사는 프롤로그 격인 「뫼비우스의 띠」와 「에필로그」에 등장한다. 「뫼비우스의 띠」에서 그는 굴뚝 청소부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한다. 이 화두는 인식론의 기본 틀을 알게 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수학 교사는 질문한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뫼비우스의 띠」). 이 질문에 한 학생은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면적인 답변이다. 이 대답을 부정하고 교사는 답1 -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 과 답2 -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 를 들려준다.
답1은 탈현실적인 타자성의 철학에 근거한 것이다. 인식 주체와 대상이 스미고 짜이는 가운데 가능한 답변이다. 그러나 이는 답2의 상태를 경유해야 비로소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수학 교사 스스로 답1을 부정하고 답2를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답2는 과학적이고 구조적인 인식의 소산이다. 답2를 진정하게 초극할 수 있을 때 답1의 의미가 올곧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곧 답1은 탈현실적이고 탈구조주의적인 인식의 결과라 해도 좋겠다. 현상 그 자체를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답2의 사유 체계는 난쟁이의 현실, 거인의 현실을 적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대립적 세계관과 맞물린다. 앞에서 살핀 이항(二項) 대립의 세계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각각 질적 변환이 필요한 상태다. 각각의 질적 변환과 그 대립의 초극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이때 답1의 의미가 새삼 소중해진다. 타자성의 철학에 근거한 질적 변환, 다시 말해 타자를 통한 주체와 대상 및 그 상호 작용의 재정립이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다. 난쟁이는 거인에게 '분노의 사랑'으로 다가서고, 거인은 난쟁이에게 '연민의 사랑'으로 다가설 수 있는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의 지평은 바로 이 지점에서 열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사랑의 가능 지평이야말로 초극의 아름다움을 구현한 세계다.
그런데 이 초극의 미학이나 타자성의 철학은 거리가 분명한 직선적 평면에서는, 다시 말해 과학적인 구조 속에서는 구현되기 곤란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수학 교사가 뫼비우스의 변환을 의식하고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뫼비우스 곡면" 내지 "내부와 외부를 경계 지을 수 없는 입체, 즉 뫼비우스 입체"를 상상해 보라면서, 수학 교사가 "간단한 뫼비우스의 띠에 많은 진리가 숨어"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문제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뫼비우스 변환은 미분기하학에서 모든 것은 방향을 줄 수 있다는 공리에 대한 반례(反例)이고 탈례(脫例)이다. 아마도 이 구부러진 곡면의 탈례가 지닌 부분 운동의 궤적에 새로운 전체 운동의 구조가 실현되어 있지 않을까 고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안팎의 구분이 따로 없는 '클라인씨의 병'의 논리와 더불어 분명 기존의 질서를 탈 낸 혼돈의 세계임에 틀림없을 터이지만, 그 혼돈의 곡면, 혼돈의 탈례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변형 생성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가의 지향 의식과 관련된다. 대립적 세계상을 초극하고자 한 작가의 상상적 의지, 그 초극의 지평에서 진정한 사랑의 세상을 꿈꾸었던 지향 의식, 바로 그런 것들로부터 조세희 나름의 카오스모스의 소설 시학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연작에서 굴뚝 청소부 이야기를 비롯해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씨의 병' 모티프는 지향 의식의 리얼리티 효과를 낳는 기제들이다. 혼돈 속의 질서, 혹은 질서 속의 혼돈을 탐문하는 카오스모스적 의식이기에 이분법적 세계관의 단순성을 보완하는 기제이면서, 이 연작 전체에 복합성의 미학을 부여한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확실히 그 자체로서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 같은 소설이요, '뫼비우스 환상곡'이다. 대단히 비극적인 산업 시대의 소외된 신화이자, 동시에 소외 초극 의지의 신화이다. 현실주의적 전망이 닫혀 있던 시대, 아니 전망은 차치하고라도 현실 인식마저 미망에 휘둘려야 했던 시절, 작가 조세희는 이처럼 양가적이고 역설적인 난쟁이 신화를 창조했던 것이다. 작가의 현실 인식과 전망 추구는 1970년대 한국 작가가 감당할 수 있는 거의 최대치의 고행의 결과가 아닐까 짐작한다. 신에게도 잘못이 있는 험한 세상에서, 그 특유의 사랑법에 기대어 희망의 길을 놓치지 않으려 한 작가가 바로 조세희다. '거인'과 '난쟁이'의 대립적 경계를 해체한 초극의 지평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 정녕 인간다운 삶의 공간을 꿈꾼 조세희의 소설이야말로, 문학의 위의(威儀)와 영광을 생생하게 표상한다.
추천할 만한 텍스트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이성과힘, 2000.(개정판 2024.02)
(초판은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간행.)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대립과 초극의 뫼비우스 환상곡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2006. 9. 18., 최시한, 우찬제, 김영민, 장수익, 강영주, 공임순, 정현기, 류보선, 김주언, 양진오, 이상경, 김미현, 허윤진)
[기사발췌] 조세희가 펜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난장이’를 향해
고 조세희 작가가 남긴 사진들
( 2023-02-13 10:00)
고 조세희 작가 작품. 조중협 제공
지난 11일은 지난해 12월25일 작고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저자 조세희 소설가의 사십구재가 있는 날이었다. 그는 언어가 배반당한 시대를 부끄러워하며 오랫동안 세상에 글을 내보내지 않았다. 완강한 침묵의 시간이었으나 그는 ‘난장이들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는 펜 대신 사진기를 잡았다. 카메라를 들고 “가깝고 깊숙이 다가가 현장의 신음소리”를 기록했다. <한겨레>는 유족의 도움을 받아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그가 남긴 사진 일부를 공개한다.
고 조세희 작가 작품. 조중협 제공
목격담들이 이어졌다.
탄압에 저항하며 목숨을 끊은 노동열사의 추모 시위에서, 벼랑 끝으로 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사수 집회에서,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피투성이가 된 논밭에서, 쌀개방에 저항하다 경찰 방패를 맞고 쓰러진 농민들 사이에서, 자식들 묘비를 쓰다듬으며 통곡하는 광주민주항쟁 유족들 곁에서 그를 봤다는 이야기가 낯선 소문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소설가의 손에 책과 연필이 아니라 사진기가 들려있더라는. 왜소한 어깨에 카메라 가방을 걸고 현장을 뛰어다니더라는. 그의 글을 읽지 못하는 시간 동안 그렇게 그를 읽었다는.
고 조세희 작가 작품. 조중협 제공
문인들은 그를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시민들은 그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문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를 보는 방법은 거리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 거리에서 백발의 소설가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사진기자로도 보이지 않는 늙은이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니까 경찰이 고용한 채증조로 의심해 카메라를 빼앗는 사람들”(생전 작가의 말)도 없지 않았다.
시위 현장은 작가 조세희가 독자와 만나는 곳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을 읽은 학생들이 졸업 후 노동자가 돼 집회에 나왔다가 그를 보고 달려왔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그를 스칠 때마다 경례를 붙이는 전투경찰도 있었다. “우리 아는 사이냐”고 묻는 그에게 전경은 “그냥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며 슬픈 눈을 돌리기도 했다.
고 조세희 작가 작품. 조중협 제공
고 조세희 작가 작품. 조중협 제공
거리 한복판에서 ‘난쏘공’을 내밀며 사인을 부탁하던 학생을 그는 기억했다. 1978년 출간된 1쇄본이었다. “경찰이 가져가고 독자들이 가져가 버려” 작가에게도 없는 판본이었다. “새 책을 줄 테니 바꿔 달라”는 그의 부탁을 학생은 거절했다. 책 안쪽에 이름 두 개가 적혀 있었다. 학생의 부모였다. 난쏘공을 주고받으며 사랑하고 결혼해서 낳은 아이가 자라서 그 책을 들고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부모님이 집회 현장에 가면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왔다”며 “이 책만큼은 드릴 수 없다”고 미안해했다. “내가 아주 슬픈 시절이었는데 난쏘공의 시간이 헛되이 흐른 것 같지 않아 기운이 났다”고 작가는 말하곤 했다.
[기사 발췌] 별세한 『난쏘공』의 조세희 "우린 모두 난쟁이들⋯ 그럼에도,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절대로!"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 2022-12-26 14:24:32)
주중이면 통금 직전까지 일을 해야 했다. 「근로기준법」만 지키면 모든 것이 잘 될 걸로 생각하고,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면서 일을 했다. 노동자 모임도 할 수 없었다. 1970년대 그땐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자신이 부딪힌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을 쓰는 거야.
당시 문단을 주름 잡던 이문구와 박태순, 황석영의 작품들을 읽었다. 이것들만 가지고는 안 되는 뭔가가 있는데. 뭔가가. 석정남의 『불타는 눈물』이나,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같은 노동자 소설을 읽었다. 그래, 뭔가가 있어! 그는 주말이면 경인지역이나 구로동을 취재했다. 도시 빈민의 눈물과, 노동자의 땀과, 그리고 세상을 ‘견디는’ 사람들의 사랑.... 이런 것들을 놔두고 어떻게 그냥 지나치나. 정말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글을 썼다(심재학씨의 2009년 1월 블로그 글 참고).
산업화 시대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담은 고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렇게 태어났다고, 소설가 조세희는 2008년 11월11일 기자 간담회와 11월14일 교보생명빌딩 낭독회에서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소설이 군사독재 정권의 검열을 피해 독자에게 무사히 전해지기만 바랐다고 회고했다. 소설은 문예지 『문학과지성』 1976년 겨울호에 발표됐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영호, 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소설은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사는 난쟁이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도시 빈민의 삶과 계급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재개발로 인해 행복동 판자촌에서 쫓겨나게 된 난쟁이 가족의 절망적인 모습은 우리 사회 불평등과 계급 갈등과 같은 병리적 세태를 환기했다.
“...공장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밤중까지 일을 했다. 물론 우리가 금방 죽어가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작업 환경의 악조건과 흘린 땀에 못 미치는 보수가 우리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래서 자랄 나이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발육 부조 현상을 우리는 나타냈다. 회사 사람들과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우리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불황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조 작가의 이 소설은 2년 뒤인 1978년 6월 문학과지성사에서 다른 연작 소설들과 함께 묶여져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출간됐다. 소설은 1979년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지난 2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조세희의 「난쏘공」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면서 “1970년대의 한 노동가족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를 고통스럽게 전하고 있는 한 작가의 분노와 부끄러움의 이야기”라고 술회했다.
“그 작품들(당시의 다른 노동소설들)이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면, 조세희의 「난쏘공」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난쏘공」엔 노동자의 삶과 생각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과 생각을 곁에서 바라보고 같이 생각하는 작가의 아픔과 생각도 같이 들어있고, 그 두 삶과 생각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작렬하는 어떤 것이 들어있다. 분노와 부끄러움이 그것이다....「난쏘공」은 70년대의 한 노동가족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를 고통스럽게 전하고 있는 한 작가의 분노와 부끄러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소설의 더듬는 듯한 짧은 호흡은 곧 조세희 자신의 자의식의 떨림이 만든 것이었다.”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가 지병으로 12월 25일 서울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80세. 조 작가 아들인 조중협 도서출판 ‘이성과힘’ 대표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조 작가가 오늘 오후 7시쯤 지병으로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타계했다”고 밝혔다.
조 작가는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와 경희대 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문학청년’ 시절, 가슴만 뜨거운 게 아니라 사람과 사안을 깊이 들여다볼 줄 아는 탐구자였다. 원로 소설가 이건청은 26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한국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그의 작품들이 오래 발견될 것을 믿으며, 세희의 후생이 밝고 따뜻하기를 빈다”고 애도한 뒤, “1961년 문학 강의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문청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진심을 바탕에 딛고 깊게 보는 탐구자였다”고 조 작가의 문청 시절을 회고했다.
1942년 8월 가평에서 태어난 조세희는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돛대 없는 장선(葬船)」으로 등단했다. 그때 그의 나이 만 스물 셋.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를 다녔던 그는 학위 과정을 수료했지만, 석사학위를 끝내 받지 못하고 교직에 나가지 못했다. 이와 관련, 해양문명사가인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자신의 SNS에 조 작가를 “20세기에 손꼽힐 뛰어난 작가” “선명하고도 순수한 사람”이라고 호평한 뒤, 당시 석사학위 논문심사를 둘러싼 뒷얘기를 들려줬다.
“논문심사를 음식점에서 했습니다. 000, 000 등이 작가를 길들이려고 못된 강요를 했지요. 그때 음식점 앞 골목에서 내게 말씀했지요. ‘주 후배. 난 못하겠다. 저런 길들임은….’ (조 작가는) 끝내 석사 과정을 이수하고도 학위 도장을 못받았지요.”
조 작가는 당시 석사 학위만 받으면 교수로 나갈 상황이었지만 교수가 되지 못했다며 “당시 이미 유명 인사였지만, ‘니가 일단 학위에 들어온 이상 충성을 보여달라’ 뭐 이런 시답잖은 길들임이었고, 선배는 이를 거부한 것”이라고, 주 석좌교수는 분석했다.
십 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던 그는 1975년 「칼날」을 발표하며 다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뫼비우스의 띠」부터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이르기까지 고통 받는 소외계층 일가를 주인공으로 한 ‘난장이 연작’을 1978년 열두 편으로 마무리 짓고, 1978년 6월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펴냈다. 조 작가는 소설집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적었다.
“서쪽 하늘이 환해지며 불꽃이 하늘로 치솟으면, 내가 우주인과 함께 혹성으로 떠난 것으로 믿어 달라. 긴 설명은 있을 수 없다.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것은 떠나는 순간에 무엇을 대하게 될까, 하는 것뿐이다. 무엇일까? 공동묘지와 같은 침묵일까? 아닐까? 외치는 것은 언제나 죽은 사람들뿐인가? 시간이 다 되었다. 지구에 살든, 혹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이다.”
소설집 『난쏘공』은 대학가 필수 도서로 꼽히는 것은 물론, 2000년대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출제돼 청소년들에게도 널리 읽혔다. 1978년 출간 이후 1996년 100쇄, 2007년 100만 부, 2022년 7월 현재 320쇄 148만 부를 발행했다.
조 작가는 『난쏘공』 이후 소설집 『시간여행』(1983)과 사진 산문집인 『침묵의 뿌리』(1985)를 펴냈다. 1990년 무렵 잡지에 연재한 장편소설 『하얀 저고리』는 원고를 매만지기만 하다가 끝내 책으로 내지 않은 채 작고했다. 1997년 인문사회 비평잡지 『당대비평』을 창간했다.
2008년 『난쏘공』 30주년을 맞아 그의 문학세계를 되짚어보는 기념문집 『침묵과 사랑』이 문학평론가 권성우 등의 주도로 헌정 출간됐다. 조 작가는 이때 「작가의 말―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의 시대」에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며 “아직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나의 이 ‘난장이 연작’은 발간 뒤 몇 번의 위기를 맞았었지만, 내가 처음 다짐했던 대로 ‘죽지 않고’ 살아 독자들에게 전해졌다. 이 작품은 그동안 이어져온 독자들에 의해 완성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이 점만 생각하면, 나는 행복한 ‘작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나는 아직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3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이다.”
“아! 잠깐만 시간을 주세요. 마지막으로 짧게 몇 마디만 하겠습니다.” 2008년 11월 14일 교보생명빌딩에서 열렸던 기념문집 『침묵과 사랑』 헌정식 및 낭독회가 끝나갈 무렵,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절대 냉소주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후배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피하지 마십시오. 현대 사회에서 모든 자본들은 사람들에게 바보가 되라고 강요합니다. 냉소주의는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 갑니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전 여러분 세대에 많은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싸우지 않는다면 죽어서 지하에 있다가도 제가 싸우러 나올 것이다. 그런 일이 없길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 또 이후의 세대가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념문집 발간을 주도한 문학평론가 권성우는 자신의 SNS 글에서 이때를 회상한 뒤, 조 작가의 외침은 “한국 사회의 젊은 세대를 향한 깊은 애정이자 한국 사회의 미래를 향한 절절한 부탁의 말이 아니었나 싶다”며 “어지러운 시대, 짙은 냉소와 환멸, 정치적 퇴행이 판치는 이 시대에 깊은 울림을 지닌 예언적 발언”이라고 평했다.
조 작가는 그 즈음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소설이 미래 세대에도 읽힐 수 있다는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내가 ‘난장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 했습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요.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것입니다.”(이세영, 2008.11.14)
그는 이후 기력이 다한 자신의 세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성장하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걸었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선생님은 2011년의 한 문학 강연 자리에서 오랫동안 불의한 체제에 맞서 싸웠으나, 이제는 분노할 힘마저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다”며 자신을 ‘송장세대’라고 표현했다고 기억했다.
“‘분노하라고 하는데 힘이 있어야 분노를 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분노할 힘조차 없다.’ 그럼에도 ‘20대들은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마라. 냉소주의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공동의 일, 공동의 숙제를 해낼 수가 없다. 냉소주의는 우리의 적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조 작가는 이날 강연 말미에 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다음 말을 인용했다고, 전 편집장은 기억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일과 불의, 특히 그 앞에서 그가 알고 있는 가운데 저지른 범죄행위들을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때 나는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나눠지게 되는 것이다.”
조 작가는 마지막까지 한국 문학을 애정하고 새 시대 정신을 고민해주길 기대했다. 강양구 기자는 자신의 SNS 글에서 조 작가가 아래 세대인 자신에게 “강형!”이라고 부르며 고민을 토로했던 기억을 회고했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진보 담론을 펼치는 잡지 창간과 같은 고민을 놓지 않았습니다. 과학기술 운동이나 환경 운동처럼, 당시 제가 관심 있는 주제를 놓고서도 관심의 촉을 놓지 않으셨죠. 마치 가계를 꾸릴 연금처럼 계속해서 팔리는 『난쏘공』을 부끄러워하셨습니다. 팍팍한 서민의 삶과 떨어져 있는 한국 문학의 현실에 답답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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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담 (에세이스트) 글쓰는 농부입니다. 인생에서 두 번째로 잘한 선택이 귀농입니다. 농촌에 살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거기서 보이는 생각들 매거진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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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최근 6개 글에서 말씀 나눠주신 작가님들이세요.
○교과서에 실린 작가 110명○
*아래는 '가나다순'이고 선호도가 높은 작가님들을 우선순위로 소개해 드릴께요
강은교
고정희
공선옥
곽재구
기형도
길재
김광규
김광섭
김기택
김만중
김소월
김소진
김수영
김승옥
김시습
김영랑
김용택
김유정
김종삼
김춘수
나태주
나희덕
류시화
문정희
문태준
3. 박경리
박두진
박목월
2. 박완서
박인로
박재삼
박지원
박태원
백무산
백석
생텍쥐페리
서유미
서정주
성삼문
성석제
송순
신경림
신동엽
신석정
신영복
심훈
안도현
양귀자
염상섭
오정희
유치진
유치환
1. 윤동주
윤선도
윤오영
윤흥길
이강백
이규보
이근삼
이문구
이상
이상화
이성부
이순원
이양하
이용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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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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