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대한 관심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가진 시인
밤하늘
- 정호승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별들이 하나씩 있지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그 별을
빛나게 해주는 일이야
밤하늘에 저렇게 별들이 빛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별들이
빛나기 때문이지
"화약이 사라진 2099년에, 들리는 것은 우리를 쫓아오는 기계들의 발자국 소리와 그들이 쏘는 광선 소리, (그리고) 쿵하고 넘어지는 사람들 소리뿐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일단은 그렇게 해서 탈출해 나가서 전열을 준비해서 돌아온다."
사실은 내가 (어제) 꾼 꿈은 우주정거장에서 일어난 일이었거든. 내가 우주를 지키는 꿈이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문학 소년의 어린 시절
정호승은 1950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났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하게 되면서 그 후로 대구에서 성장한다. 그가 다녔던 대구 계성중학교는 박목월과 김동리의 모교이고, 대륜고등학교는 이상화, 이육사 등의 문인들이 교직에 있었던 학교이다. 이러한 학교 분위기에 힘입어 소년 정호승은 자연스럽게 문학을 접하게 된다.
중학교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했던 정호승은 매달 교내에서 실시하는 문예 현상 모집에 글을 내곤 했는데, 이때 글을 쓰는 재미를 느끼면서 글쓰기에 대해 스스로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꾸준히 글을 썼으며, 고교 문예 잡지인 《학원》에서 여러 차례 우수작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전국 고교생 문예 현상 모집’에서 평론이 당선되어 문예 특기생으로 경희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게 된다. 이때 당선된 정호승의 평론은 ‘전국 고교생 문예 현상 모집’에서 평론으로는 처음 당선된 작품이었다. 당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고등학생이 쓴 것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을 받았는데, 원고에서 계속 한자를 틀리게 쓰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그 의심을 풀었다고 한다.
시의 본질을 알려 주신 어머니
정호승이 시를 쓰겠다고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16~17세 무렵 정호승은 우연히 부뚜막에 놓여 있는 어머니의 가계부 수첩을 보게 되었다. 무심코 수첩을 뒤적거리던 그는 수첩의 한 귀퉁이에 비뚤비뚤한 글씨로 씌어 있는 어머니의 시 한 편을 읽게 된다.
가네 가네 한 여인이 풍랑 속을 가네.
비바람 세파 속을 헤치며 가네.
기우뚱 기우뚱 풍랑은 쳐도
그 여인 어머니 될 때 바람 잦으리.
마치 소월의 민요조 같은 어머니의 시를 읽으며,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 생계를 꾸려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을 고스란히 읽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이전까지는 재미와 지적 호기심만으로 시를 썼던 정호승은 시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품고, 장차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일상의 언어로 오늘의 현실을 노래한 시인
정호승은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당선되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당선되어 등단하게 된다. 등단 이후 1970년대를 대표하는 시 동인인 ‘반시(反詩)’에 참여한다. ‘일상의 언어로 오늘의 현실을 노래하는 시를 쓰자’는 취지를 바탕으로 현실에 대한 관심, 소외된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위안을 담는 동시에 성찰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을 현재까지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 정호승은 개인적 서정을 쉽고 간명한 시어와 인상적인 이미지로 담아냈다는 평을 받으며 1990년대 이후 가장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은 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편 정호승의 시는 약 40여 곡의 대중가요로 작곡되었는데, 2008년에는 가수 안치환이 ‘정호승을 노래하다’라는 제목의 음반을 발표하였으며, 매해 정호승과 함께 콘서트를 열고 있다.
ㅡ <교과서가 사랑한 작가 110> 중 ㅡ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석사
1979년 《슬픔이 기쁨에게》 (창작과 비평사)
1982년 《서울의 예수》(민음사)
1987년 《새벽편지》 (민음사)
1990년 《별들은 따뜻하다》
1991년 《흔들리지 않는 갈대》 (미래사)
1997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1998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
1999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2003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열림원)
2004년 《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2007년 《포옹》(창비)
2010년 《밥값》 (창비)
2013년 《여행》 (창비)
2014년 《내가 사랑하는 사람》(신개정판)(열림원)
2015년 《수선화에게》(비채)
2017년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2022년 《슬픔이 택배로 왔다》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
《에밀레 종의 슬픔》
«연인»
2010년 《참새》(처음주니어)
[2006년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2013년]《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1989년 소월시문학상
2000년 정지용 문학상
2006년 한국가톨릭문학상
2009년 지리산 문학상
2011년 공초문학상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수선화에게』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 『산산조각』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 『고래를 위하여』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 『봄길』 中
<정호승의 시·산문집>
슬픔이 기쁨에게
1979년 창작과비평사 초판, 『창비시선 19』 정호승의 첫 시집. 표제시 「슬픔이 기쁨에게」는 정호승의 대표작으로 고등학교 국어, 문학교과서에 게재돼 있다.
서울의 예수
1982년 민음사 초판, 『오늘의 시인총서 21』 정호승의 두 번째 시집. 이 시집에 게재된 시 「임진강에서」로 제3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새벽편지
1987년 민음사 초판, 『민음의 12』 정호승의 세 번째 시집. 이 시집에 가수 김광석이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의 가사가 된 시 「부치지 않은 편지」가 게재돼 있다.
별들은 따뜻하다
1990년 창비, 『창비시선 88』 정호승의 네번째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1997년 창비,『창비시선 161』 정호승의 다섯 번째 시집. 이 시집으로 제10회 동서문학상 수상.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1999년 창비, 『창비시선 191』 정호승의 여섯 번째 시집. 이 시집으로 제11회 편운문학상, 제15회 경희문학상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1998년 열림원, 정호승의 일곱 번째 시집. 이 시집에 정호승의 대표 시이자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게재된 시 「수선화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 「풍경 달다」 「고래를 위하여」 「달팽이」 등이 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2004년 창비, 『창비시선 235』 정호승의 여덟 번째 시집. 이 시집에 정호승의 대표 시 「바닥에 대하여」 「산산조각」 이 게재돼 있다.
포옹
2007년 창비, 『창비시선 279』 정호승의 아홉 번째 시집. 이 시집으로 제23회 상화시인상 수상.
여행
2013년 창비, 『창비시선 362』 정호승의 열한 번째 시집.
밥값
2011년 창비, 『창비시선 322』 정호승의 열 번째 시집. 이 시집에 게재된 시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로 제19회 공초문학상, 「물의 신발」 로 제4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2017년 창비, 『창비시선 406』 정호승의 열두 번째 시집.
당신을 찾아서
2020년 창비, 『창비시선 438』 정호승의 열세 번째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2022년 창비, 『창비시선 482』 정호승의 열네 번째 시집. 등단 50주년 기념시집.
천사의 시
2007년 대교베텔스만, 조광호 신부와 공저.
마침내 겨울이 가려나 봐요
1986년 열음사, 『열음시선 3』 김창완, 김명인, 이동순, 정호승의 합동시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1991년 미래사, 『한국대표시인100인시선집 85』
내가 사랑하는 사람
2000년 현대문학북스, 시선집.
(개정판 생략)